불교의 나라 태국에 성령의 불을 던지다
2012년 뉴스타트로 첫 출발한 태국(Thailand) 치앙라이(Chiangrai) 집회는 비록 짧은 기간에 소규모의 집회였지만, 그동안 해왔던 그 어떤 대형집회보다 깊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번 집회가 이루어지기까지는 한 여인의 오랜 눈물의 기도가 있었고, 아픈 가족사가 있었으며, 목사님을 아끼고 사랑하는 장로님들의 깊은 배려가 숨어있었다. 하나님은 하나의 작품을 이루시기 위해 수많은 포석을 하시는 분임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관련기사 선교기행)
우리는 약 5시간 반의 비행으로 태국 치앙마이(Chiang Mai) 공항에 도착하였다. 권영화 전도사와 황종만 집사 부부, 그리고 아피차 목사 부부가 나와 우리를 맞아 주었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치앙마이의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다. 치앙마이에서 1박한 우리는 이른 아침, 집회가 열릴 치앙라이로 출발하였다.
치앙라이는 태국의 수도 방콕(Bangkok)에서 북쪽으로 약 800여 km 떨어진 곳으로 태국, 라오스(Laos), 미얀마(Myanmar) 3국이 만나는 접경지역, 곧 그 유명한 골든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황금의 삼각주) 인근에 위치하고 있다. 태국은 불교가 성한 나라이고 남부지역에는 회교세력이 강하다. 기독교가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그 세는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도시 곳곳에서 사찰과 불상을 볼 수 있었고, 승려들의 모습도 자주 눈에 띄었다.
권 전도사 부부가 이번 집회를 준비하며 가장 난항에 부딪힌 것은 통역관 문제였다. 몇몇 한국 선교사들이 통역을 하겠다고 나섰지만, 목사님의 집회라는 사실을 알고는 포기하는 사례가 계속되었다. 그들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이초석 목사님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교단에서 제명된다.”는 것이었다. 기성교단에 몸담고 있는 처지에 목사님을 돕는다는 것은 많은 것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있지 않는 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날짜는 다가오고 속이 타들어갈 심정이었다. 결국 통역관이 나타나지 않으면 권 전도사 남편인 황종만 집사가 하겠다는 각오까지 하며 배수진을 치는데, 치앙마이 쪽에서 사람이 나타났다. 교단을 초월하여 혼자 치앙마이에서 선교하고 있는 이현숙 선교사였다.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미 통역관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우연도 참 힘든 일인데, 우리는 “목사님의 통역관이 되려면 이름이 ‘이현숙’이어야 하나보다.” 라고 너스레를 떨며 기뻐했다. 그녀는 가족조차 한국에 두고 홀로 나와 선교를 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한국에 있으면 몸이 아프고 여기 오면 멀쩡해진단다. 결국 가족들도 이 사실을 인정하고 혼자 나가서 선교하라며 허락을 했다고 한다.
집회 전날, 우리는 현지 목회자들과 함께 만찬을 하며 치앙라이 선교현황을 청취했다. 그런데 식사 중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황 집사를 비롯한 현지인들은 건기(乾期)에 이런 폭우가 쏟아지는 일이 없는데 목사님이 오시니 희한한 일이 일어난다며 놀라워했다. 목사님은 축복의 단비라고 기뻐하셨다.
집회 당일, 한 기독교 학교 강당에 마련된 집회장 주변에는 전통의상을 입은 아카(Aka)족들이 몰려들었다. 권 전도사가 세운 교회가 아카족 마을에 있는 터라 그 지역 사람들이 많이 온 것 같았다. 차량을 산골 지역에 돌려 5시까지 도착시킨 후 식사를 제공하고, 6시까지 강당에 입장시킨다는 계획이었지만,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드는 인파는 7시가 넘어도 멈출 줄 몰랐다.
목사님이 입장하시고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다함께 찬양할 때는 강당에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가득 찼다. 미처 강당으로 들어오지 못한 사람들도 강당 밖에서 떠날 줄 몰랐다. 우상의 나라 태국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그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