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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4호 목차 › 성경 에세이

변화와 변질

624호 · 2012-02-10

여보게

나는 이번 New Start집회를 기해서 내가 항상 단에 설 때면 입던 흰 양복을 벗었네. 물론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 인천교회에 갔더니 장로들이 그러더라고. “목사님의 컨디션이 좋을 때는 흰 양복이 괜찮은데, 목사님이 피곤할 때 흰 양복을 입고 있으면 늙어 보이고, 어디가 아파 보인다.”고 말일세. 정말 거울을 보니 그들이 말이 맞더라고. 그래서 집회 기간 내내 다른 양복을 입었네.

그런데 사실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네. 내가 흰 양복을 입지 않고 다른 색의 양복을 입으면 어떤 성도들은 내가 변질되었다고 생각하거든. 조심스레 편지까지 보내는 성도들도 있네. ‘목사님 변질된 것이 아니냐?’고 말일세. 물론 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라는 걸 아네.

그러나 내가 변질될 리가 있나. 다만 나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네. 늙어 보인다는데, 아파 보인다는데 굳이 흰 양복을 고집할 게 뭐 있겠나. 내 능력이 흰 양복에서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일세. 그래서 요즘 화려한 의상을 입으니 대부분의 성도들은 내가 젊어졌다고, 너무 좋다고 하더라고. 흰 양복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꼭 고집할 필요는 없다 싶네.

여보게

우리는 변질되어서는 안 되네. 변질된 자의 최후는 결코 좋지 않기 때문이라네. 사울이 변질되어 버림을 받았고, 가룟 유다 역시 변질되어 비참한 최후를 맞았지. 솔로몬도 처음과 다르게 믿음이 변질되어 후대가 고통을 받았지 않은가? 변질된 음식이 버려지듯 변질된 사람도 역시 버림을 당하게 된다네. 우리 주님은 한결같은 믿음을 좋아하신다네. 왜냐? 그 분이 한결같기 때문이라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13:8).

그러나 변화는 해야 하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순간부터 우리는 변화되어야 하네. 왜냐하면 우리는 거듭났기 때문이지.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네. 여섯 남자를 데리고 살던 여자가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된 것처럼,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바울로 변화된 것처럼 말일세.

자네가 늘 나에게 말하지. 어쩜 그렇게 변했느냐고. 맞네. 나는 아주 많이 변했네. 그건 내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라네. 예수님을 만나고 이춘석은 죽었고, 이초석으로 나는 다시 태어났다네. 예수님을 만났는데 변화가 없다면 진정으로 그 분을 만났다고 볼 수 없다네. 완벽하진 못해도 잘못을 했을 때마다, 죄를 지었을 때마다 깨닫는 정도로 최소한의 변화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또한 진보하고 성장하는 세상에 맞게 내 자신이 변화해야 하네. 세상 풍조를 따라가라는 말은 아니네. 그러나 세상과 같은 리듬은 타야 퇴보하지 않는다네. 주님은 분명히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라고 하셨네. 그런데 내 자신이 변화하지 않고, 매일 구태의연한 사고 속에 산다면 결국 세상에 먹히고 말지 않겠는가. 뒤떨어지고, 쳐지고 말 것 아닌가 말일세.

변화하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신실하고, 더욱 값진 사람이 되게. 그러나 변질되지는 말게.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변절자가 되지 말고,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리하게. 그래야 한결같으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자네의 이름도 부르실 테니까.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2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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