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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의식

613호 · 2011-11-25

아들아

이 세상이 경쟁사회이다 보니 비교의식이 너무 팽배해 있는 것 같구나. 물론 비교의식이 성장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비교의식이 낳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기에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단다.

나는 다른 사람을 이기는 법, 경쟁에서 이기는 법을 이렇게 생각한단다. 남이 이만큼 하니까 나는 그보다 ‘조금 더’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저 내 일에 충성하고 노력하면 결국 다른 사람보다 앞서게 된다고 말이다.

상대가 목적이 아니라 내가 정한 목적을 향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열심히 달려가면 마침내 일류가 되고, 승리하는 게 아니겠니.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예로 들어보자꾸나. 토끼는 거북이를 경쟁상대로 여기고, 거북이만 이기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거북이를 한참 앞지르자 그만 나무 아래서 잠을 잔 것이란다. 그러나 거북이는 동산까지 올라간다는 것에 목적을 두었기에 느리지만 열심히 최선을 다했고, 결국 승자가 된 거란다.

비교의식의 폐단은 또 이렇게도 나타난단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느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을 불러 어느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어느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한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겨놓으라고 했단다. 돌아와서 회계하겠노라고.

그런데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두 달란트 받은 자는 이익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그대로 땅에 묻어놓기만 했다. 당연히 이익창출은 없었지.

그가 왜 그랬을까? 그것은 비교의식 때문이었단다. 다른 사람은 다섯 달란트이고 두 달란트인데, 왜 나는 한 달란트냐 이거였어. 그걸 가지고 내가 해봐야 절대 저들처럼 많은 이익을 남길 수 없다는 생각에서 아예 시도조차도 하지 않은 거였지. 그러나 주인은 누가 많은 이익을 남겼는가, 누가 얼마나 큰일을 했는가를 본 게 아니었단다. 주인은 얼마나 충성되게 일했느냐를 평가한 거였지.

아들아

지교회로 목사를 파송할 때면 가끔 성도가 적은 교회 가기를 꺼려하는 목사가 있단다. 바로 비교의식 때문이지. 어떤 목사는 성도가 100명 있는 곳에 가는데, 나는 왜 30명 있는데 가냐는 거지.

그러나 하나님은 어느 목사와 비교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30명인 교회를 부흥시켜 50명이 되게 하는 그의 열성과 충성도를 보시는 분이라는 거야. 성도가 100명인 교회의 목사가 110명이 되게 했다면 누가 더 부흥시킨 것이고, 누가 더 승자일까?

성도 110명이 50명보다 많으니 그쪽이 성공했다고 봐야하는 걸까? 절대 아니란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이유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된 것도 결국 비교의식 때문이었단다.

물론 비교를 해야 발전을 할 수 있단다. 그러나 목적의식을 잃고 오직 비교의식만 존재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지. 비교의식이 지나치면 불평과 원망이 나오고, 만족이 없게 된단다.

아비가 주례를 서면 꼭 이 말을 한단다. “다른 것은 비교해야 발전하지만, 아내와 남편은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부모도 자녀도 동일하다. 그래야 행복하다”고.

비교의식은 전적으로 배제할 것은 아니지만, 비뚤어진 비교의식은 비극만 초래하기 때문이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눅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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