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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선지자를 선지자답게 대접하라 (렘42:1~43:2)

612호 · 2011-11-18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상담을 옵니다. 그러면 저는 최선을 다해 그 성도들에게 권면도 하고, 조언도 해줍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에 입각해서입니다.

그런데 더러는 실컷 상담하고 가서는 자기 뜻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려면 왜 상담을 하러 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나, 옳고 그름을 물으러 온 것이 아니라 자기의 행할 행동에 대해 제가 지원하고 응원하는 말을 듣기 원해서 온 것일 겁니다. 이미 답을 정해놓고는 그냥 가자니 찜찜하고 해서 상담한 것일 겁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같은 자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남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의 일입니다. 바벨론의 느브갓네살 왕은 시드기야 대신에 그다랴를 유다 총독으로 세워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않고 그 땅에 남은 유아와 남녀들을 다스리도록 위임합니다. 그다랴는 미스바에서 비교적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모압과 암몬, 에돔에 흩어져 있던 자들이 다 그다랴에게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느다냐의 아들이며 왕의 장관인 이스마엘이 그만 그다랴를 죽이고 맙니다. 아마도 시드기야에 대한 충성에서 그리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스마엘은 그다랴에 속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는 미스바에 남아 있던 모든 자들을 끌고 암몬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스마엘의 악행을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군대장관들이 듣고는 이스마엘과 싸우러 나갑니다. 그러자 이스마엘이 요하난을 피해 암몬 자손이 있는 곳으로 도망가고, 남은 자들은 요하난이 건져냅니다. 그러나 이제 남은 자들은 걱정이 태산입니다. 총독을 죽였으니 바벨론에서 당연한 보복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그들은 궁여지책으로 애굽으로 피할 생각을 합니다. 당시 예레미야도 그들 중에 거하고 있었는데, 요하난을 비롯한 자들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나아와 여호와께 기도하여 주기를 요청합니다. 애굽으로 가도 되는가를 물은 겁니다. 기도하기에 앞서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어찌 말씀하시든지 따르라고 당부합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애굽에 가지 말고, 이 땅에 남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만일 애굽으로 들어가면 칼과 기근과 전염병이 따라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레미야가 대언한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그들의 반응입니다.

“가로되 네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는 애굽에 거하려고 그리로 가지 말라고 너를 보내어 말하게 하지 아니하셨느니라”(렘43:2). “왜 네 생각을 말하느냐?”, “왜 애굽으로 내려가라고 말하지 않느냐?” 이것입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상책이라고 판단한 애굽행을 예레미야가 지지해주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에게서 정반대의 말이 나오자 난리법석을 떤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결국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이 당연히 이루어졌고, 그들은 그루터기가 될 몇 명을 제외하고 다 멸절되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기도해줄까?” 그런 게 아닙니다. 자기네들이 기도해달라고 해놓고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더니 듣지 않은 겁니다. 이는 주의 종을 기만하는 것이고, 더는 주의 종을 세운 하나님을 기만하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이야기도 해보겠습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예수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19:16) 하자, 예수님이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이는 다 지키고 있다고 답합니다. 예수님은 이어 말씀하십니다. “네가 온전하고자 할찐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마19:21). 그러자 그 청년이 가진 것이 많은 지라 심히 걱정하며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런 자가 오늘날도 많습니다. 주의 종에게 실컷 상담해놓고, 주의 종에게 기도 부탁해놓고는 자기 마음대로 행하는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 주의 종은 하나님께 직무를 위탁받은 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의 종을 희롱해서도, 기만해서도 절대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대하20:20).

또 다른 예를 보겠습니다. 어느 날,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아람의 손에 있는 길르앗 라못을 찾아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는 마침 방문한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함께 전쟁을 해서 그것을 되찾는 것이 어떠냐고 묻습니다. 이에 여호사밧이 아합 왕에게 ‘나는 당신의 뜻과 같으나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합니다. 그러자 아합 왕이 400명의 선지자를 불러 그들에게 묻습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싸우라고 했습니다.

여호사밧은 미가야 선지자에게도 묻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 물으니 싸우러가지 말라고, 참패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말미암아 가서 네게 말씀하더냐”(왕상22:24)고 말했습니다. 아합 왕도 화가 나서 미가야를 옥에 가두어 두라고 했습니다. 전쟁에 다녀와서 처치하겠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쟁의 패배는 물론이고, 아합 왕의 처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선지자가 자기 마음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기도한 후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인데 왜 말을 듣지 않습니까? 주의 종이 인간의 지혜나 지식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하여, 성령의 이끌림대로 가르치는데 왜 안 듣습니까? 그럴 거면 아예 묻지를 마십시오. 그러면 적어도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괘씸죄에 걸리지는 않을 것 아닙니까?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저는 이런 점도 간과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짓길 원했습니다. 그 뜻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했더니 나단이 너무 좋은 생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곧 나단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다음 대에 짓겠노라고, 다윗이 피를 너무 많이 흘렸기 때문이라고.

이에 나단 선지자는 이 말씀을 다윗에게 그대로 전합니다. 그랬는데도 다윗은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놀라운 약속과 과분한 은혜와 축복을 감사했습니다. “왜 선지자가 돼서 번복하느냐?”고 하지 않고 말입니다. 우리도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선지자의 말을 신뢰하면 축복이 따라 옵니다.

이런 설교를 하면 ‘결국 목사님 말 잘 듣고, 목사님한테 잘 하라는 거잖아.’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잘 하라는 말 맞습니다. 제 말 잘 들으라는 말도 맞고요. 그런데 그게 결국 여러분 잘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여러분의 축복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10:40~41). 엘리 제사장을 통해 한나의 태의 문이 열렸고,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가 축복을 받았으며, 엘리사를 통해 선지자 생도의 아내가 복을 받았고, 나아만 장군이 나음을 입었던 것처럼, 하나님은 주의 종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 곧 주의 종을 세우심은 먼저는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요,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려 하심이고, 또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되게 하려고 하심입니다(신21:5). 물론 주의 종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능력이 없는 주의 종도 있지요. 삯꾼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사랑하는 목자라면 기만하지 말고, 주의 종의 말을 경이 여기지도 말며, 그의 연소함을 인하여 업신여기지도 마세요. 주의 종은 하나님의 종으로 당신의 축복의 통로이니까요.

할렐루야!

목사는 사람의 종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임을 잊지 마라

주의 종을 대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대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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