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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 (시135:1~21)

602호 · 2011-09-11

가끔 어머니들이 대성통곡 하며 이렇게 푸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자식한테 배신을 당했거나 그들이 엄청 실망시킬 때 하는 말입니다.

어머니는 피를 흘려 자식을 낳았기에 자식에게 더욱 각별합니다. 그렇기에 그 자식이 어머니를 몰라라 할 때나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어머니는 억장이 무너지고, 하늘도 무너지는 것 같은 허탈감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피값을 주시고 사셨습니다.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죽여서 우리를 사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소유로 삼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몰라라 하고 우상을 섬긴다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까요? 하나님이 아담을 만들고 얼마나 좋았던지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지으신 모든 것을 아담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담이 마귀의 꾐에 빠져 하나님을 배신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얼마나 상심하고, 배반감을 느끼셨는지… 하나님은 ‘당장 에덴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우리가 만일 아담처럼 하나님을 버리고 귀신을 섬긴다면, 점이나 치러 다니고, 오늘의 운세 같은 것이나 본다면 하나님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 아픔을 느끼실 것입니다.

추석입니다. 명절이면 갈등하는 자들을 위해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입니다. 그런 당신이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 제사상에 절을 한다면, 당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아주 많이 아프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7장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을 비롯한 우상에게 분향하면서 성전에 들어와서는 기도하며 “우리는 구원받았다.”고 하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도적놈들아, 이 성전이 도적의 굴혈인 줄 아느냐? 너희 같은 놈들을 내가 왜 구원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렘7:13)고 하셨습니다.

이를 오늘날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면, 추석이라고 고향에 내려가서 제사를 지내고는 교회에 와서 ‘주여, 주여’ 하면, 주님이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조상을 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대적자 귀신과 마귀를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믿음의 선친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는다고 해서 처형을 당하고 심문을 당하고 핍박을 당했던 것입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이 우상을 섬기지 않았다고, 우상에게 절하지 않았다고 당한 고난을 말입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이 보고만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격하시어 천사를 보내서 그들을 위경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더 존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를 영접하면 편안이 오는 것이 아니라, 화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친구 간에 말입니다. 주님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4~36).

예수를 믿는 순간, 죽었던 내 영이 살아나 내 육과 싸우고, 육적인 자들과 싸우게 되어 있습니다. 리브가 안에서 야곱과 에서가 싸웠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한 사태에 겁먹을 것이 아니라 당당하게, 담대하게 맞서야 할 것입니다. 당신이 제사 문제로 부심할 때, 당신이 제사 지내지 않는다고 시부모님에게 혼날 때, 당신의 남편에게 욕먹고 손찌검 당할 때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이다”(시44:20). 그러니 당신이 돼지 대가리 앞에 절하는 것도, 당신이 제사상에 절하는 것도 하나님은 다 보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나는 제사상에는 절 안합니다. 그냥 음식만 만들어요.” 하시는 분들, 잘 들어십시오. 예레미야 7장 18~19절 말씀입니다. “자식들은 나무를 줍고 아비들은 불을 피우며 부녀들은 가루를 반죽하여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그들이 또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느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나를 격노케 함이냐 어찌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이 말이 무슨 말인가 하면, 여자들이 우상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부침개를 부치고 나물을 무치는데, 하나님이 이를 보시고 격노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제가 다시 말하지만, 도적질 하는 놈이나 망보는 놈이나 장물아비나 다 똑같이 도적놈입니다. 그러므로 제사 지내라고 돈 대는 것도 안 되고, 음식을 만들어도 안 됩니다. 따로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세요.

하나님이 인간에게 613가지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을 축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제1계명에서 4계명까지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며, 나머지는 사람과의 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 계명이 바로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첫 계명이라 함은 제일 중요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은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고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까지 말씀하셨는데 시댁 눈치 보느라,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제사상에 절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우상의 원뜻은 ‘없는 것, 헛된 것, 무가치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고 숭배한다면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한 꼴입니까?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된 우리가 그 헛된 것들에게 절을 한다면 하나님의 통탄이 하늘을 찌르지 않겠습니까?

조상에게 절하는 것은 곧 귀신에게 절을 하는 것입니다.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고전10:20). 여기서 ‘이방인’은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하는데, 그들이 누구에게 제사를 지냅니까? 죽은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이 귀신이라고 했습니다.

제사 지내는 사람들도 “할아버지 귀신이 와서 먹는다.”, “할머니 귀신이 온다.”고 말하지요? 맞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조상이 귀신입니다.

그래서 조상에게 제사하는 것은 덕을 기리는 것이 아니라 곧 조상귀신을 섬기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 때문에 제가 이단시비에 휘둘리고, 교단에서 제명도 되었지만, 그렇다고 진실을 속일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은 우상을 섬기는 것을 정말 싫어하십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화가 난 모세는 시내산에서 받은 증거판을 깨트려버리고 금송아지를 불살라 그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그리고 레위자손에게 말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屠戮)하라 하셨느니라”(출32:27)고 하였습니다. 우상숭배 한 자를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 날 모세의 말을 듣고 레위사람이 죽인 숫자는 3천 명 가량 됩니다.

그런데 모세가 각 사람이 그 형제 죽인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우상숭배자들을 죽인 것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우리는 우상을 멀리하고 오직 하나님을 송축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답게 살아야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은 귀신과 교제를 원치 않으신다

세상 모든 것에는 타협이 있지만

신앙만은 절대 타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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