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랑을 마다하겠나?
여보게,
내가 기르던 진돗개, 챠밍과 로얄을 알고 있지? 그런데 말일세, 이번에 내가 그것들 때문에 또 하나 깨달은 것이 있다네. 들어보게나.
어느 날, 챠밍이 곧 죽을 듯이 울부짖기에 급하게 뛰어 나가보니, 글쎄 로얄이 챠밍의 목을 꽉 물고 있는 거 아닌가. 이놈이 내가 야단을 쳐도 안 놓는 거야. 그래서 별 수 없이 로얄을 몽둥이로 때렸지. 어쩌겠나. 그러다간 챠밍이 죽게 생겼는걸.
몇 대를 맞고서야 로얄이 입을 풀더군. 얼마나 세게 물었는지 로얄 이빨이 다 빠졌더라고. 진돗개는 한 번 물면 안 놓는다더니 사실이더군. 왜 이런 사태가 발생했는지 알아봤더니 로얄이 밥을 먹는데 챠밍이 끼어든 모양일세. 그래서 로얄이 화가 나서 문 것 같더군.
그런데 이것들이 너무 크니까 집에서 키울 수가 없게 되었네. 두 녀석이 짖어대는 소리 때문에 이웃의 항의도 있고, 녀석들이 정원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더는 안 되겠다 싶어 기도원으로 보냈다네.
그런데 내가 이번 여름 집회 때 기도원에 갔는데, 챠밍은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며 반가워서 달려드는데, 로얄은 뒤로 숨는 거야. 아마 맞은 기억이 있어서 그랬나보네. 내가 불러도 이놈이 꼬리를 축 내리고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거야. 그 때 깨달았네. ‘개도 패면 다가오지 않는구나’ 하고 말일세.
여보게,
개도 때리면 도망가는데, 식물도 때리면 시들시들 하는데, 하물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혹시 자네 ‘난 폭력은 안 쓰니깐 나와 무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러나 꼭 손이 올라가야 폭력인가? 폭력보다 폭언이 더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가? 폭언은 마치 가시방망이와 같아서 맞아서 아픈 것보다는 찔린 가시 때문에 더 아프기 마련이라네.
가시가 쏙쏙 박히듯 폭언은 가슴 속에 깊이 박히는 거지. 그러면 마음이 멀어질 수밖에.
자네 아내에게 말을 막 해보게. 절대 자네에게 다가오지 않을 걸세. 로얄이 나를 보고 숨듯, 자네 아내도 그럴 걸세. 자네 직원들에게, 자네 자녀들에게 화난다고 거르지 않고 막말을 내뱉는다면, 자네는 기피대상이 되고 말 거야. 접근금지 인물이 되는 거지.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라네. 사랑을 줘야 다가오고, 사랑을 먹어야 생기가 돈다네. 아무리 산해진미를 먹고 살아도 사랑을 먹지 못하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지. 사랑으로 안아주고, 사랑의 말을 해주고, 사랑을 느끼게끔 표현해줄 때 가족도, 직원도, 이웃도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거라네.
우리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고, 더욱 주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주님이 주시는 사랑 때문이 아닌가. 그 분은 우리를 암탉이 병아리를 품듯 우리를 사랑으로 품으시기에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겠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4:16).
자네 직원이 자네를 자꾸 기피하는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네가 사랑으로 품지 못하기 때문이네. 자네 자식이 집에 들어오면 제 방에서 나오질 않은가? 잘 생각해보게, 자네가 말로 때린 적은 없는지.
로얄과 챠밍 때문에 내가 깨달은 것이 많네. 로얄로 인해서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그놈들이 밥값은 했다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