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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축복의 지름길이다 (출1:15~21)

590호 · 2011-06-17

저는 무서운 사람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딱 한 분, 하나님만은 항상 두렵고 떨림의 대상이십니다.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제가 하나님을 항상 두려워하는 것은 그 분의 위대하심과 위엄하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나약함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느낄 때마다 더욱 그 분을 경외하게 됩니다.

경외(敬畏)의 사전적 의미는 ‘공경하면서 두려워함’입니다. 저는 신앙의 본질이 바로 이 ‘경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중심에는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있어야 합니다.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을 알면서 왜 죄를 짓는 줄 압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경외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죄를 물마시듯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곧 ‘믿음=경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금쪽같은 자식을 하나님의 명에 의해 제물로 드리려고 모리아 산에 오릅니다. 거기서 아들을 제물로 드리려고 하자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시는 하나님의 급한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을 뿐인데, 하나님은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알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믿음이 경외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경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어떤 삶을 살까요? 첫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절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요셉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앞에서도 말했지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안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겨서입니다. 다른 말로 그들은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대가가 너무 크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엄히 경고하고 계십니다. 그들에게는 재앙이 폭풍처럼 임할 것이라고.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그들이 하나님을 조롱했으니, 동일하게 하나님께 조롱을 당할 것이라고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부를찌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찌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잠1:24~29).

둘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당연히 거룩한 삶을 삽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 ‘거룩’이란 구분된 삶을 말합니다. 세상 여느 사람들과 구분된 삶을 사는 자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세상 사람들이 쓰는 말, 세상 사람과 같은 행동을 하지 않고 구분됩니다. 하나님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어다”(벧전1:16)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겸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잠15:33).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앞에, 창조주 앞에 피조물인 인생은 마땅히 겸손해야 하며, 자랑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교만을 떨게 됩니다.

넷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정직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느니라”(잠14:2).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어찌 거짓을 내뱉고, 거짓을 행하겠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는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오늘 본문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애굽의 새로운 왕이 이스라엘 자손의 번창으로 인하여 근심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애굽의 왕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의 자손보다 많아지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과 손을 잡고 애굽에 대적할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노역을 시키고 학대를 해도 이스라엘 자손이 날로 번창하자 결국 히브리 산파를 불러 남자아이를 낳거든 죽이라고 명령하기에 이릅니다. 그 산파의 이름은 십보라와 부아입니다. 그러나 그 산파들은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아이를 살립니다. 왜?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을 어기고 남자를 살린지라”(출1:17). 그리고는 왕에게 히브리 여인들이 건강하여서 자기네들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아이를 낳기 때문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의 집을 왕성케 하셨습니다(출1:20~21).

오늘날도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왕성한 복을 내려주십니다. 조지 워싱턴이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조지 워싱턴에게 ‘오직 하나님을 잘 섬겨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라.’고 어려서부터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조지 워싱턴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점철되었고, 그 결과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혼란스러웠던 미국을 독립국으로 만들고, 부강한 나라가 되는 기초를 놨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존경을 받는 대통령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늘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았고, ‘예수님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으로 모든 기준을 삼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산파에게 허락하신 왕성한 복을 제게도 주셔서, 개인적으로는 가족 모두가 예수 안에 들어오는 복을 받았고, 또 하나님을 모르던 집안에서 주의 종이 세 명이나 배출되었습니다.

또한 교단적으로는 ‘예수중심세계하나되기운동’을 통해 범세계적으로 복음사역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였더니,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보내사 그와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는 큰 축복을 주신 것을 사도행전을 통해 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은 절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자를 취하시는 줄을 깨닫게 됩니다(행10).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재앙을 만나지 않으며, 모든 것에 풍성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잠19:23).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자자손손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만사형통되는 복을 받습니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시128:2~4). 이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하나님의 특별한 책에 기록되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며,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를 받게 됩니다(말3:16~17). 이것이 왕성한 복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 외면 받고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와 왕성한 복을 누리며 살 것인가? 그것은 당신이 하나님을 경외하느냐, 아니면 만홀히 여기느냐에 달렸습니다.

당신이 선택하십시오.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 할렐루야!

하나님을 조롱하고 만홀히 여기면

하나님께 조롱받고 홀대받는다

물 떠난 고기는 파리밥이 되고

기름없는 자동차는 고물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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