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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진리의 말씀을 팔지 말고 사라 (창25:19~34)

584호 · 2011-05-06

얼마 전의 일입니다.

우리 교단의 어떤 목사가 성전 건축을 하겠다고 성도들과 함께 저를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 목사와 성도들에게 성전을 짓고 싶으면 40일 작정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 말대로 4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는데, 그 목사가 제게 부탁하기를 작정기도가 끝나면 서울교회 예배시간에 단에 한 번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설교 한 번 하겠다는 겁니다. 설교하면서 감동 오는 분이 있으면 자기 교회를 위해서 헌금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는 거였습니다. 서울교회 예배가 위성과 인터넷을 통해 전국과 세계로 나간다는 점을 그는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다고 했습니다. 참 지혜롭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 40일 작정기도가 끝나는 날이 4월 22일로 금요집회가 있는 날이었기에 저는 금요집회에 설교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일본에서 선교사가 들어왔습니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 사건을 통해서 일본 영혼들이 자복하고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래서 제 설교를 통역하여 그것을 테이프로 만들어 가져가서 전도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입국한 것입니다.

4월 22일 금요집회 설교자가 쌍립이 선 겁니다. 일본 선교사는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제게 애원했습니다. 4월 22일 금요집회에 꼭 통역하게 해달라고요. 그러나 이미 저는 그 목사와 약속을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선교사는 자기가 그 목사에게 부탁해보겠노라고 하면서 그 교회로 갔습니다. 가서는 자신이 한국에 온 취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물론 그 목사도 자기가 왜 그날 단에 서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을 겁니다. 그러자 선교사가 3백만 원을 건축헌금으로 드리면서 애원했습니다. 자기가 꼭 서야 한다고요. 그 목사는 갈등했을 겁니다. 자기도 일본의 선교사로 나가 일한 적이 있었기에, 또 제가 아는 그 목사의 성품상 냉정하게 거절을 못했을 겁니다. 결국 그 목사는 선교사에게 설교권을 넘겨버렸습니다. 그래서 4월 22일 금요집회에 제가 고난 주간에 대해 설교한 후, 일본의 선교사가 설교했던 것입니다.

저는 금요집회를 끝나고 집에 가면서 그 목사에게 전화를 해서 “그게 양보할 정도의 것이냐? 어떻게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기회를 네 손으로 넘겨줄 수가 있느냐?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너는 하나님의 축복권을 넘긴 것이다. 네가 회개하지 않으면 성전을 지을 수 없을 것이다.” 라고 호되게 야단을 쳤습니다.

그는 선교사에게 설교권을 넘긴 것이 착한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불쌍한 일본의 영혼들을 위해서 목사인 자기가 당연히 양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건 데, 하나님의 주신 축복은 동정 때문에 남에게 넘겨서도, 인정 때문에 남에게 빼앗겨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목사는 눈물로 회개했고, 하나님이 그 회개를 받으셔서 좋은 성전을 예비해주셨습니다. 부디 이번 일이 그 목사에게 값진 교훈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의 에서를 보십시오. 에서가 사냥을 마치고 허기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어귀부터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바로 집에서 엄마를 돕고 있는 야곱이 끓이는 팥죽 냄새였습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배가 고파서 눈에 뵈는 게 없는데, 한 그릇 먹자고 하니 야곱이 호락호락 내주질 않습니다.

팥죽이 먹고 싶걸랑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아사직전인데 까짓 장자권이 뭐 얼어 죽을 것이냐?’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래, 너 가져라.” 하고 장자권을 팔았습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25:34). 이는 당장 현금이 없다고 1등 맞은 로또 복권을 내고 라면 한 그릇 사먹는 사람과 같습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지요. 하물며 그것이 로또와는 비길 수 없는 하나님이 주신 축복증인데…. 그래서 에서의 어리석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 히브리 기자는 ‘망령된 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거울입니다(고전10:11). 거울을 보고 눈에 눈곱이 끼었으면 떼어내고, 머리가 흐트러졌으면 머리를 빗고, 이빨에 고춧가루가 끼었으면 빼내어 부끄럼을 당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에서만 특별히 정신 나간 사람 같지요? 정말 그럴까요? 오늘날도 이처럼 에서와 같은 사람이 많습니다. 현실이 좀 고달프고 힘들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 준다고 하면 주일쯤은 우습게 여기는 사람, 많습니다.

선거 때에 절에 가서 절하는 기독교인도 많습니다. 당선되겠다고 말입니다. 또 주님이 주신 직분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과 에서가 뭐가 다를까요? 제가 보기에는 오십보, 백보입니다. 똑같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기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히12:16~17).

하나님이 주신 복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실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습니다. 에서의 장자권이 당장의 배고픔조차 면케 해줄 수 없었던 것처럼 무가치하고, 무능력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하나님의 복을 받는 증서임을 안다면, 그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빼앗기지 말고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야곱처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할 귀중한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요. 우리가 올림픽 공원에 입성할 때를 맞추어 우리 땅끝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제게 300억 원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교회를 지으라고 말입니다. 지금도 300억 원이면 큰돈인데, 벌써 20여 년 전이니 얼마나 큰돈입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갈등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올림픽 공원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지만, 어떤 것이 더 큰 복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비록 저는 갈등은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3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거절하고 올림픽공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랬더니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예루살렘 교단이 된 것입니다. 만일 당장 눈에 보이는 돈을 택했다면, 지금 교회 하나는 짓고 목회하겠지만, 오늘날의 이초석은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 거룩하고 신령한 것을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야곱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영적인 장자권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사모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영·혼·육의 축복이 우리에게 있게 됩니다.

김유신에게는 두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보희와 문희였습니다. 어느 날, 언니인 보희가 꿈을 꿨습니다. 그것은 오줌을 눴는데, 그 오줌에 서라벌이 잠기는 꿈이었습니다. 망측한 꿈이지요. 그러나 문희는 언니인 보희의 꿈이 예사롭지 않은 꿈인 것을 직감하고는 비단치마를 주고는 그 꿈을 삽니다. 결국 이 꿈으로 인해 보희대신 문희가 김춘추와 결혼하여 나중에 왕비가 됩니다.

문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엄청난 축복을 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 꿈도 좋은 것은 팔지 않아야 할 터, 하물며 하나님의 주신 축복과 꿈을 돈 몇 푼에, 그깟 세상 한 자리에 팔아서야 되겠습니까? 성경은 에서와 같은 망령된 자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8:5~8).

당신은 세상의 것 때문에, 당장의 눈앞에 이익 때문에 하나님의 것을 팔아먹지는 않았습니까? 당장 배부르기 위해 장자권을 버리지는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망령된 자입니다. 야곱처럼 영적인 것, 하나님의 것을 추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야곱의 하나님이 당신의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진리를 사고서 팔지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잠23:23).

할렐루야.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보이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는 자다

성경은 우리 인생의 거울이다

거울을 보는 자는 넘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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