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밖을 향한 이유
우리 인간의 눈은 밖으로 향하여 있어서 나를 볼 수 없게 디자인되어 있습니다.
나는 말고, 남만 보고 산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하루종일을, 일평생을 말입니다. 내가 보는 나의 모습은 거울에 투영된 모습으로서, 실제로는 반대의 모습을 보며 사는 것이죠. 이 세상 모두가 보는 내 모습을 나만 제대로 못 보고 있다는 걸 우리는 모르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알았다면 겸손 했겠죠. 모르니까 그냥 사는 것 같아요.
나 이외의 모든 이들은 맞은편에서 나를 보는데, 오직 ‘나’자신만이 내편에서 나를 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주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말입니다. 그러니 늘 맞은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두가 아는 ‘나’를, 나만 모르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선 거울에 비친 반대의 모습이 아닌 나의 참 모습을 볼 수 있는 ‘마음의 눈’ 도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 눈은 밖을 향한 눈을 감을 때만 뜨이도록 만드셨습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단지 눈꺼풀을 닫는 것이 아니라, 눈을 감아도 당신 앞에 보이는 허상들 즉, 욕심과 야망, 거짓들로부터 눈을 감아야만 ‘마음의 눈’은 열리고 보이게 됩니다. 이 눈을 감아야, 저 눈이 뜨입니다.
또한, 우리의 눈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충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주신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경우 눈뜬장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전히 좌충우돌, 남과 충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또한 내편에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 내 입장에서 상대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눈이 있으되 장님’이라는 말은, 진정한 마음의 눈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가진 많은 좋은 것들을, 갖고 있으나 소유하지 못한 채, 누리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나에 대하여, 또 너에 대하여 아름답고 감사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사랑하며 살라고 주신 이 두 개의 눈처럼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니, 오늘부터는 ‘나’를 보는 연습, ‘상대’를 보는 연습을 깨어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사랑하고 기뻐하며 감사함으로 채울 수 있도록 말입니다. 혹이라도 나와 상대에게 내가 잘못 봄으로 인해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잘 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오직 ‘나’만이 ‘나’를 보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리고 항상 깨어서 반대편에서 ‘나’를 보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힘써 노력하며, ‘나’를 보아간다면, 또 ‘상대’를 보아간다면, 아마도 우리의 인생의 많은 실수와 오류들을, 아픔들을 줄일 수 있겠지요. 훨씬 더 평안할 겁니다. 훨씬 더 사랑하고 사랑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많은 사람들과 하나님께로부터 말입니다.
“오늘 당신의 눈은 무엇을 보고 느끼고 사랑했나요?”
“오늘 하루 중, 당신의 마음의 눈은 얼마나 깨어 나를 바라보았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