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차피 죽으면 썩어 없어질 몸뚱이, 뭘 그리 아낄 필요가 있겠니?”
올해로 여든 다섯이 되신 우리 어머니는 이제 그 연세쯤 되셨으면 안방에 가만히 앉으셔서 며느리 봉양을 받으셔도 될 법 하건만, 어머니는 여전히 몸을 바삐 놀리신다. 그 세대의 여인들이 살아온 방식이 몸에 밴 터라 그러시기도 하겠지만, 어머니는 천성적으로 가만히 앉아계시질 못한다.
아주 부지런한 분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지나간 자리는 모든 것이 유리알처럼 번쩍 거린다. 그렇다고 주위사람 불편하게 만들며 공치사로 일하시는 타입도 아니어서 일가친척 모두가 우리 어머니를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단지 우리 며느리들만 어머니의 방문을 긴장으로 받아들일 뿐이다. 아무리 어머니가 편히 해준다 해도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인지라 며느리들은 어머니의 바지런함이 부담스런 모양이다.
사실 며느리들이라 해도 사모인 둘째 며느리 말고는 다 직장을 갖고 바쁜 터라 집안일을 소소히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시어머니 기준에 만족스러울 만큼 집안을 깨끗하고 야무지게 가꾸지 못하고 사는 게 현실이다.
하여 우리 어머니께서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며느리들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집안 청소에, 냉장고 정리에, 이것저것 집안일을 해치우느라 정신이 없다. 물론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에게 책잡히지 않으려고 그런다기 보다는, 노인네가 와서 수고스럽게 일하시는 모습이 죄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며느리 입장에서 아무리 깨끗하게 정리했다 싶어도, 내가 볼 때 어머니가 오신 이전과 이후는 확연히 달랐다. 도대체 그 차이는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먼저 집안일을 대하는 생각과 태도부터 다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비록 일제시대와 전쟁 통에 제대로 배우지 못하시긴 했으나 어렵게 깨우친 한글을 바탕으로 시간만 나면 신문이나 책을 읽으셨다. 지금은 성경책이나 교회 신문을 정독하시곤 한다. 또한 아침에 일찍 일어나 화분에 물을 주며 하루의 에너지를 섭취하신다. 화초 가꾸는 일을 아주 좋아하셔서 우리가 툭하면 죽여 대는 화분의 꽃들도 어머니 손길을 거치면 다 살아나곤 한다. 아무리 우울한 일이 생겨도 꽃을 보며 대화하고 물을 주는 순간만은 모든 시름을 잊는다고 하신다.
곧 어머니는 당신 몸을 움직여 청소하고 빨래하고 꽃을 가꾸고 하는 일들을 일상의 수고로 생각지 않으시고, 그 결과로 눈에 보이는 청결함과 아름다움으로 생활의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시는 것이다.
몇 년 전, 다리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신 이후, 이제는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긴 하지만, 마음만은 여전하셔서 웬만하면 혼자 다니시려하고 자식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이제는 제발 혼자 다니시지도 말고, 자식들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당당히 말씀하시라고 해도 “내 성격이다.” 하시곤 소리 없이 당신 일을 하시곤 한다. 어찌 보면 그게 어머니가 지금껏 살아오시며 스스로 만들어 오신 어머니의 세계란 생각도 든다.
자식들을 위해 무한책임의 자세로 살아오셨고, 아직 힘이 남아있는 한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며, 앞으로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구차한 존재가 되지 않겠다는 고집과 자존감이 어머니를 강하게 버텨주고 있는 셈이다. 내가 비록 늙었으나 아직도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며 살 수 있다는 생각이신 것이다.
“내 몸 조금만 더 쓰면 주위사람들도 좋아하고 주위환경도 깨끗해지는데 왜 그걸 아끼니?”
어머니의 인생철학이다. 어머니는 그런 자세로 사람들을 대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사교성이 좋으신 것도 그런 이유 같다. 지금도 오시면 주방부터 들어가시고 빨랫감이 쌓이는 걸 절대 보이지 않는 어머니를 지켜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 어머니의 세계와 철학을 지켜드리자. 남들 눈 때문에 어머니를 생각해준답시고 이렇게 하시라, 저렇게 하시라 하는 것은 오히려 어머니를 불편하게 하고 속박시키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머니가 조금씩 모아두었던 돈을 내 생일이라며 주시고, 손주 먹이라고 주실 때면, 기꺼이 받아든다. 청소에, 빨래에 바삐 움직이실 때도 구태여 빗자루를 뺐지 않고, “어머니, 최고!”라고 말씀드린다.
뭐라 해도 좋다. 나는 그저 어머니의 저런 건강하신 모습이 주님 품에 안기는 그날까지 그저 한결같기를 바라는 마음뿐인 것이다.
어머니, 건강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