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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

574호 · 2011-02-25

프랑스 파리를 처음 본 느낌은 한 마디로 문화적 충격이라고 말해야 옳았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우크라이나 집회 후 경유지로 들리게 된 파리는, 어린 시절 막연히 동경하던 센 강과 에펠탑의 서정적 이미지보다는 그들이 수백 년간 보존해온 역사적 유물들에서 그들의 진지한 역사인식이 진하게 풍겨 나오는 도시로 각인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이 자랑하는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 앞에서는 가히 문화적으로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로부터 전 세계 유물들이 총망라되어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받은 충격은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대학 4년 동안 나름대로 배웠다는 프랑스 문학과 그들의 정신세계에 대한 이해는 말 그대로 수박 겉핥기에도 못 미치는 것이었다. 청각적 감동은 결코 시각적 감동을 메울 수 없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선친들의 말은 과연 만고의 진리다.

얼마나 전시물이 많은지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으로 바쁘게 돌아다녔건만 하루에는 도저히 다 볼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속보로 다녀도 2, 3일은 잡아야 그나마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사실 박물관 전시물의 70~80%는 타국에서 탈취해온 유물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존재가 세계 역사의 전면에 나서게 된 것도 사실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지나며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때이니만큼, 그들 본래의 역사적 유물은 그리 많지 않다.

하여 혹자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도적들의 창고라고 혹평하기도 하지만, 비록 짧은 시간일지언정 루브르를 일별하고 내린 결론은 오히려 역사의 보존자로서 존중 받을만하다는 생각이 앞섰다. 만일 그 많은 탈취유물들이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오늘날까지 저렇게 잘 보존될 수 있었을까 자문해보니 결론은 ‘No’이다.

멀리서 예를 찾을 것 없이 우리의 문화재 보존역량을 돌아보면 바로 답이 나올 것이다. 노숙자의 방화로 전소된 남대문이나 자연재해라 하지만 화재로 소실된 국보급 문화재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뿐인가? 문화재 보존보다는 개발의지가 앞서고, 무차별하게 낙서로 도배된 문화재들이 지금도 정부나 국민의 관심 밖에서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1960년대 아프리카 각국의 독립 이후, 얼마나 많은 무차별적 약탈과 파괴가 자행되었던가?

역사는 그 가치를 아는 자에게 문을 여는 법이다.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인류사적으로 보면, 그들의 유물 약탈이 인류사적 공헌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느끼고 부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의 무지로, 어리석음으로 우리는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들을 망각하고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가 말이다.

나는 정말 하나님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정말 그 가치를 제대로 알고 삶에 적용하고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식이 오늘도 내 귓전에 아프도록 메아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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