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없는 삶은 피곤하다 (약1:5~8)
당신은 올해 어떤 목적을 세웠습니까? 당신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선뜩 답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2011년은 망하기로 계획된 해가 될 것입니다. “뭐 그냥 살랍니다.”, “죽지 못해 삽니다. 하루 끼니 때우기도 힘든데 무슨 목적이 있겠습니까?” 이러시는 분들도 찬란한 미래와는 담을 쌓아야 할 것 같네요.
목적이 없는 삶은 물 위에 떠도는 부평초와 같습니다.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사는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인생에 무슨 발전이 있고,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말 그대로 그냥 사는 거지요. 반대로 목적이 있는 삶은 지치지 않고, 피곤하지 않습니다. 고무줄 한 쪽을 고정시켜놓고 잡아당겼다가 놓아보십시오. 고무줄이 고정된 곳으로 쭉 딸려갑니다. 삶에 목적이 있다면 삶이 굉장히 편해집니다. 다른 곁길로 가지 않고 그 길만 쭉 따라가면 되니까요.
목적이란 인생의 나침반입니다. 어디로 가야 할 지 인생의 향방을 가늠해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7~8). 삶의 목적을 상실한 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저는 이제 목회 27년에 들어가면서 향후 25년을 계획했고, 목적하는 바를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이 있는 자만이 성취할 수 있고, 목적이 있는 자만이 즐거움으로 달려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목적이란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힘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류구원이었습니다.
그 목적이 있었기에 그 분은 험한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삶이 고단합니까? 이는 삶의 무게가 버거워서가 아니라 삶의 목적이 없기 때문에, 삶의 목적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아이고 죽겠네.’ 했던 것은 광야에서의 삶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출애굽한 목적을, 가야할 곳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목적의식이 분명하다면 환경이나 조건이나 상황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후욕과 핍박을 당하며, 만물의 찌꺼기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목적, 곧 푯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푯대가 무엇입니까? 바로 그 날의 영광을 바라다보았기 때문에 고난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모세가 도망쳐서 40년을 광야에 살면서 그가 낙심하지 않았던 이유도 바로 그에게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민족을 애굽으로부터 탈출시켜야 한다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에 방황하지 않았고, 또 그에게 80의 나이에도 40대의 기력이 회복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목적을 바라다보면 목적에 이르는 길이 보입니다. 즉 바다를 동경하면 배를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왜군을 무찌르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북선을 건조하고, 군사를 조련하며, 누구도 생각지 못한 창의적인 전략을 끌어냈습니다. 안중근 의사의 목적은 우리나라의 독립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는 굴욕적인 한일합방의 주적(主敵) 이토 히로부미를 만주 하얼빈 역에서 암살한 것입니다. 링컨은 노예해방을 위해 이를 반대하는 남군과 전쟁을 했고,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이 땅에 자유와 평화를 위해 반공(反共)을 외치고, 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뛰었습니다. 우리는 그 날에 천국에 들어가 주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고, 열 고을, 다섯 고을의 왕권을 차지하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입니다.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선을 행하며, 헌신 봉사해야 함을요. 이처럼 목적이 있어야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목적을 세웠다면 그것을 바라다보십시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이 금방 나올 것입니다. 세계적인 요리사가 목적이라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목적이라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올해 “예수중심으로 사는 한 해가 되자”고 했습니다. 이것이 목적이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목적의식이 당신의 인생을 바꿀 것입니다. 인생의 길도, 인생의 질도 바꿀 것입니다. 제게 전 지구촌의 사람들을 죄악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탈출시킨다는 목적이 없었다면, 오늘에 이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벌떼처럼 달려드는 온갖 모함과 핍박에 벌써 무릎을 꿇고 말았을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불철주야로 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저를 이끌었고, 그 목적이 저를 달리게 했습니다. 앞에서의 비유처럼 고정된 곳을 향하여 쭉 딸려간 고무줄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목적에 이르려면 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21세에 이스라엘 3대 왕으로 취임한 솔로몬의 목적은 백성을 잘 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8~9).
앞에서 말했듯이 목적을 세우면 길이 보이듯, 솔로몬은 그러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바로 예배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천 번제를 드렸고, 마침내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무엇을 주기 원하느냐?”고 묻자 그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 지혜로 그는 백성을 잘 치리했고, 옳은 재판을 했습니다.
목적에 빨리 도달하게 하는 지름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혜입니다. 에스더가 하만의 궤계를 알고는 사흘 금식기도를 한 후에 아름답게 차리고 왕 앞에 나가 잔치를 배설할 뜻을 비칩니다. 왜요? 하만을 궁지에 몰기 위해서입니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지혜로운 처사였습니다(에5~7장). 야곱의 목적은 금의환향이었습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삼촌에게 얼룩이 있는 양을 달라했고, 삼촌의 허락 하에 그는 버드나무와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그것을 양 떼를 향하게 하여 양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게 했더니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다롱한 새끼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삼촌보다 많은 양 떼를 얻었습니다(창30:30~43).
앞에서 저의 목적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전 지구촌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저는 세계로 나가면 그 지역에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활용합니다. 저의 목적에 빠르게 도달하기 위한 지혜입니다.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잠3:13~ 15). 목적은 내 삶 자체요, 나를 규정하는 것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입니다. 지혜와 계획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목적은 사람들마다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계획하신 바대로, 곧 달란트대로 목적을 정하면 됩니다. 가정주부라면 가정의 행복과 가족의 건강이 목적이 되어야겠지요. 이 목적이 확고하다면 집안일이 힘들어도 웃으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으로서의 목적의식이 출근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할 것이고, 목적의식이 바로 섰을 때 학생으로 공부하는 것이 신바람날 것입니다. 억지로, 남들이 하니까 하는 것과 목적을 놓고 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의 결과를 낳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목적을 향해 갈 때 그 목적이 당신을 향하여 달려올 것입니다.
2011년, 일생일대 최고의 해가 되길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향하여 달려가십시오. 그리고 지혜를 얻어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십시오. 할렐루야!
계획하지 않는 자는
망하기로 계획한 자다
목적은 삶의 나침반이며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