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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전염병을 막으려면 예방접종하라 (고전14:1~26)

564호 · 2010-12-17

이 세상은 육(肉)이 살기 좋은 곳입니다. 이 세상은 절대 영(靈)이 살기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생활을 해야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육이 살기 좋은 이 세상에서 갈등하고, 그것과의 전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엡6:12).

그래서 불세출(不世出)의 사도 바울도 늘 이런 갈등이 있었음을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7:23~24). 대사도 바울조차도 늘 세상을 좇으려는 육체와의 싸움이 너무 힘들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죽겠다.’ 이겁니다.

그러나 그는 그 싸움을 이겨냈습니다. 비록 그 싸움이 질기고 힘들었지만 결국 이 세상을 좇는 육을 이기고 그는 승리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따라 살면, 다시 말해 육신을 좇으면 결국은 사망인 줄 그는 알았고,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8:6~7).

사도 바울은 육을 좇는 이 세상의 법을 ‘죄의 법’이라 했습니다. 왜냐? 이 세상은 죄의 세력인 마귀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이 얼마나 죄 구덩이인지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5:19~21).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과의 싸움에서, 아니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전쟁을 하려면 먼저 전투복을 입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3절에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신갑주’란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이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 온 몸을 감싸 입는 갑옷과 투구를 말합니다. 곧 이 말씀은 완전무장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영적 완전 무장은 무엇이냐? 그것은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는 것입니다. 성령의 옷을 입어 방어막을 쌓는 것입니다.

또한 이 세상에 만연하고 있는 죄악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와도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것들을 막을 방법은 예방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이 침투하지 못하게, 혹 침투하더라도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면역력을 갖게 하는 것이지요.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은 영적 예방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우리의 본향으로 가기 전까지는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죄악이 와도 물리치고 이겨낼 수 있도록 예방접종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선교일행이 아프리카에 가려면 풍토병 예방주사를 접종하듯 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것은 이 세상 죄악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세상을 좇으려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비결이 여기 있습니다.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14:18). 방언은 성령을 받았다는 외적증거입니다. 곧 성령의 겉옷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에게 성령이 임하니 가장 먼저 나타난 현상이 바로 방언이었고(행2), 이방인 고넬료의 가정에 성령을 부으시니 거기에 모인 자들이 다 방언을 말한 것이 이를 증명합니다(행10).

방언은 자기에게 덕을 세우지요.(고전14:4). ‘덕을 세운다는 것’은 영적 깨달음을 준다는 것입니다. 곧 내가 영적으로 흔들리지 않게, 세상으로 치우치지 않게 해주는 것이 방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방언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직 앞의 푯대만을 향해 갈 수 있었던 비결은 사도 바울처럼 방언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대선배인 바울도 세상으로 나가려는 육적인 생각 때문에 고민하고 고민했는데 저라고 어찌 안 흔들렸겠습니까만, 그래도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은 무시로 방언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우리에게 성령의 옷을 입히기 위해서입니다. 성령만이 우리를 세상에서 건지고,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힘입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사람의 속성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속성으로 살 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는 비결, 그것은 곧 방언기도를 쉬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삶의 나침반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천국에 갈 수 있는지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잃는다면 여러분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 육이 이끄는 대로 세상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성령 충만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며”(살전5:19).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언을 왜 하냐?’고 합니다. 게다가 방언을 금하는 교회도 있다니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이는 전쟁터에 나가는데 갑옷도 입히지 않고, 무기도 들려 보내지 않는 것과 동일하고, 아프리카에 나가는데 ‘무슨 예방접종이냐?’ 하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그러니 전쟁에 나가기 무섭게 총칼에 맞아죽고, 풍토병에 걸려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입니다.

영이 잘 되려면 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방언기도는 못 알아듣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는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14:2). 따라서 마귀도, 귀신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이 들으시는 기도인 것입니다. 물론 방언통역의 은사까지 받으면 더욱 좋습니다.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하신 말씀(고전12:31)에 주목해야 합니다.

전쟁 시에 다양한 무기가 사용되는 것과 같이 고린도전서 12장에는 다양한 성령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굳이 방언에다 힘을 주는 까닭은 방언기도를 함으로 내가 바로 서야 교회도 바로 세울 수 있고, 남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꾸 세상이 좋아 보입니까? 세상의 유혹이 감미롭게 느껴집니까? 당신에게 시급한 것은 성령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방언기도를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목사가 성도들이 이성으로 보이고, 돈으로 보입니까? 망조가 들린 겁니다. 지금 방언기도를 하여 자신을 깨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세상은 육이 살기 좋은 곳이지, 영이 살기 좋은 곳이 아닙니다. 영이 살기 좋은 곳은 세 번째 하늘, 곧 우리 주님이 계신 그곳입니다. 그러니 그 나라에 가기까지 영이 병들지 않도록, 영이 육에 먹히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요? 늘 방언기도를 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서 악한 마귀가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지 못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누구도 예외는 없습니다. 아무리 맹장이라도 무기가 없으면 전쟁에서 죽을 수밖에 없고, 돌고래도 물을 떠나면 죽듯이, 목사라도, 전도사라도, 장로, 권사, 집사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않으면 마귀의 밥이 되어 영이 죽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습관적으로 성령으로 기도한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도 무시로 성령으로 기도해야 함은, 악한 마귀는 우리가 요단강을 건너기까지 집요하게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사도 바울이 ‘오호라’ 하며 한탄했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권유한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이 험한 세상에서 영적 승리자가 되십시오. 성경은 영적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혜택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는 것을 말씀(요삼1:2)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영·혼·육에 승리합시다. 할렐루야!

물 떠난 고기는 벌레 밥이 되고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는 말라 죽는다

전쟁에 이기려면

무기가 좋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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