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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예수를 알고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다 (행20:23~24)

557호 · 2010-10-29

배움은 목적이 아닙니다. 목적에 이르는 수단입니다. 즉 공부해서 사법고시에 붙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법관이 되어 이 나라의 법치를 실현하려는 것이 목적이고, 열심히 공부해서 자격증을 따는 것은 자격증이 목적이 아니라 그 자격증을 가지고 그 분야에 종사하며 꿈을 이루어가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동일하게 우리가 예수를 구원자로 믿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목적이며,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성령을 받음으로 우리가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당신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것으로 목적에 이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가 복음을 전할 때, 그 목적이 완성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빌립 집사를 보십시오. 성령을 받은 빌립 집사에게 주의 사자가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고 명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를 가진 내시를 만나게 하는데, 빌립이 내시를 만나 무엇을 했습니까? 바로 예수를 전했습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행8:35). 또한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120문도도 성령을 받은 후에 나가 복음을 전했고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쌔”(행8:4), 베드로도 성령을 받은 후에 나가 전해서 제자의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행2:41).

그러면 “성령을 받기만 하면 다 전도를 할 수 있나요?” 하고 의문을 던지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주님은 분명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이라는 단서를 다셨습니다. 왜요?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기 때문입니다. ‘권능’이란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폭발력을 의미합니다.

다이너마이트의 화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바위를 뚫는 것, 산을 없애는 것, 이게 모두 다이너마이트로 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것을 사람이 삽이나 괭이로 때리고 부순다면 몇 년을 걸려도 터널 하나 뚫기 힘들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바위처럼 완악한 심령도, 산처럼 큰 자도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나 지식으로 전한다면 더 많이 배운 자를, 더 큰 지혜자를 어떻게 깨뜨릴 수 있겠습니까? 이는 삽으로 터널을 뚫는 것이나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왜 당신은 성령을 받고도 여전히 주저앉아 있습니까? 왜 나가서 전하지 않습니까? 왜 짖지 못하는 개처럼 함구하고 있습니까? 그런 자에게 주님은 엄히 경고하십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겔33:8). 사도 바울도 동일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고전9:16). 성령을 받고도 전하지 않으면 죄 없다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전히 올인 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적은 오직 주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다 마치는 데 있었습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3~24). 그래서 예루살렘에 가면 포승줄이 기다리고 있는 줄 알면서도 도망가지 않고 그곳으로 간 것입니다.

당신이 받은 성령이나 사도 바울이 받은 성령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사도 바울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에 매진하지 못합니까? 저는 그랬습니다. 이는 자랑이 아니라 당당하게 밝히는 것입니다. 최루탄으로, 몽둥이로, 또한 언론으로, 그리고 검찰, 경찰, KGB…. 온갖 핍박과 협박에도 저는 복음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 떠나가도 마음은 갈가리 찢기었지만 주님께 받은 사명만은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왜냐? 사명은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전해야 합니다. 복된 소식을 나만 소유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부모님이 제게 재산을 다 넘기신 것은 우리 7남매 모두 잘 살게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것을 받아 저 혼자 누린다면, 우리 부모님의 마음이 아프실 것이고, 한 편으로는 괘씸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주님이 오셔서 전하신 복된 소식을 우리가 먼저 누렸으니 아직 듣지 못한 자에게 전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전해야 듣지 않겠습니까? 듣지 않고 어찌 믿겠습니까?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롬10:14).

주님은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이 불은 성령의 불입니다. 불의 성질은 타오르면 퍼져나간다는 것입니다. 곧 성령의 불은 퍼져나가야 합니다. 어떻게요? 성령을 받은 우리가 들고 나가서 사람들과 부딪혀 퍼뜨리면 퍼지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40일 동안 세상에 남아계셨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최후 지상명령을 일깨워주기 위함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8~ 49).

‘위로부터 성령을 받으면 나가서 내 증인이 되라’ 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의 존재목적은 예수의 증인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고로 예수를 안 믿는 영혼에 대한 불타는 열정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도토리를 그대로 두면 한 알의 도토리지만, 그것을 땅에 심으면 아름드리 참나무가 되고 엄청난 도토리도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 혼자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심으면 많은 영혼을 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전도는 투망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투망을 많이 던질수록 많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지요. 투망해보셨습니까? 물고기가 가득한 투망을 잡아당길 때의 기분은 투망을 해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전도의 열매를 거둬본 자가 전도의 맛을 아는 것과 같지요.

이번 멕시코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LA 공항 라운지에서 로버트 슐러 목사의 크리스털 처치(Crystal Church)가 파산신고를 했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했습니다. 왜 그렇게 유명하던 교회가 그 지경이 되었을까요? 이는 교회가 나태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배불러 전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된 것입니다.

교회의 제일 목적은 선교에 있습니다. 전도하는 교회, 늘 새 생명이 약동하는 교회가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예수중심교회가 마치 산부인과처럼 매일 새 생명이 탄생하는 곳이길 바랍니다. 그래서 교회의 부흥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가 날로 확장되기를 늘 소망합니다.

비누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에게 비누를 주면서 써보게 해야 비누가 무엇인지 알 것이고, 촛불만 켜고 있는 자에게 전기가 들어오게 해야 ‘이런 세상도 있구나’ 할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하나님을 안 당신이 하나님을 모르는 자에게 전해야 할 이유입니다. 전도하십시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52:7).

할렐루야!

현실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가치 있는 곳에 투자한다

기름없는 자동차를 어디에 쓰며

배터리없는 휴대폰을 어디에 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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