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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인생을 좌우한다 (삼상8:1~22)

556호 · 2010-10-22

괴테와 함께 독일이 낳은 세계적인 시인 하이네는 전도서를 일컬어 ‘회의주의의 작은 노래’라고 했습니다. 사실 전도서를 잘못 이해하면 인생무상이나 허무주의, 염세철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인생을 달관한 솔로몬이 쓴 참회록으로, 그는 인생을 ‘헛되고 헛되다’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는 지식을 통해 삶의 의의를 찾으려고 했으나 결국 아는 것이 많으면 번뇌가 심할 뿐이라고 했고(전1:13~14), 향락으로 즐기는 것도, 사업을 크게 하는 것도 다 부질 없는 일이라고 피력했습니다(전2:1~11).

그렇다면 왜 솔로몬은 이렇게 비관적인 말을 했을까요?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축복과 지혜를 받은 솔로몬이 왜 이러한 허무주의자가 되었을까요? 저는 솔로몬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은 무엇을 가졌느냐(to have)가 아니라 그 안에 무엇이 존재하고 있느냐(to be)로 판가름 난다는 것입니다. 즉 소유 지향적 삶이 아니라 존재 지향적 삶일 때 아름다운 인생, 성공한 인생, 복된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부러울 것이 없을 만큼 많은 것을 소유했으나 그의 중심에 하나님이 온전히 계시지 않음으로 인생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던 것입니다. 그 곳으로 바람이 새어 들어오니 사는 것이 헛되고 헛되게 느껴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인생을 정리하면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충고합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11:9).

이는 “청년들아, 지금 너희들 마음대로 살아도 좋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좋으나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바로 이 말입니다. 즉 ‘내가 살아보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창조자를 기억하는 삶을 살아야 아름다운 삶, 온전한 삶이 되더라’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된 유언을 남긴 사람이 있는데,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후로 헐벗고, 매 맞고 정처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 바울이야 말로 인생의 마침표를 찍을 때 ‘인생은 참으로 고되고 헛되다’라고 탄식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오히려 이렇게 유언합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6~ 8).

‘의의 면류관을 받을 만큼 내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셨기에 오로지 하나님을 위한 삶, 하나님께 드린 삶을 살았고, 그것이 비록 사람이 보기에는 힘들고 고된 삶이었지만, 돌이켜볼 때 후회함이 없는 삶이 된 것입니다.

1997년 9월 2일, 92세를 일기로 마더 테레사 수녀가 타계했습니다. 같은 주간에 영국의 다이애나 황태자비도 사고로 세상을 하직했습니다. 세계는 이 두 거물의 죽음으로 떠들썩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의 죽음이 같은 것일까요?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그 안에 존재했었느냐, 그 결과 무엇을 했느냐가 성공의 관건이라면, 적어도 두 사람의 죽음은 전혀 상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을 마감하는 날, 우리는 솔로몬처럼 인생에 후회를 남기면 안 됩니다. 솔로몬이 늦게라도 깨달은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지만, 그 좋은 세월을 다 헛되이 보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우리는 바울처럼 자랑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안에 하나님이 계셔 그 분을 따라, 그 분의 뜻대로, 그 분을 위해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래서 큰 열매는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주를 위해 나가면, 그날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처럼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처럼, 탕자처럼 세월을 다 허비하고서 나중에 돌아와 후회하는 삶 말고, 지금부터 차근차근 주를 위해 좁은 길, 좁은 문으로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울교회 이시대 목사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성도가 이사예배를 드려달라고 해서 갔답니다. 가서 보니 예전보다 훨씬 좋은 집으로 이사를 했더랍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이 집사님이 아주 오래 전부터 보험을 몇 개 넣어놨답니다. 아주 작은 것으로요. 주위에서는 그거 별로 도움도 되지 않을 테니 해약하라고 했지만, 푼돈으로 넣는 거라 자동이체 해놓고 잊어버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이 성도가 갑상선 암에 걸려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글쎄 푼돈으로 넣어놓은 보험에서 1억 8천만 원의 보상금이 나왔답니다. 그래서 수술비하고 남아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겁니다. 이시대 목사가 그 성도의 말을 듣고는 이렇게 말해줬다고 합니다.

“성도님, 별거 아닌 걸 넣어놨는데 어머 어마하게 보상받았지요? 영적인 것도 동일합니다. 성도님이 매일 성경 읽고, 매일 기도하는 것이 별거 아닌 거 같지요? 그러나 그날 가면 엄청난 것으로 보상되고요, 성도님이 조금 봉사하고 헌신한 것도 그날에는 엄청난 것으로 성도님에게 돌아올 겁니다. 그러니 지금 주를 위해 사세요.”

이시대 목사 말이 맞습니다. 남이 보기에 별 볼일 없는 봉사, 내가 생각해도 하찮은 헌신들도 그 날에 큰 상으로, 영광의 면류관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니 지금 무엇을 해야 할 지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복음을 들고 불철주야(不撤晝夜), 동분서주(東奔西走)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 날에 받을 상 때문에, 사도 바울과 같은 의의 면류관을 상상하며 달리는 것입니다. 조금 쉴 수도 있지만, 인생을 마치는 날 후회하지 않으려고 오늘도 달리고 달리는 것입니다.

어떤 전자제품의 광고 문구에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주를 위해 살 것인가, 세상의 것을 더 갖기 위해 달릴 것인가는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그 결과 역시 여러분의 몫이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세워달라고 사무엘에게 조르는 장면입니다. 사무엘이 이를 두고 여호와께 기도하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왕이 세워지면 당할 부당한 일에 대해 설명해주지만, 그들은 한사코 왕을 세워달라고 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종 사사가 아닌 왕을 선택했고, 당연히 그 결과도 책임져야했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롬9:30~32). 선택한 대로 결과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왕으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음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삶을 선택하든 그것은 우리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결과도 우리의 몫이 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잘 생각하고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위에서 간증한 성도처럼, 작은 것일망정 오랫동안 꾸준히 적립하면 엄청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매일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것, 유치부에서 봉사하는 것, 안내위원, 성가대, 자동차 봉사, 남몰래 누군가를 조금 돕는 것… 이런 것들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꾸준히 계속될 때 티끌모아 태산이 되는 것처럼 하늘에 엄청난 상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시절 놀다가 큰 것으로 한 방에 하자’ 그러지 말고, 오늘부터 하루하루 꾸준히 주를 위해 삽시다. 그래서 세상을 마치는 날, 솔로몬처럼 뒤늦게 후회하는 삶이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나를 위해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합시다. 할렐루야!

내일 세계의 종말이 온다고 해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자

매일을 너의 최초의 날인 동시에

너의 최후의 날인 것처럼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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