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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멕시코에 가야 합니다

556호 · 2010-10-22

오늘처럼 기쁘고 설레인 적이 없던 것 같다. 남미 선교에 목사님과 함께 한지 벌써 10년, 그동안 많은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들과의 만남 자체가 즐겁고 신이 난다.

목사님은 ‘할멈, 할멈’하며 끔찍이 챙겨주시질 않나, 그렇게 힘들게 하던 이 선교사도 이제는 서로 없으면 못살 것 같은 사이가 되었다. 지금도 그녀가 추천해준 새 여행 가방으로 기분이 그만이다. 항상 커다란 가방을 끌고 다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는데, 새로 산 가방은 이 선교사 표현처럼, 손만 대면 저 알아서 굴러가는 느낌이다.

가방에는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고추장, 9가지 갖은 재료를 섞어 만든 것이기에 맛이 그만이라 세관 통과에 걸리지 않도록 늘 신경 쓰는 품목이다. 그리고 햇반에, 컵라면 등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종을 대접하는 일 하나 하나가 그날의 상(償)임을 알기에 비록 60이 넘은 나이지만, 힘들어도 이 일만은 죽을 때까지 해야 할 일이라 여긴다.

휴스턴 공항(Houston Airport)에서 멕시코(Mexico)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로 가기 위해 에어트레인(Air Train)으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다. 올려다보니 오늘따라 에스컬레이터 경사가 매우 급해 보인다. 중간 쯤 올라왔을까? 가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 뭔가 뒤에서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때 몸이 허공에 뜨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아, 이렇게 죽는 것인가?’

우리가 서울 본부로부터 김성자 전도사의 사고 소식을 접한 것은 멕시코시티(Mexico City)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였다. 그녀는 이동 중인 우리와 전화연결이 되지 않자 서울 본부로 기별을 넣어놓았었나 보다. 부랴부랴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그녀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우리는 그녀가 쓰러져 의식도 없는 상태는 아닌지 바짝 긴장했으나, 감사하게도 목소리엔 생기가 느껴질 정도로 밝았다.

“걱정 마세요. 내일 꼭 갈 거예요.”

다행히 휴스턴에 이종사촌오빠가 살고 있어 병원에 함께 있단다. 목사님은 멕시코시티에서 1박하는 동안 한숨도 주무시지 못하고 김성자 전도사를 위해 기도하셨다. 이번 집회를 앞두고 꿈도 좋지 않았던 마당에 이런 사고소식을 접하자 잠을 이루실 수 없었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다시 전화를 걸어보았다.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소견이 있어 심장 병동 응급실로 옮겨져 있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 꼭 간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간절히 기도해주시며 무리하지는 말라고 당부하셨다.

비야에르모사 공항에 낮 12시에 도착하여 통화하니 비행기 예약을 했다며 저녁 9시 경에 도착할 것이란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몸도 성치 않으니 이곳에서 하루 자고 아침 일찍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그녀는 단호했다.

“아니에요, 목사님. 전 바로 목사님께 가렵니다.”

목사님은 현지의 호세(Jose) 목사에게 누가 남아서 그녀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하고 팔렌케(Palenque)로 출발하였다.

그녀는 새벽 1시가 넘어서 도착하였다. 목사님은 그때까지도 계속 기도하고 계시다가 그녀를 맞았다.

“이야, 우리 할멈 잘못됐으면, 집회 마치자마자 모두 미국으로 가야할 판이었는데 얼마나 감사하냐?”

얼굴이 핼쑥해진 것이 안쓰러웠지만, 살아와서 서로 만나는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유, 목사님도. 제가 왜 잘못돼요? 하긴 뒤에 사람이 없었으면 전 죽고 말았을 거예요. 휴스턴 공항에 난리가 났었지요. 3~40명 되는 보안요원들이 달려들었고, 저를 들것에 꽁꽁 묶어 병원으로 옮겼어요. 응급실로 이동하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어요.

‘목뼈가 부러진 것은 아닐까? 차라리 죽어 천국에 가야지 어디 잘못되어 영영 불구자가 되면 어쩌나? 하나님, 저를 일으켜주실 것이 아니면 차라리 데려가세요.’ CT촬영을 위해 기계를 통과하고 났는데 한 이상을 보았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새것으로 바꿔주시는 겁니다. 저는 확신이 들었어요. 그리고 제 영이 ‘나는 가리라’ 찬양하기 시작했어요. 이젠 누가 뭐래도 나는 멕시코에 간다고 말했어요. 가다가 죽더라고 가야한다고 했어요. 이종사촌오빠를 포함해서 다들 정신 나갔다고 하더군요. 귀신을 쫓고 방언으로 기도하니 다들 미친 사람 취급하는 마당에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심장에 이상이 있다며 옮겨진 심장병동 닥터는 이대로는 절대 병원을 나갈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가야한다고 계속 말하며 기도했어요. 오후 들어 병실 게시판에 ‘Go home(퇴원)’이라는 글씨를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나더군요. 멕시코로 떠나기 위해 병원을 나서는데 모두가 박수를 치며 놀라워했어요. 어제만 해도 꼼짝도 못하던 사람이 쌩쌩하게 걸어서 나가는 걸 보니 얼마나 신기했겠어요. 지금 제가 여기서 목사님과 함께 앉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우리 모두는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새벽 4시까지 웃음꽃을 피웠다. 그렇게 우리는 근 10년 동안 서로 없어서는 안 될 가족이 되어있었던 것이다.

김성자 전도사는 이튿날부터 세미나에서, 집회에서 단에 올라 ‘멕시코를 축복하소서’라는 18번 찬양을 불렀다. 그녀가 단에 서서 찬양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여느 때 보다 깊은 울림이 퍼져나왔다.

“내가 여기 와서 찬양까지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하루 만에 나를 일으키시고 내 입술로 찬양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죽는 날까지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살려주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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