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상상력의 전원을 끄지 말라 (창1:26~28)
누구에게나 성공의 길은 열려져 있습니다. 단지 성공의 길을 찾지 못해서 성공에 이르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 저는 성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제시한 이정표만 따라 간다면 여러분들은 분명히 성공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먼저 상상력의 전원을 끄지 말아야 합니다. 잉어 중에 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코이는 작은 수족관에서는 3~5센티밖에 안자라지만, 큰 어항과 연못에 넣으면 12~15센티까지 자라고, 강물에 넣으면 90~120센티까지 자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도 코이처럼 생각의 크기에 따라 인생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생각의 크기, 이는 곧 상상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상력의 사전적 의미는 “마음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의 영상(映像)을 만들거나 경험을 초월한 세계를 만드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성경에서는 상상력의 의미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인간의 능력은 무한합니다. 아인슈타인 같은 대단한 사람도 뇌의 2%밖에 쓰지 못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의 경우 뇌의 0.1%정도를 쓴다고 합니다. 그러니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당신의 형상대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창1:26).
우리 어릴 때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 하는 노래를 불렀지요? 송아지가 어미 소를 닮았듯,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 우리의 능력도 무한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을 닮은 자신들을 비하하며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어디 자기뿐입니까? 자기 아내와 남편, 자식들의 능력을 과소평가합니다. 이를 회개해야 합니다. 왜요? 당신들이 저들의 상상력의 전원을 빼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면서 말입니다.
제발 상상력을 제한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선친들도 상상의 나래를 펴서 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늘의 뭇별을 보며 자손을 상상하더니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야곱은 무늬 없는 양들 앞에 버드나무와 신풍나무와 살구나무를 놓고 얼룩지고 점 있는 양의 새끼가 나올 것을 상상하더니 상상한 대로 되어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하였고, 요셉은 꿈을 꾼 후에 자신이 대단한 인물이 될 것을 상상하며 고난을 견디더니 결국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도 그날에 받을 상과 의의 면류관을 상상하며 험난한 세상을 이겨내고 사도의 길을 갔던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사도 바울처럼 그날을 그리며 오늘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상상을 하면 그것이 빛나는 아이디어로 발현되고, 다시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바탕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능력의 무한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바로 이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 즉 내 생각이 죽고 오직 예수님이 살아야 우리의 상상력이 현실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 안에서 우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빌4:13).
꼭짓점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 한 시대의 획을 그은 사람들은 무한한 상상력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때론 몽상가라는 소릴 들었습니다만, 그들은 그것을 현실로 이끌어내어 위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라이트 형제의 비행도 날 수 있다는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고, 인간이 달나라에 간 것도, 두바이가 사막에서 세계적인 도시로 변모한 것도 모두가 인간의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도 무한대로 상상하십시오. 그 상상이 발로가 되어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 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상상력이 발동했다면 이제는 부지런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 그것을 현실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히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합니다. 야곱이 상상한 것만으로 거부가 되었나요? 아닙니다. 그는 정말 밤낮없이 열심히 일했습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창31:40).
사도 바울이 그날의 상을 그리기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사나 죽으나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느헤미야도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되는 것을 상상만 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한 손에 쟁기를 들고, 한 손에는 병기를 들며 밤에는 파수하고 낮에는 역사하여 52일 만에 대업을 이룬 것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게으른 자는 가난하게 되고(잠10:4),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며(잠10:26), 남의 부림을 당하고(잠12:24), 어려움이 많게 되며(잠15:19), 구걸해도 얻지 못한다고 말입니다(잠20:4). 상상하며 침상에서 뒹군다면 그것은 정말 몽상에 그치고 말 것입니다. 잠자는 자는 꿈을 꾸지만, 부지런한 자는 그 꿈을 이룬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게으른 자를 곁에 두면 안 될 것입니다. 더욱이 참모진이 게으르다면 앞날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곧은 뿌리는 나무를 지탱하지만 잔뿌리가 영양을 끌어들이는 것처럼, 참모진에 의해 그 단체가 성실히 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6:11~12).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부지런하더라도 그 일이 가치 없는 일이라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해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이런 비유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13:44~48).
천국은 내 모든 것과 바꾸어도 좋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동일합니다. 천국생활을 원하면 가치 있는 사람, 가치 있는 일, 가치 있는 물건에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보람도 있고, 이익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7:28).
과테말라 제2의 부호인 후안과 함께 저는 그의 땅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산야를 보니 관리자들이 나무들을 잘라내고 불로 태우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왜 멀쩡한 나무들을 잘라내고 불태우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필요 없는 나무들을 잘라 없애고 거기에 카카오를 심고 목화를 심으려 합니다.” 저는 그가 참으로 지혜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보통 사람들은 산의 나무를 잘라내고 불태운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후안의 그 생각을 누가 알겠습니까? 그는 산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그가 원하는 대로 보고 개발한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성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해드렸습니다. 먼저는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며, 두 번째는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며, 셋째는 가치 있는 사람과 가치 있는 일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다 성공합니까?” 이렇게 반문하시는 분들, 일단 이를 실행해보십시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니까요.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렘6:19).
할렐루야!
생각보다 무서운 파괴력은 없다
너는 무슨 생각으로 사느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