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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목차 › 금주의 말씀

신명기 3장 ~ 신명기 16장

541호 · 2010-07-09

*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 (신명기 10:12~16)

무더운 여름철에는 음식점마다 음식보관에 신경을 씁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세균에 의해 식중독을 일으킬 소지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가기관의 권력도 집중되면 부패되기 때문에 국회나 언론, 시민단체 등의 여론 감시기능을 통하여 권력을 적절히 통제하여 부패를 막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신앙생활의 부패에 관하여 각별한 신경을 쓰고 계십니다. 과거 이스라엘 민족은 물 없는 광야에서 매일 생수를 마셨고 만나를 먹었습니다. 또한 매일 같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이적 속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무더운 여름철 세균에 의한 음식의 변질처럼 이들은 여러 차례 변질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변질을 끝까지 지켜보고만 계실 수 없었기에 끝내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계속 징계하셨습니다(민14:22, 33~34).

이들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들에게 말씀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말씀은 신앙생활의 이정표요, 생활의 수칙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진 광야생활의 이정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생활수칙은 시내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십계명과 율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지 않았던 것일까요? 이는 그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을 통한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이상히 여기셨습니다(막6:6).

예수님이 이상히 여길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불신앙입니까? 예수님은 이들의 불신앙을 진단하셨고, 예수님은 그 원인을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불신앙의 뿌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음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요5:42) 그러면서 예수님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영접하지 않는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요5:43). 즉 이들은 하나님을 맞아들이기 싫어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하나님을 맞이하는 일을 싫어했던 것일까요? 이는 어둠이 빛을 싫어한 까닭입니다(요1:5, 3:19). 어둠 속에서 기식하는 생물들은 빛을 보자마자 어두움을 찾아서 숨고 또 숨습니다. 이처럼 이들은 빛이신 하나님을 거역하고 거부했습니다. 이는 이들의 행위가 악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요3:19).

하나님은 마음의 악, 죄악의 누룩을 제거하기 위해서 방역하고 소독하는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이 변화되지 않으면 일체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음의 할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신10:16).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광야 1세대는 마음의 할례를 무시한 채 광야생활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거역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거역했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무시했습니다. 이들은 안하무인처럼 하나님께 대들었고 또 대항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종인 모세에게 대들면서 이들은 모세의 말과 권위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들은 멸망당했습니다.

할례가 무엇입니까? 이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백성의 표입니다(창17:9~ 10). 할례를 받는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지키며 살겠다고 맹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직접 언약을 맺지 않았을지라도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과는 무관하셨고 이들을 책임질 의무도 없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 중 할례를 받지 아니한 자들은 배신자나 다름이 없어서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끊겨졌습니다(창17:13~14).

그런데 육신에 행한 할례는 진정한 할례가 아니었습니다. 할례의 진정한 의미는 마음의 할례였습니다(롬2:28~29). 마음의 할례를 위해서 하나님은 결국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얻어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사11:2, 겔11:19, 36:26).

성령을 인하여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이를 깨닫고 성령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유지하고자 하는 근본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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