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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목차 › 선교기행

더욱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 원합니다

541호 · 2010-07-09

“아르만도 목사가 대접하기를 좋아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집을 주신 것 같습니다.”

멕시코(Mexico) 아카풀코(Acapulco) 집회를 주관한 아르만도(Armando Fernandez) 목사는 모든 집회 일정을 마친 후, 자신의 집으로 목사님과 우리 일행을 초대하여 만찬을 베풀어주었다.

밤이 깊은 시간이었지만, 아르만도 목사의 사모와 아들, 예비 며느리, 딸까지 총동원되어 성심으로 대접해주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요13: 20)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모습이었다.

그의 집은 넓은 정원에 2층집으로 잘 꾸며져 있었다. 목사님은 그의 집에 들어서자마자 식솔들과 포옹을 하며 인사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그 지역의 여러 목회자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 아르만도 목사가 대접하기를 좋아하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 집을 주신 것 같습니다. 혹자는 목사가 이렇게 넓은 집에 산다고 손가락질할지 모르지만, 아닙니다. 나는 그들과 생각이 다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잘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높은 지위에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머리가 되어야 합니다.

남아공에 갔을 때, 로버츠 목사의 사택으로 초대받아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의 집은 이 집보다 몇 배는 더 넓고 풀장에 테니스장까지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그런 집을 소유하게 된 데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었습니다.

로버츠 목사님은 목회를 시작하면서 자기 집을 팔아 교회를 짓고, 자신은 전셋집에 들어가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교회가 부흥되고 성도들이 잘 살게 되자 목사님이 거할 수 있는 집을 지어드리자고 성도들이 힘을 모아 지금의 저택을 꾸며주었다고 합니다.

로버츠 목사가 자신의 전부를 드려 심었기에 하나님께서 백배로 갚아주신 것입니다. 여기 계신 목사님들도 생각을 바꾸기 바랍니다. ‘목사가 저런 집에 살아도 되나’ 하고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나도 하나님께 더욱 헌신하여 저런 집에 살면서 성도들을 잘 살도록 가르치고 인도하리라’ 마음먹기 바랍니다.

미국 갈보리 교회의 척 스미스 목사를 만나러 갔더니 기도하러 가셨다고 하더군요. 나는 어디 기도원에 가셨나 했더니 글쎄 개인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셨다는 겁니다. 미국의 하나님은 다릅니까? 왜 동일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면서 이리도 다르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부자 중에 부자이십니다. 부자 아버지를 둔 자녀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이제 아르만도 목사가 더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기 원하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큰 집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분입니다.”

모두가 박수를 치며 목사님의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하였다.

아르만도 목사는 두 아들과 두 딸을 두고 있었다. 두 아들은 모두 회계사요, 두 딸은 모두 방송사 기자란다. 두 아들은 만찬에 온 손님들을 위해 선물까지 준비하여 나누어주는 것이었다. 참 다복한 가정이었다.

그런데 아르만도 목사 옆자리에 곱게 늙은 한 노파가 앉아있었다. 목사님이 누구신지 물었다. 아르만도 목사의 설명을 듣고 모두가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분은 저의 영적 어머니이십니다. 과테말라에서 선교하시고 있는 여종입니다. 저는 이분을 통해 예수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두 번씩 찾아와 예수를 전해주었지요. 제가 예수를 영접한 이후부터 저는 이분을 저의 영적 어머니로 삼아 아예 저희 집에 모시고 살고 있답니다.”

선교여행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아무래도 목사님을 대접하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역시 복 받을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복 주실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헌신짝처럼 여긴다. 잘 될 때에는 간이라도 내줄 것처럼, 갖은 아첨으로 충성까지 맹세하며 따라붙는다. 그런데 시련이 오고 어려움이 닥치면, 받은 은혜를 헌신짝처럼 팽개치고 마는 사람들을 본다.

그런 사람들이 어찌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어떻게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 알고 있다면, 인간의 탈을 쓰고 그럴 수 없을 것이 분명한데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행동들을 손바닥 뒤집듯 쉽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복 받을 사람도 이미 하나님이 정해놓으신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르만도 목사의 행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신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삶의 진리를 가르쳐준 분을 생명처럼 귀히 여기고 모시고 산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럴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은혜는 기억하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살아가는 양심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카풀코는 이래저래 우리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 같다. 목사님은 눈을 다쳐 선글라스를 끼고 집회와 세미나를 진행하셔야 했기에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아카풀코는 내 평생 잊지 못할 곳이 되었다. 억울해서라도 내년에 다시 와서 집회를 해야겠다.”

아르만도 목사는 내년 4월에 집회를 준비하겠다고 약속하였다. 아카풀코에 다시 한 번 하나님의 크신 영광이 나타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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