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퍼낸 웅덩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한 뒤 아이에게 처음 젖을 물리던 날, 남편은 카메라를 들고 나의 수유하는 모습을 찍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혹시 아이가 나중에 자라서 자기가 어디서 나온 줄 모르고 잘난 척 할 수도 있으니 인증자료로 육아의 과정을 섬세하게 기록해둬야 한다고 그랬다.
그때 어이없이 웃었던 적이 있었다. 내 아이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을 보여주지 않아도 엄마가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고 살아간다.
우여곡절 끝에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지도 거의 이십년이 되어간다. 그 긴 시간동안 수많은 제자들이 나의 곁을 떠나갔고, 지금도 여전히 나를 자기의 어머니만큼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아이들도 있다. 그 아이들을 생각 할 때면 지난 시절의 추억이 아련하게 그리움으로 잦아든다.
학생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고 찾아올 때, 성적이 좋은 학생들도 있지만 대개는 성적이 부진하여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정말 성심껏 그들의 성적 향상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우수한 대학교로 진학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실력이 향상되고 성적이 오르면 선생의 가르침 따위는 상관없이 순전히 자기가 잘나서 인 줄 아는 아이들, 간혹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아이들이 우여곡절 끝에 대학에 진학하고 나면 그동안 눈물겹도록 수고한 선생의 공로는 하나도 없이 그저 자기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을 간 줄 착각하는 어리석은 아이들이 더러 있다. 그들이 바닥에서 헤맸던 시절의 성적표를 나중에 우연히 볼 기회가 있어서 다시 보게 되면, 씁쓸한 웃음이 사라지지 않을 때가 더러 있다.
그런 시간이면 어김없이 아주 오래전 처음으로 예수님을 만났던 시절을 기억에 떠올려본다. 혹시 나도 고마움을 모르는 어리석은 나의 제자들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나 싶어서이다.
기고만장하여 이웃 사람들 알기를 정말 우습게 여겼고, 세상에서 나보다 잘난 사람이 있으면 나와 보라는 식으로 교만을 떨었고, 수고하고 무거운 인생의 짐을 혼자지고 살면서도 힘든 내색은 절대 하지 않았고, 마셔도 갈증이 가셔지지 않는 세상의 물로 목마름을 해갈하면서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던 그 시절의 나를 기억해본다.
주님을 처음 만나고 한량없는 은혜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몹쓸 죄악을 씻음 받음에 그저 감사하여 한없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의 은혜에 고개를 숙이며 살았는데, 지금의 나는 어떠한지 생각해보면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 허다하게 있다.
긴 세월동안 알뜰하게 챙겨주시며 영적으로 혼적으로 주님의 자녀로 반듯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양육시켜주신 그분들의 은혜는 잊어버린 채, 어느 덧 영적 교만의 옷과 바리새인처럼 두터운 외식의 갑옷을 입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주님!” 하고 탄식의 소리를 내뱉으면서 자신을 책망하고 다시 겸손한 자녀의 자리로 얼른 복귀하지만, 또 어느 사이에 슬며시 자고하고 교만해진 모습을 보면서 가슴을 치고 있다.
날마다 나를 돌아보아 더욱 겸손해지고 더욱 아름다운 빛을 간직한 주님의 자녀가 되고 싶은데, 그래서 천국 가서 주님께 칭찬받고 싶은데, 겸손하며 낮아지는 천성인의 삶이 그리 쉽지 않으니, 오늘도 오래전 하잘 것 없는 나를 퍼낸 웅덩이를 기억하며 눈물로 주님께 두 손을 모아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