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일조는 축복의 종자 씨다(히7:1~8)
지난 주, 광주 예수중심교회를 기도원으로 이전하면서 저는 밤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광주 교인들이 이 기도원까지 다니려면 자동차는 필수입니다. 제발 저들에게 복을 빌어주십시오.” 그랬더니 성령께서 저를 감동하시기를 “그렇다면 온전한 십일조를 내라고 해라.” 하셨습니다.
저는 기도하다말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그렇지, 생활이 불량한 것은 근본 믿음이 불량하기 때문이지.” 그리고 저는 주일 아침에 주일마다 제 식사를 담당하는 서울의 집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 집사, 이 집사가 그렇게 축복을 받은 것은 십일조를 철저히 했기 때문이지?” 제가 거두절미하고 그 집사에게 물었는데, 그 집사는 “그럼요, 목사님. 저는 정말 십일조를 잘 해서 복 받은 사람이에요.
저는 항상 세금을 떼기 전에 먼저 십일조를 떼고요, 항상 더 많은 십일조를 드리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제게 주셨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 집사는 보험 일을 하고 있는데, 그 회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로 최고 연봉을 받고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에서는 많은 선교사를 각 나라에 파송하여 물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풍족한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 제가 진단하건대, 그들이 십일조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거기서 십일조를 떼서 보내는 자들은 다 넉넉하여 오히려 지원금을 사양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지원금을 받고도 여전히 쪼들립니다. 그들 말인즉슨 어차피 그 돈으로 주의 일을 하는 건데 새삼스럽게 십일조를 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제 이야기를 해드리면 이해가 될 겁니다. 목회 초창기에 재정이 어려웠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깊은 기도를 하는 가운데 한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상 중에 갑자기 소가 나타나더니 저에게 ‘도둑놈’ 하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놀란 제가 “누가?” 하고 물었더니 소가 “네가.” 그러는 것 아닙니까? 이상을 본 저는 곰곰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 적이 있나 없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는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때 성령이 저를 깨우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 교회는 올림픽 공원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예배가 파한 후 귀빈실에서 상담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더러는 예물을 들고 오기도 하고, 더러는 개인적인 용돈을 가지고 오기도 했습니다.
옆에서 김종일 장로가 그것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도움을 요청하러 오는 개척교회 목사와 사모들도 많았는데, 그럴 때면 저는 김 장로에게 제게 들어온 용돈을 건네주라고 했습니다. 주의 종들을 돕는 것도 주의 일인지라 십일조를 떼어야 한다는 생각을 제가 미처 못 했던 것입니다.
물론 김 장로도 못했습니다. 그러니 둘이 공범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 후 저는 크게 깨닫고, 지교회 모든 목사들이 저와 같은 우를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 철저한 십일조를 명령했습니다. 그 후 우리 교단은 물질적인 어려움에서 해방되었고 큰 전대를 차고 세계를 복음화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
요즘 기도원을 오가면서 보니까 논마다 거의 모내기가 끝났더군요. 모내기는 볍씨, 곧 종자 씨를 모판에서 길러, 모가 나오면 그것을 논에 옮겨 심는 것입니다. 이 모를 잘 가꾸면 많은 벼를 수확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십일조가 이 종자 씨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또 돈 이야기야?” 이렇게 듣지 마십시오. 볍씨를 심어야 벼를 거두는 것이 이치이듯, 돈 씨를 심어야 돈이 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종자 씨 심는 것을 성가셔하거나 아까워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해의 소출은 없을 것이고, 그 사람의 결국은 궁색일 것입니다.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돈 씨 심는 것을 아까워한다면 그 결국은 어떻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십시오.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험해보라’고 하신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십일조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으셨는가하면 이는 ‘십일조를 심으면 약속한 모든 것을 꼭 준다.’고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부모들이 애들에게 이런 약속을 가끔 하지요? “이번 중간고사에 90점 이상 받으면 꼭 자전거 사줄게. 90점 이상만 받아와 봐. 엄마, 아빠가 약속을 지키나 안 지키나?” 이 말은 90점 이상 받아오면 자전거를 꼭 사준다는 말입니다.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만 제대로 심어봐. 내가 약속을 지키나 안 지키나.” 그렇게까지 약속을 했는데 자전거를 못 받았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당연히 90점 이상 받아오지 못한 아이 책임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난하게 산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십일조를 온전히 심지 않은 우리의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십일조의 기원은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이 전투에서 승리하고 전리품의 1/10을 멜기세덱 제사장에게 드리는 데서부터입니다.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는 믿음으로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 결과 아브라함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또한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의 삶을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 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집에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가난이 지겹지 않습니까? 십일조를 하십시오. 농부가 볍씨를 심듯, 하나님께 돈 씨를 심으십시오. “없는 데 어떻게 드려요?” 하시는 분들, 가난하다고 농부가 종자까지 먹지는 않습니다. 없으니까 심어서 많은 것을 거둬야 하는 것입니다.
즉, 십일조는 풍작을 기원하는 부(副)의 종자인 것입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미연방재정의 16%를 차지하는 막대한 세금을 낼 정도로 부를 축적하고 있는 것과, 유태인들이 세계 금융계를 주름잡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그들은 도적질을 해도 십일조는 꼭 드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십일조가 무엇입니까? 10개의 소득 중 1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100만원 벌면 10만원 하나님께 드리고, 닭이 알을 열개 낳으면 한개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돼지가 새끼 낳은 것까지는 드리는데, 소가 새끼를 낳으면 못 드립니다. 왜요? 아까워서요. 그러니 하나님이 큰 복을 못 비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십일조를 드리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박하나 회향 같은 중요 소산물의 10분의 1은 엄격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의(義), 사랑(仁), 믿음(信)은 드리지 않고 형식과 의식만 지켰습니다. 그런 그들을 향하여 주님이 호되게 야단치신 것입니다. 그 주님이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십일조를 꼭 하되 의와 인과 신을 버리지 말아라.”
가난이 지겹습니까?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세요. 그러면 황충이 당신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을 것이고, 기한 전에 떨어지는 것이 없을 것이며,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실 것이고, 하늘창고를 여사 쌓을 곳이 없도록 축복하실 것입니다.
십일조, 이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믿는 자가 마땅히 해야 할 바입니다. 십일조는 현대판 선악과입니다. 절대 선악과를 따먹지 맙시다. 할렐루야!
십일조는 현대판 선악과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자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여시면 닫을 자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