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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목차 › 금주의 말씀

레위기 24장 ~ 민수기 10장

538호 · 2010-06-18

* 희년의 정신을 실천하자 (레위기 25장)

우리에게 좌절과 낭패와 실망의 일들이 다가올 때, 그 때마다 이전 것은 다 도말되고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바로 우리들이 다시금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밀어주시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은 희년제도를 두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기준처럼 마련해두신 정상적인 삶으로의 복귀가 가능했었습니다.

희년이란 모든 것을 정상적으로 되돌려 놓은 해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은혜의 해였고, 구속의 해였습니다(사61:2, 사63:4). 희년은 매 50년마다 찾아오는데, 희년에는 종살이를 하던 사람들도 자유자가 되어 각각 고향으로 돌아갈 수가 있었고, 또 그동안 빼앗겼던 토지를 되찾아서 자영농으로서 다시금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레25:10).

하나님은 희년을 통해서 인권과 경제적인 자유를 보장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권이 없는 경제적인 자유, 경제적 생산수단이 없는 인권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희년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3년 동안 먹을 것을 수확하도록 하셨습니다(레25:21).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주창할 때, 당시 지주들이 노예였던 자들에게 노새 한 필과 40에이커(약16만㎡)의 땅을 주어야만 진정한 노예해방이라고 한 것도 이러한 희년사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하나님은 이미 각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땅은 이들의 고유한 기업이었습니다. 설혹 어떤 이유로 인하여 이 땅을 빼앗겼더라도, 하나님은 매 50년마다 각각 다시 그 기업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해놓으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이러한 희년의 실천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침략 때,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께 구원을 간절하게 부르짖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남 유다에 구원과 더불어 희년이 실행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왕하19:28~29, 사37:30).

구원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이루셨지만, 희년은 유다 백성들이 자원하여 시행해야만 했습니다. 유다가 앗수르를 물리친 후 크게 번영한 것은 히스기야가 희년을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한편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 침략으로 인하여 나라가 위태롭게 됩니다. 이때 만일 그가 희년사상을 실천하여 각기 형제와 이웃에게 자유를 선언하고 실행하였더라면,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힘입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말씀대로 준수하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이들은 희년정신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후, 종살이 하던 노비들을 풀어주었습니다(렘34:10). 하지만 이들은 뜻이 변하여 자유케 하였던 노비를 끌어다가 다시 복종시켜 노비를 삼았습니다(렘34:11). 이를 인하여 하나님은 이들을 재앙 속에 그대로 방치하시기로 하셨습니다(렘34:17~22).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처음으로 성경을 펴서 무엇을 전파하셨습니까? 이는 희년이었습니다(눅4:17~19). 그런데 이는 구약의 희년제도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희년은 천국 복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희년은 사단에게 매인 자들을 자유케 하는 것이었습니다(눅4:18, 13:16).

주님은 혈육에 속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히2:14~16). 주님의 기사와 표적을 통해서 전파된 복음은 진정한 희년의 성취였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시고자 하는 새 소식은 가나안 땅에서 시행될 희년제도가 아닌 천국으로의 회복이었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속하지 않았음을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보이셨습니다(요18:36).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인류는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죄악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사단의 종노릇하기 전의 상태, 곧 하나님과 올곧이 교통하던 처음 상태로 회복된 것입니다.

지금도 구약시대의 희년정신은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며, 율법은 여전히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마5:18). 주님은 이 땅에서 희년을 통하여 형제애가 실천되기를 지금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희년의 실천이 참된 번영의 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처럼 사단에게 매인 자들을 풀어주는 일, 그리고 각기 이웃에게 인권과 경제적 자유를 보장해주는 일 모두 희년의 실천임을 깨닫고 이를 잘 실천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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