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 3장 ~ 히브리서 2장
*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유다서 1:3~23)
당 태종 이세민은 황자들에게 “축성(築城)보다는 수성(守城)이 어렵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황자들의 왕권은 당 태종의 유언처럼 제대로 유지되지 못했습니다. 당나라는 측천무후와 외척들의 발호로 인하여 수십 년간 나라 안팎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수성은 창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재계에서도 잠언처럼 통합니다. 어떠한 기업도 부단한 노력 없이는 수성에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들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단번에 믿음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믿음을 지키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애굽에서 탈출합니다.
애굽에서 탈출한 후, 이스라엘 백성들 중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교훈 삼아 믿음을 끝까지 지키고 변질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유1:5). 성경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었다고 말씀합니다(유1:6).
유다서는 천사를 향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유다서는 믿는 자, 즉 하나님의 사랑을 얻고 예수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쓴 서신입니다(유1:1). 따라서 우리는 천사들의 당한 일을 우리들의 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의 직분을 지키고 자기의 처소를 지켜야 하겠습니다.
성경은 간음을 심판합니다. 또한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 일을 심판합니다(유1:7,8,10).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덫에 걸리지 않도록 매사 조심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치 말고 의를 행하여야 합니다(고전15:34).
우리가 심판을 면하고 주님과 함께 하려면 먼저 말과 행실이 경건해야 합니다(유1:15,18). 성령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과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고 성령으로 기도하며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불에서 끌어내야 합니다(유1:18~23).
* 이기는 것만이 살 길이다 (요한계시록 2:1~3:22)
1980년대 중반, 이만기 선수가 씨름을 할 때 우리나라에서는 씨름이 흥미진진한 스포츠로 떠올랐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들의 영적인 싸움을 씨름에 비유했습니다(엡6:12). 씨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샅바를 단단히 쥐고 힘과 기술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씨름은 한 순간에 상대방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방심하다가 한 순간에 넘어지기도 합니다. 넘어뜨리면 이기고, 넘어지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인 씨름판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전신무장을 해야만 합니다(엡6:12~13). 주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웠습니다(마16:16~18). 이때 주님은 음부(陰府)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따라서 음부의 권세는 결단코 주님의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우리가 질 이유가 없는데, 영적인 씨름에서 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깨어있지 아니하고 방심하면 어두움의 영적존재들에게 속아서 넘어지고 맙니다.
이 땅의 교회는 아직 전투 중에 있는 교회입니다. 주님은 승리하셔서 보좌에 계시지만 주님의 교회는 아직 이 땅에 남아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주님께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대적하는 원수들과 전투를 해야만 합니다. 마치 전쟁은 이미 승리하였지만 반란군이 곳곳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것처럼, 음부의 악의 영들과 귀신들은 교회를 깨뜨리려고 끝까지 저항하는 것입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이러한 전투 중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상황을 알고서 교회를 향하여 이기라고 말씀합니다(계2:7,11,17,26,3:5,12,21). 일곱 교회는 모두 예외 없이 이겨야만 했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님의 영광에 참예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계2장,3장,21:7).
전쟁에서 2등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교회는 깨닫고 회개하여 이 전투에서 이겨야만 합니다. 모두가 이 싸움을 이겨서 승전가를 부르도록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