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은 너를 죽이는 둔기다 (약1:14~16)
몇 년 전에 집회 차 일본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일본 성도들과 잠시 백화점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일본 성도들이 저에게 최신형 비디오카메라를 사주겠다고 하며 제 발을 잡았습니다. 대형집회를 하려면 이 정도 비디오카메라는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저에게 적극적으로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No’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당장 비디오카메라가 없어서 집회를 못하는 것도 아닌데 저 물건을 받는다면 그것은 내 욕심입니다. 필요하지 않는 것을 받아 쌓아놓은 것은 다 욕심이지요. 저는 여러분들의 성의만 받겠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모두 제 말에 은혜를 받아 “나중에 필요하시면 꼭 연락주십시오.” 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럼요, 필요 없는 것을 사는 것, 그것은 욕심입니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탐하는 것도 욕심이고, 남의 것을 탐내는 것도 욕심이요, 지나치게 누리고자 하는 마음도 욕심입니다. 성경은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요.
죄는 이 욕심을 타고 들어옵니다. 왜 남의 물건을 훔칩니까? 남의 것을 갖고 싶은 욕심에서입니다. 왜 사람을 죽입니까? 그 사람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 때문이고, 왜 부정을 저지릅니까? 더 가지려는 욕심에서 아닙니까?
죄를 인격화 하면 마귀입니다. 그 마귀는 욕심으로 인해 하늘에서 내쫓김을 당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본시 루시엘이라는 천사장과 천사들로 하나님처럼 높아지려는 욕심이 발각되어 흑암, 곧 음부에 갇히게 된 자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14:12~14).
그래서 그들은 자기의 속성대로 음부인 이 땅에 내려와서 처음 사람인 아담에게 욕심을 불어넣었던 것입니다. 에덴에 지천으로 널린 다른 과일나무를 두고, 딱 하나 먹지 말라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욕심을 내게 했던 것입니다. 하여 그들로 죄를 짓게 함으로 가정을 파탄으로 이끌었고, 그 죄로 인해 하나님과 담이 생기게 했으며, 결국 그들을 에덴에서 쫓겨나는 신세로 만들었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지요? 천천만만이올시다.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볼까요? 다윗이 많은 처첩을 두고 남의 아내를 욕심내다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까? 가룟 유다가 돈 몇 푼을 욕심내어 예수님을 팔아먹고 결국은 어찌 되었습니까? 그리고 권력을 욕심내던 이세벨은 자기를 시중들던 내시에 의해 산 채로 성 밖으로 던져진 후 예후에 의해 밟히고 개들이 찢어먹는 그야말로 비참하기 이를 데 없지 않았습니까?.
또 아간은 여리고성을 함락할 때 전리품을 욕심 부리다가 자손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아간이 욕심낸 것은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 금덩이 한 개였습니다. 그것 없어도 사는데는 전혀 지장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 욕심내다가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요즘도 아간과 같이 좀 더 가지려다가 패가망신 당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있는 것도 넘치는데 좀 더 가지려다가, 있는 자리도 높은데 더 높아지려다가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추락하는 자들이 심심찮게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욕심내서 그것을 얻었다고 칩시다. 그런데 오늘 밤에 당신의 영혼이 떠나면 그것이 다 뉘 것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12:20).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어떤 개가 큰 고깃덩어리를 얻어가지고 한적한 곳에서 먹으려고 가던 중, 개울을 만나 다리로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다리 위에서 물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개는 물에 비친 개가 다른 개의 모습인 줄 알았습니다. 다른 개가 큰 고깃덩어리를 물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순간 욕심이 발동하여 다른 개의 고깃덩어리를 빼앗으려고 입을 덥석 벌리다 그만 자기의 고깃덩어리를 물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사람 많습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족한 줄 모르고 남의 것을 탐내다 가지고 있던 것마저 놓치고 마는 어리석은 자들이 많습니다. 민물고기는 민물에서 살아야 하는 겁니다. 민물고기가 ‘나도 넓은 데 가서 살고 싶다’고 바다에 나가면 죽습니다. 뱁새는 뱁새대로 살아야지, 황새 좇아가다가는 가랑이가 찢어지고요. 제 말은 자기 분수대로, 자기 능력대로 사는 게 좋다는 것이고, 현재에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꿈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도 감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제가 60이 되고 나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인생은 물 흐르듯 살아야겠다’ 라는 것입니다. 물이 흐르는 것을 보면 웅덩이 파진 곳이 있으면 채우고, 다 채우면 아무 욕심 없이, 미련 없이 다시 흘러갑니다. 컵에 물을 따라보세요. 물은 절대 그릇 이상 받지 않습니다. 필요이상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또 살아보니까 고래 등 같은 집도, 대단한 명예도 다 욕심이라는 생각이 듭디다. 괜히 청소하기만 힘들고, 괜히 자유만 없이 얽매일 뿐이지, 행복지수가 돈이나 명예와 비례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디다. 얼마전 손녀에게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할아버지는 외국 갈 때 이 가방 하나 가지고 간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못 가져가고, 집이 아무리 좋아도 못 가져간단다. 그러니 너무 욕심내지 말고 살아라.”고 했습니다.
우리 너무 욕심내지 말고 삽시다. 욕심내니까 행복하지 않고, 욕심내니까 내 마음이 평안하지 않는 겁니다. 우리가 욕심내는 것 또 하나가 있지요? 자식 말입니다. ‘내가 못 배웠으니 내 자식만은 어디에 내놔도 꿀리지 않게 키워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부모님들 마음입니다.
그래서 애들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과외로, 학원으로 돌려댑니다. 다행히 자식이 잘 따라와 준다면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만, 아니니까 문제지요. 음악에 재능이 있는 딸을 의사 만들려고 하고, 춤에 재능이 있는 아들을 검사, 판사 만들려고 하니… 애들도 죽을 맛이고, 끌고 가느라, 학원비 대느라 부모도 죽을 맛입니다. 그래서 부작용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떤 애들이 가출을 하고, 나쁜 데로 빠지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지 않습니까? 어디 자식만 힘듭니까? 부모는 돈 버느라 기러기 아빠가 되고, 자기 인생은 전혀 없지요.
다 욕심입니다.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부모의 욕심 때문에 빚어지는 일입니다. 억지춘향은 어려운 겁니다. 이제 자식 욕심을 버립시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제 뜻대로 아들을 키우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아들 녀석들과 마찰도 심했고, 갈등의 골도 깊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자식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닙디다. 다 내 욕심입디다.
자식에게 자기 것을 찾아주고, 자기의 길을 가게 합시다. 자식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자신에게 맞는 길로 가게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재능대로, 적성에 맞게 그들을 인도해줄 때 그들이 그 분야에서 성공할 것입니다. 제가 매일 기쁘게 순례의 길을 가는 것은 전도자의 길이 제게 맞기 때문입니다.
2010년,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면 우리가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욕심을 부리면 눈이 멀고, 귀도 먹습니다. 그래서 그 외 것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안 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국가가, 단체가, 교회가, 가정이 시끄러운 겁니다.
욕심을 부리려거든 하나님의 일에 관해서 부리십시오. 하나님의 일은 침노해서라도 더욱 많이 하고, 빼앗아서라도 하십시오. 그것은 우리가 천국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입니다. 그러니 제발 욕심일랑 버리고 성취욕을 가지고 인생을 멋지게 살아봅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남의 잔디가 푸르러 보이거든 욕심의 안경을 벗어 던져라
욕심과 비전은 다른 것이다 욕심에 속지말고 자기 것을 찾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