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하지 마라
주일마다 늦는 장로가 있었다. 그는 내게 “목사님, 교회에 오다가 갑자기 자동차 타이어가 터져서 좀 늦었습니다.” 라고 말했고, 그 다음 주에는 “목사님, 일찍 오려고 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아서 늦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변명하는 것에도 한계를 느꼈는지 어느 날, 슬쩍 이런 질문 하나를 던졌다. “목사님, 안식일에 소가 웅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의 의향을 파악한 지라 이렇게 말했다. “안식일에 소가 웅덩이에 빠졌다면 당연히 건져야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장로님. 주일마다 웅덩이에 빠지는 소라면 팔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아둔한 사람은 아니니 내 진의를 알았으리라 믿는다.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수단에 불과하다. 잘못하는 것보다 더 잘못된 것은 변명과 핑계를 대는 것이다.
나는 주의 종으로 변명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사람이다. 그래서 설령 그것이 오해일지라도 나는 절대 변명과 핑계를 대지 않고 함구한다. 누구에게나 오해할 권리는 있으니까.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눅21:14)고. 그런 자에게 주님은 구재 곧 말재주와 지혜를 주신다고 하셨다.
얼마 전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내 최대 흑인인권운동단체인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 100주년 기념만찬에서 ‘변명하지 말라’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흑인들이 차별과 무시를 받는 것에 핑계대지 말고, 흑인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노력하여 책임지라고 촉구한 것이다.
실수나 실책을 책임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실수나 실책을 겸허히 받아드릴 때 실수로 인해 인생이 전환 되는 것이다. 실수하는 것보다 더 구차한 것은 변명하는 일임을 알고 오늘부터 변명하지 않기로 작심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