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회복하라 (요14:6~14)
설날 잘 지내셨나요? 모처럼 온가족이 모여 맛있는 것도 먹고, 그동안 못 나누었던 이야기도 많이 나누셨나요? 그러나 설날인데도 형편이 안 좋아서 못 찾아뵙는다는 자식의 전화를 받은 부모도 있었을 겁니다.
또 어떤 자식은 오긴 왔는데, 빈손으로 와서 기도 못 펴고 코 빠뜨리고 앉아 있다간 자식도 있었을 겁니다. 그 자식 때문에 마음이 많이 아프셨을 겁니다. 다행히 능력이 되는 부모라면 “네가 부모가 없냐? 형제가 없냐? 왜 혼자 그렇게 고생을 해? 진작 말을 하지, 왜 이렇게까지 고생을 해?” 라고 말하셨겠지만, 그러나 능력이 안 되는 부모는 자식의 손을 잡고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미안하다. 내가 무능해서 너희가 고생하는데도 도움이 못 되는구나.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부모의 소원은 자식이 잘 살고, 건강하고, 행복한 것입니다. 자식이 잘 살면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자식 하는 일이 잘 되면 절로 콧노래가 나오는 게 부모입니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이면 부모의 속앓이는 끝이 없지요.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가 하나님과 원수 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와의 사랑을 끊지 못하셔서 당신의 외아들에게 육신을 입혀 이 땅에 보내사 십자가에서 죽게 함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무슨 말인가 하면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그 분은 만물의 주인이시며, 창조주이십니다.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행17:24~25).
세상의 왕의 자녀만 돼도 그 권세가 대단한데, 재벌가의 자제만 되도 세상에 두려운 것이 없는데,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신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기절 안 하는 것이 이상한 겁니다.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두고도 당신이 가난하고, 아프고, 만사가 꼬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 더욱이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소원이 우리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것일진대, 우리가 가난하고 병드는 게 말이 되냐는 말입니다.
왜 그런 줄 압니까?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줄 압니까? 아직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해서 다가가지 못하기 때문이고, 더는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부자 관계가 냉랭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병들고, 하는 일마다 안 되는 당신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부자(父子)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이심을 믿으십시오. 이것이 흔들리면, 이 믿음이 없으면 당신의 삶에 회복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잃어버린 것을 찾기는커녕 앞으로도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아버지에게 더욱 다가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원하시는 길로 가야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됩니다.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가야 잃어버린 부자간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자식도 자꾸 다가가야 정이 드는 법입니다. 다가와서 품에 안기는 자식이 더 예쁜 법이고, 아버지에게 ‘뭐 사 달라’ 하고, 모르는 거 물어보고, 가끔 땡강도 놓는 자식이 더 친근한 법입니다. 아버지에게 말 못할 게 뭐 있고, 부자 아버지에게 달래지 못할 게 뭐 있습니까?
괜히 당신이 아버지 앞에서 컸네, 어른입네 하니까 못 다가가고, 땡강 놓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부모 앞에 자식이 커 봤자 자식 아니겠습니까? 우리 어머니는 나이가 60인 저에게도 ‘차 조심해라, 밥 잘 챙겨먹어라’ 하십니다. 부모 앞에 자식은 나이가 들어도 자식인 겁니다. 하물며 하나님 앞에서야 어련하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이렇게 부르고 기도하세요. 너무 힘들어서 말도 못하겠거든 그냥 ‘아버지’ 라고 부르고 우세요.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놀라서 “왜 그러냐?” 하실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했잖습니까? 제가 부도나기 직전에 술을 잔뜩 먹고 들어가 대성통곡했더니 우리 아버지가 놀라서 다 해결해주셨다고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마6:9), 이것은 주기도문의 첫 부분입니다. 이렇게 부를 수 있는 자는 예수를 믿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기도의 출발이고, 신앙의 기초입니다. 우리 아들이 제게 무엇을 요구할 때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할 때 먼저 “아버지” 라고 부릅니다. 댁의 자제들도 그럴 겁니다. 이것은 우리 아들들이 저와의 관계가 부자지간임을, 요구할 수 있는 당당한 자격이 있음을 먼저 밝히는 것입니다.
아들의 권세가 얼마나 좋은 건지 아십니까? 제 아들들은 지금 서른이 넘은 나이지만,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제게 전화를 해서 해결해달라고 합니다. 또 제가 아들들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라.”하고 말해두기도 했고요.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돈이 필요해도, 문제가 생겨도 제게 해결해 달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더욱이 그것을 해결할 만한 능력이 제게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들은 고민하지 않고 제게 전화를 걸어 문제를 해결합니다.
하나님도 말씀하십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전화해라.” 어디에 그런 말이 있는지 보겠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전화하면 아버지가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준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전화번호를 몰라서 하나님께 전화를 못 드립니까? 하나님의 전화번호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우리를 가난하게 하고, 병들게 하고, 망하게 하는 것은 마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마귀의 일을 진멸하려고 이 땅에 오셨고,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말구유에 누우신 것은 가난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으며, 그 분이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 분이 상했고, 우리의 평화 때문에 그 분이 징계를 받으셨으며, 그 분이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난해야 할 권리도, 아플 권리도, 망할 권리도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친히 다 담당하셨고, 마귀에 눌렸던 우리를 대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소리가 잘 안 나옵니까? 아버지까지는 불렀는데 할 말이 없습니까? 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성령에 충만하면 ‘아빠, 아버지’ 소리가 절로 나는 겁니다. 아버지와 할 말도 많고, 여쭤볼 것도 많고, 요구할 것도 많습니다. 악한 것들이 “네가 무슨 하나님의 자녀야?” 그러더라도 성령에 충만하면 “시끄러, 나는 누가 뭐래도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과 당신의 자녀와의 관계와 동일합니다. 부모자식 관계를 천륜(天倫)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도 예수의 피로 맺어진 천륜입니다. 그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늘 부르십시오. 육의 아비야 계속 부르면 짜증 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백 번을 불러도, 천 번을 불러도 ‘오냐’ 하실 것이니, 하나님을 부르십시오.
혹 당신이 불효를 저질렀다 해도 다시 아버지를 부르십시오. 집을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를 뛰어가 맞이한 아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니까요. 속 썩였다고 자녀가 종의 신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잊지 마세요.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당신의 아버지임을. 할렐루야!
어릴 때는 산이 나무를 위해 존재하나 장성하면 나무가 산을 위해 존재한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