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거룩한 척 말라
소설과 영화, 연극은 우리가 체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간접 체험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작품 세계에는 우리 인간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전개되어 있다. 문학 속의 작품을 재미로만 읽고 던져버린다면 시간 죽이기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작품을 보고 감상하면서 이 시대의 다양한 사회상과 문화를 접하고 감각을 익혀가며,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간다면 나름의 소중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영화를 보는 자리가 있었다. 영화의 내용은 용서를 주제로 하는 내용의 영화였고, 잔인하고 불경스러운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영화였다. 그 자리에 모 교회에 출석하시는 집사님의 초대로 여러 여자 집사님들이 오신 듯 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 분들이 남자 집사님에게 왜 이런 경건하지 못한 영화를 우리에게 보여주느냐고 항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저 분들은 거룩함의 옷을 입고 사는 경건한 분들이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영화가 던져주는 -용서에 관한- ‘메시지는 읽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눈높이로 영화 속의 사람들을 폄하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빛 되신 예수가 찾아오신 곳은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죄 많은 세상에 오신 것이지 거룩한 곳으로 오신 것이 절대 아니다. 죄 많고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를 영접한 우리는 그 분의 가르침과 인도함으로 거룩함의 새 옷을 입고 살아갈 수 있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거룩함의 새 옷을 입었다고 죄 많은 곳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거리감을 두거나 스스로 그들과의 담을 치는 언행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태어나는 순간부터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본다. 과거 어둠 속에서 방황하며 서성이던 중에 빛 되신 예수님을 영접한 시절을 추억하면서 어둠 속을 배회하며 유리방황하는 그들을 향할 때, 거룩함의 옷을 벗고 그들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건하고 거룩함의 삶을 살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타리를 만드는 우를 범하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천의 삶을 살면서 만들어 놓은 경건과 도덕의 잣대로 예수님의 손길이 필요한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재단하기 시작한다.
도덕적 잣대로 저울질과 재단질을 당한 그들에게 복음이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 겸허한 마음으로 손을 내미는지, 거룩한 백성이라는 우월과 권위의 자세로 손을 내미는지는 구원의 손길이 필요한 어둠 속의 그들이 이미 알고 있다.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은 빛 가운데 있는 자들이 더욱 잘 보이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마음과 자세가 ‘나’도 당신과 같은 죄인이었다는 동질성을 갖고 낮아지며 그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마음 문도 더욱 쉽게 열리지 않을까?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그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였지만 어느 사이에 거룩한 옷을 입고 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모습을 보면서 주님은 뭐라고 하실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고 하시지 않을까?
그들에게 복음의 거룩한 빛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면, 잠시만이라도 거룩함의 옷을 벗어던지고 그들을 향하여 진심으로 손을 내밀 수 있는 신앙인이 되고 싶다. 그것이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