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앞에 담대히 서라
운해(雲海)였다. 끝없이 펼쳐진 구름 위를 날고 있었다. 빛나는 태양 아래 펼쳐지는 꿈결 같은 장면이었다. 저 구름 아래는 먹구름으로 뒤덮인 세상, 비바람이 몰아치는 세상이 있을 터이지만, 구름 위에서 바라본 정경은 하나님이 빚어내신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그러나 구름 위의 정경에만 취해있을 처지는 아니었다. 그 짙은 구름들로 인하여 결국 비행기는 목적지 할라파(Xalapa)에 착륙하지 못하고 베라크루스(Veracruz)로 회항(回航)해야 했다. 아마도 할라파 공항 쪽은 비바람이 거세게 불어대고 있었던 모양이다. 베라크루스 공항에 내린 우리는 항공사측에서 내준 대형전세버스를 타고 다시 할라파까지 이동하였다.
돌이켜보면 이런 여정을 우리는 벌써 10년째 하고 있다. 2000년에 시작된 해외선교의 물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흘러 흘러 오늘에까지 이르렀다. 2009년, 해외선교 10년이다. 그동안 많은 시련과 고통도 있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한, 하나님의 거룩한 종과 함께 한 영광의 길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목사님 표현처럼 세계 65억 인구 중에 지극히 작은 우리를 택하여 이 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신 하나님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주님이 허락하시는 그날까지 이 영광의 사역에 늘 동참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또한 이 영광의 사역에 늘 기도로 함께 해준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주의 이름으로 감사를 드린다. 그 기도가 아니었다면 목사님이나 우리가 어찌 해외선교 10년의 영광과 감회를 가질 수가 있었겠는가.
이는 곧 우리 교단 모든 구성원의 기도와 역량이 결집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 교단 모든 구성원들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펼쳐나가시는 역사와 경륜의 중심에 서 있음에 항상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좋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목사님의 사역에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헌신하며 동참한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날 그 시에 동일한 상으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할라파는 해발 1,427m의 고지대에 위치한 인구 100만의 도시다. 고지대에 위치한 관계로 1년 내내 날씨가 그리 덥지도 춥지도 않고 온화한 편이다. 그러나 대신에 안개가 자주 껴서 공항 이용이 원활치 못하다고 한다. 우리가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베라크루스 공항에서 대형전세버스를 이용하여 할라파의 숙소에 도착하니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둡고 안개비가 내리는 중에도 많은 성도들이 숙소 앞에 몰려와 국기를 흔들며 목사님을 열렬히 환영해주었다.
멕시코에 올 때마다 참 의아하게 생각하고 신기하게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들이 목사님을 어찌 알아서 저토록 열렬히 환영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이리 멕시코는 자주 오게 되는 것일까? 벌써 30여 개 도시를 돌고 있다. 생각해보았다. 세계 어느 부흥사가 한 나라에 이토록 많은 도시를 돌았을까? 역으로 따져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세계 어느 유명 부흥사가 한국의 서울,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목포, 강릉, 뭐 이런 식으로 다녀간 사람이 있던가? 아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가까운 곳도 아니고 비행기를 몇 번씩 갈아타고 며칠씩 걸려서 가야하고, 게다가 시차에 휘감기며 온몸이 파김치가 되어야 갈 수 있는 이곳을 안방 드나들듯하고 있는 사실을 뭘로 설명하겠는가? 하나님이 보내지 않고서야 가능키나 한 일인가 말이다. 목사님은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내가 한국에 있어도 잘 먹고 잘 입고 일거리도 많고 말도 잘 통해서 아무 불편함이 없는데 굳이 여기까지 오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그렇다고 돈을 받으며 다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잠18:15)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설명도 이해도 불가한 일이다. 그런 불가한 일을 우리는 벌써 10년 이상 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 고백할 수밖에 없다.
환영인파에 떠밀려 숙소에 마련된 홀로 들어가 보니 마리아치의 풍악이 울려 퍼지고 베라크루스 주 대표로 나온 고위관리가 환영의 인사를 하고 있었다. 목사님은 마리아치 반주에 맞춰 춤도 추시며 그들의 열렬한 환영에 감사를 표하셨다. 그들의 밝고 활기찬 표정들을 대하니 긴 여행의 피로가 다 가시는 것 같았다.
목사님은 할라파의 첫날을 맞으시며 무엇보다 먼저 날씨를 위해 기도하셨다. 한국의 철야예배를 일행들과 함께 드리며 합심으로 기도했다. 이튿날부터 날씨는 정말 화창하게 바뀌었고, 서늘하던 기온도 올라가 포근했다.
실업인 세미나로 먼저 시작했다. 목사님은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실업인들에게 고착된 생각을 바꾸고 자기 것을 찾으라고 역설하셨다. 사업이란 것이 정도경영을 하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지나친 이윤창출에 골몰하다보면 법과 사회관습 등 많은 현실적 이해관계에 부딪혀 신앙과 사업 간에 혼돈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목사님의 실업인 세미나는 바로 크리스천 사업가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사업에 성공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기에 많은 실업인들이 몰리곤 한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고정관념에 사로잡혀있고 크리스천으로서의 좁은 운신의 폭에 버거워한다. 크리스천이 사업이나 정치를 해도 되는가? 은행 돈을 빌려도 되는가? 기업에 문제들을 일으키는 종업원들을 어찌해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들이 쏟아진다. 목사님의 가르침은 단순명쾌하다.
‘오히려 크리스천이 사업과 정치를 해야 하고 은행 돈은 하나님이 준비해주신 흑암의 재물이다. 자기 돈 가지고 사업 못할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계 유수의 모든 기업들도 모두 은행 돈을 끌어다 사업한다. 이자가 무섭걸랑 사업할 생각조차 말라.
사업은 신앙과 다르다. 사업은 그 목적이 이윤창출에 있고, 크리스천들은 그 이윤창출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고 이웃을 돕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일에 적극 협력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을 좀 먹는 암적인 존재는 인정이나 사정보지 말고 단호히 잘라내야 한다. 함께 일할 자가 있고 도울 자가 다르다. 인정에 끌려 도울 자에게 일을 맡기다가는 망할 수밖에 없다.’
목사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통역되어 나갈 때마다 장내는 술렁거리다 박수가 쏟아지곤 한다. 그들이 가려워했던 부분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부분도 있고, 그들의 고착된 사고를 부수는 탁견이 쏟아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 목사님의 설교나 강의는 틀을 깨는 발상으로 보일 때가 많다. 그래서 적극적인 지지자들이 있는가 하면 저울질하는 사람들도 있고, 심한 거부감을 표출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마디로 불편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결과라 여겨진다. 사람들은 원래 진실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진실과 대면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오랜 종교권력에 취해 있는 세력이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더더욱 진실을 불편해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게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마10:34).’고 말씀하셨는지 모른다. 진리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불편해한 자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생각해보면 목사님의 메시지가 불러일으키는 반향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날 집회는 들쑥날쑥한 앰프시스템의 난조로 매우 어수선한 가운데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으로 할라파 시민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히 목발을 짚고 단상 앞에 나타난 청년이 목사님의 부름에 단상으로 올라와 목발을 들고 뛰기 시작하자 장내는 놀라움을 넘어 패닉상태에 빠진 듯하였다. 예수의 이름으로 눈앞에 나타나는 그 이적의 생생한 현장을 무엇으로 거부할 수 있단 말인가.
휠체어에서 일어나 걷는 자,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에서 고침 받는 자, 그야말로 단상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그대로 구현되는 현장이었다. 할라파 시민들은 눈물로 회개하는 자, 박수치며 환호하는 자, 기사와 표적을 보고 고침 받고자 단상으로 몰려드는 자들로 장내는 뜨겁게 들끓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