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양이 물을 싫어하던가?
언젠가 존경하는 목사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물으신 적이 있다. “이보게, 자네는 목사야? 교수야?” 그 분이 내가 목사인 걸 몰라서 그렇게 질문하신 것이 아니었다.
이어진 그 분의 말씀이다. “교수는 못 따라오는 사람은 떼어버리고 가면 되지만, 목사는 다 데리고 가야 되네.” 나는 그 분의 말씀에 많은 은혜를 받았고, 그래서 그렇게 실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목사는 대양(大洋)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양이 어디 물을 가려가면서 받던가? 더러운 물이든, 오염된 물이든 다 받아들이는 것이 대양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물을 정화하는 것이 대양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니던가.
목사는 모든 사람을 다 받아야 한다. 더러운 사람도, 모자란 사람도, 잘 난체 하는 사람도, 허물이 많은 사람도 다 품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을 정화시키는 것이 목사의 사명이다.
가끔 목사들 중에 “저 사람은 떠났으면 좋겠다. 저 사람 때문에 목회를 못하겠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 목사를 호되게 야단 쳤다. 목회를 못하는 것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목사 자신이 대양이 되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는가. 주님을 보라.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아셨지만 그를 건지기 위해 끝까지 애쓰시지 않던가. 자신을 십자가에 매단 자들까지도 품으셨지 않은가.
우리도 그런 마음이 되어야 한다. 태산이 흙을 마다하지 않듯, 대양이 물을 싫어하지 않듯 목사는 물론이고,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넓은 마음으로, 큰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오염된 것들 때문에 대양의 2%의 염분이 요긴하고, 오염된 사람들 때문에 우리 안에 작은 사랑이 더욱 빛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넓혀라. 대양 같은 마음, 태산 같은 마음을 소유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