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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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생각을 전환하라 (눅19:1~10)

507호 · 2009-11-13

이조시대의 일입니다. 왕은 세자가 장가들 나이가 되자 직접 세자빈을 간택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전국에 방(榜)을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재력 좀 있고, 지식 좀 있다는 집안 여식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너희들에게 쌀 한 되씩을 줄 테니 한 달 동안 다른 것은 먹지 말고 이것으로만 연명하고 오너라. 절대 이 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모두에게 쌀 한 되씩을 나눠주었습니다. 세자빈 후보들은 쌀 한 되씩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 달에 쌀 한 되라… 아무리 가녀린 처자들이라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한 달 후 궁궐에 다시 모인 처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들 것에 실려온 처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처자만이 얼굴이 발그레하니 건강해보였습니다. 왕은 그 처자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다른 처자들은 다 피골이 상접한데, 너는 어찌 그리 좋아 보이느냐?” 그러자 그 처자는 “상감마마, 쌀 한 되로 한 달을 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쌀로 떡을 만들어 팔았더니 두 되가 되더이다. 다시 그것으로 쌀을 사 떡을 팔았더니 나중엔 쌀 한 달구지 값이 남았사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왕은 “네가 정녕 이 나라의 지어미로 합당하다.”며 그 처자를 세자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럼요, 저라도 그 처자를 지목했을 겁니다. 언젠가 제가 제 주변에 있는 목사들과 장로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1년 근 산삼 열 뿌리를 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랬더니 어떤 사람은 하루에 한 뿌리씩 먹고 힘을 얻은 후 금식기도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부모님 가져다 드린다는 사람 등 갖가지 답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전도사는 팔아서 생산적인 것을 사고, 다시 팔아 이익을 취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전도사의 생각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답이 오답이라는 말이 아니라 생각을 전환할 줄 아는 그 전도사에게 후한 점수를 준 것입니다.

다들 불황이라고 난리입니다. 그러나 환경과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어차피 세계가 불황이라면 생각을 전환해서 불황을 타파하면 안 되겠습니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길이 있다는 겁니다. 단지 안 바뀌는 환경만 붙들고 탄식하고 좌절하기 때문에 문제이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생각을 전환한다면 언제든 로마로 갈 수 있습니다. 얼마든지 불황 중에도 성공할 수 있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의 전환은 곧 남들보다 생각이 빠른 것을 의미합니다. 두바이를 봅시다. 많은 산유국들이 그저 땅 속에서 나는 원유에 의지하고 있을 때 두바이는 다른 나라들이 생각지 못한 생각을 해냈습니다. 바로 생각의 전환,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입니다.

‘언젠가 원유는 바닥난다. 대체 에너지가 나온다.’는 생각을 했고, 곧 그들은 사막을 낙원 같은 관광지로 바꾸는 작업에 돌입한 것입니다. 사막에 물을 끌어들여 푸르게 했고, 실내스키장을 만들고, 수상호텔 등 기적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사막이라는 환경을 바꾸지 못하니까 대신 생각을 바꿔 대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생각의 전환으로 꿈을 이루고, 목적을 이룬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삭개오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로마의 세리장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는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매국노 취급을 당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조선 사람으로 세무서장을 하고 있다면 어땠을지 생각하면 됩니다. 그런 삭개오는 늘 외로웠고,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겁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이 여리고로 오신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멀리하는 무리들 속에 동참할 수 없는 노릇이었고, 또 그는 단신이라 설령 사람들 틈에 낀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볼 수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환경과 상황은 이미 정해진 이상, 그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야했습니다.

바로 생각의 전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는 뽕나무로 올라갈 생각을 해냅니다. 남들이 자리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는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뽕나무를 생각해낸 것입니다. 뽕나무에 올라갔으니 눈에 잘 띠는 것은 자명한 일, 주님은 삭개오를 보시고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고, 그 집안이 구원을 받음은 물론 이스라엘 자손이라 칭함을 받는 큰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어디 삭개오 뿐입니까? 바디매오는 날 때부터 소경된 자입니다. 그런 그에게도 예수님이 여리고에 오신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바디매오도 들은 소식이니 모든 사람이 다 들었을 거고, 그러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겠습니까? 눈이 보이지 않는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다가가기란 하늘의 별따기였습니다.

그러자 바디매오는 큰 소리로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목이 터져라고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막10:47). 옆에서 귀청 터지겠다고 하든지 말든지 그는 목청껏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소리에 예수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막10:52)고 하셨습니다.

‘키가 작아서 안 된다’고 한탄하지 말고, ‘앞이 안 보여서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마세요. 남들보다 빠른 생각을 하면 길은 있고, 생각만 조금 바꾸면 답이 있는 겁니다. 성경을 더 볼까요? 예수님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 소문이 이미 돌아 예수님이 머무르신 곳에 사람들이 용신할 수 없을 만큼 모여들었습니다.

이 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는데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 곁에 갈 수가 있어야지요. 혼자 비집고 들어가기도 어려운데 들 것에 실린 환자를 데리고 가기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자 이 사람들은 지붕을 뚫어 환자를 위에서 달아 내렸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막2:1~5).

뻔한 생각이나 고정관념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남들보다 생각이 빨라야 합니다. 빌 게이츠 말대로 생각의 속도를 내야 합니다. 먼저 보고(先見), 먼저 깨달아야(先覺) 먼저 알 수(先知)있는 겁니다. 먼저 가다보면, 먼저 보다보면, 먼저 생각하다보면 욕은 먹게 되어 있습니다. 엉뚱하다고 욕먹고, 시기해서 욕먹습니다. 삭개오도 욕먹었고, 바디매오도, 지붕을 뚫은 네 명도 모두 욕먹었습니다. 그렇다고 욕먹는 게 두려워 남들과 템포를 맞추어 갑니까?

우리 교회는 성전 없이 성공한 교회입니다. 다들 교회라 하면 성전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생각할 때 저는 성전 없는 교회를 시도했고, 성공했습니다. 성전 지을 돈으로 더 많은 영혼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먼저 생각하는 자가 누리는 이점은 바로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겁니다. 전기로 가는 자동차를 제일 먼저 내놓은 회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지 않습니까? 전쟁에서 2등은 관심 밖입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마라톤에서 우승을 했지요? 그 때 2등은 누가 했습니까? 모릅니다. 세상사 전반이 다 이렇습니다. 먼저 간 자는 알아도 바로 추격한 2등은 모르는 법입니다. 관심에서 멀어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먼저 생각하고, 먼저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남들보다 빠르게 생각하고 싶어도 생각이 나야지요?” 그렇습니다. 남들보다 빠른 생각, 생각의 전환은 다른 말로 하면 ‘지혜’입니다. 이는 세상이 주는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말하는데, 성경은 어떻게 하나님의 지혜를 받는지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무에게나 지혜를 주시나요?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잠2:7)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정직한 삶을 살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지혜와 비길 수 없는 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부디 그 지혜로 남들보다 앞선 삶을 누리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 되도다”(잠3:18). 할렐루야!

지혜는 부동의 자산이며 빼앗기지 않는 보물이다

생각의 속도를 높여라 빛의 속도보다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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