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이다 (딤후3:14~4:8)
‘금덩어리가 궤짝 속에 가득히 있는 것이 자식에게 한 권의 경서(經書)를 가르침만 못하고, 자식에게 많은 돈을 주는 것이 한 가지 재주를 가르치는 것만 못하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돼지는 그냥 놔둬도 돼지가 되고, 개도 그냥 놔둬도 개가 되지만 사람은 가르쳐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워야 사람답게 살고, 배워 알아야 사람대접을 받고, 사람구실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누차 말하지만 아는 것이 힘입니다. 아는 것이 없으면 할 일도 없는 겁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요? 천만에요. 몰라서 얻는 것보다 알아서 유익인 것이 절대적으로 많습니다.
제가 아프리카 가나에 갔을 때 그들의 처참한 환경을 보고 답답해서 가슴을 쳤습니다. ‘왜 이네들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물론 그들의 자연환경이 좋다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자원이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지식이 없어서 가난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갈취 당하고, 죽도록 일하고는 몇 푼 받아 겨우 입에 풀칠만 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먹을 빵 한 조각도, 몇 푼의 돈도 아닙니다. 가장 시급한 일은 그들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그들을 가르쳐서 그들의 권리를 찾고, 자연을 개발하고, 살 방안을 찾게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물고기 몇 마리씩 던져줄 겁니까? 그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막을 천사의 도시(Los Angeles)로 바꾼 미국과 메뚜기라 불릴 정도로 형편없었던 두바이가 오늘에 이른 것은 지식이라는 기반 위에 섰기 때문입니다. 곧 교육부재현상은 후진성을 탈피할 수 없는 것이고, 역(逆)으로 지식이 수반되어야 후진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배워야 하는 것이고,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는 자는 자유할 수 있거든요. 이는 국가적인 차원뿐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동일합니다. 어느 분야에 진출하려면 그 분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무대포식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 장땡이 아니라는 겁니다. 무대포식으로 어느 정도까지는 되겠지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지식에 밀리게 되어 있다는 겁니다.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무대포식으로 인해전술을 쓰면서 남으로 밀고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우리가 밀렸지요. 그러나 나중에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이 앞선 무기로 밀고 나가니까 숫자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밀리고 말았지 않습니까?
지식 없는 추진력이란 이처럼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느 분야에 진출하려거든 그 분야에 대해 지식을 쌓고 난 후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을 갖추는 것은 호미 대신 포클레인을 쓰는 것과 같고, 도끼 대신 전기톱을 쓰는 것이며, 지게 대신 도르레를 쓰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쌓기까지가 힘이 드는 것이지, 쌓아놓기만 하면 지식이 인생을 편하게, 자유롭게, 풍요롭게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가 된 후에 정말 많이 노력했고, 공부했습니다. 목사라는 자리가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상대하는 자리인지라 더욱 많은 공부를 필요로 했습니다. 사전 찾아가며, 전문 서적 뒤져가며, 또 참모진들에게 물어가며 배웠습니다. 공부하고 나니까 하나 깨달아지더라고요. 그것이 뭐냐면 어느 누구를 만나도 자유롭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주눅 들지 않고 자신 있다는 겁니다. 안다는 것이 이런 겁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얼마 전에 한 성도가 상담을 왔습니다. 과거 만나던 남자가 자꾸 협박을 한다는 겁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 전부를 협박하여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법 뒀다가 뭐 할 겁니까? 접근금지가처분신청을 하세요. 법이 당신을 보호할 겁니다.” 했더니 그 분이 “그런 게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법을 알아야 활용할 텐데 모르니까 법이 나를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겁니다.
전반적인 지식을 함양하고, 자기가 주력으로 삼아 매진할 부분에 대해 전문지식을 갖추세요. 그래야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고, 당당할 수 있으며, 남을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꼭 갖춰야 할 지식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기 때문입니다(잠1:7).
성경은 하나님에 대해 밝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주권 등 하나님의 모든 것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영혼의 문제에 관한 답이 있고, 정치와 경제, 경영뿐 아니라 문학과 의학, 도덕은 물론 병법과 상법도 있으며, 앉고 서는 지혜와 말과 생각 등등 모든 부분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7만 2천 단어로 된 이 말씀 안에는 세상의 지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신 지식과 지혜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주야로 말씀을 상고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주의 종은 당연히 이 성경에 대해 해박해야 합니다. 성경은 주의 종의 전문서적이기 때문이고, 그래야 성도들을 바르고 마땅한 길로 이끌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대해 모르면요? 성도들이 상담하러 왔을 때 뭐라고 해줄 겁니까? 세상 지식으로 끌어줄 겁니까?
절대 그럴 순 없습니다. 정치인이 정치에 대해 상담하러 오면 그 정치인보다 정치에 대해 더 잘 말해줄 수 있습니까? 사업가가 경영에 대해 물어올 때 그 사업가보다 경영에 더 알고 답할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보다 모르는 게 당연합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성경으로 답해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해결해줘야 합니다. 성경에는 세상이 갖지 못한 해답과 정답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지식뿐만 아니라 지혜를 줍니다. 제가 키르기기스탄 집회를 갔을 때 재판에 회부된 적이 있습니다. 그 까닭은 집회 전단지에 치유한다는 말이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말이 ‘의사면허가 없으면서 왜 사람을 치유하느냐? 그러니 불법이다’ 이랬습니다. 그래서 저와 통역을 맡은 슬라바 목사가 재판장 앞에 서게 되었는데, 슬라바 목사가 그들에게 따지듯 힐문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슬라바 목사를 진정시키고는 말했습니다. “내가 말하는 대로만 통역하라. 지금은 따질 때가 아니다. 우리가 본의 아니게 위법을 했는데 왜 큰 소리를 내는 것이냐?”고 하고는, 저는 정중하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가 위법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이 나라의 법을 몰랐기 때문이니 선처를 바랍니다.”고 했습니다. 슬라바도 좀전과 다르게 차분히 통역했습니다. 그랬더니 재판장의 태도가 변하면서 추방령으로 재판을 종결지었습니다.
왜 슬라바 목사가 그렇게 강하게 나왔느냐면요, 처음 키르기기스탄에 집회를 갔을 때 KGB에 끌러간 일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다른 교단에서 우리를 고발한 겁니다. 연행될 사유가 아니었습니다. 죄 없이 끌려갔으니 당당할 수밖에요. 그래서 그들에게 먼저 ‘할렐루야’ 하고 악수를 했고, 슬라바 목사도 ‘이 분을 건드리면 70여 개국에서 난리가 날 거다’라고 당당했었습니다.
아마 슬라바 목사는 그 때처럼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죄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처신이 달라야지요. 그것이 지혜입니다. 그 지혜가 어디서 났겠습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알면 우리 앞에 장애물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야로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미혹에 넘어지지 않습니다. 때를 분별할 수 있으며, 영생을 얻는 비결이 무엇인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 천사와 마귀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우리의 영·혼·육이 강건해지고, 정도(正道)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입니다. 세상의 것도 공부하고, 세상의 지혜도 활용하십시오. 그리나 무엇보다도 성경을 늘 상고하여 하늘의 지식과 지혜로 충만하십시오. “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너는 모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모사가 많음에 있느니라”(잠24:5~6).
할렐루야!
상식으로 대화는 할 수 있지만 상식으로 남을 가르칠 수는 없다
아무리 거미줄을 없애면 무엇하랴 거미를 없애야 거미줄이 없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