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겠노라 (욥5:8~11)
춘천 예수중심교회 담임인 최연식 목사가 제게 전화해서 3천만 원을 지원해줍사 했습니다. 전화로도 부족했던지 그는 제 행선지를 알아내고는 그곳까지 찾아와서 부탁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가 아비의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나 같으면 말이다. 나를 쫓아다닐 이럴 시간에 하나님께 구했을 거야.” 제가 이렇게 딱 한 마디 했을 뿐인데, 그가 바로 깨닫고는 ‘아멘’ 하고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그에게서 다시 전화를 받았는데 그의 목소리는 한껏 고조되어 있었습니다.
“목사님, 그 돈 해결됐습니다. 목사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 구했더니 하나님께서 교회 건물주의 마음을 움직여서 해결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저는 그에게 “내가 고맙다. 3천만 원을 안 가져가서 고마운 게 아니라 네가 내 말을 듣고 깨달은 것이 고맙구나.”라고 했습니다.
사실 최연식 목사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거나, 위기에 봉착하면 사람들을 찾아다니기 바쁩니다. 재력 있는 자, 지력 있는 자, 권력 있는 자를 찾아가 사정하고 간청하고 애걸복걸합니다. 재력과 지력의 원천이시고, 만물과 만인을 다스리시는 분을 바로 곁에 두고 말입니다. 이는 마치 자기 집에 우물을 두고 남의 집에 가서 물 한 바가지 달라고 사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집 깊은 우물에 물이 가득 고여 있는데, 이를 두고 목마르다고 옆집에 가서 사정사정해서 물 한 바가지 얻어 가지고 와 그것으로 온 식구가 한 모금씩 아껴 마시는 것과 같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다시 목마르면 또 가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최연식 목사에게 3천만 원이 아까워서 안 준 게 아닙니다.
깊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으라고 가르쳐준 것입니다. 사실 제가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국과 세계에 지교회가 수없이 많은데 춘천교회만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재력의 원천이신 그 분에게 구한다면 목마름이 다시는 없을 것이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분이 누구입니까? 그 분은 바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이 저와 당신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감히 아버지라 부른 적이 없고, 믿음의 조상이라 했던 아브라함조차도 여호와라 부른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되신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두고 사람을 의지한다면 천하에 어리석은 자가 아니겠습니까?
저라고 왜 그런 적이 없었겠습니까? 좀 오래 전에 나를 운전해주던 우리 교회 집사가 바쁘다보니 그만 적성검사시일을 놓쳐 면허가 취소된 일이 있었습니다. 당장 운전을 해주어야할 일꾼이 발목이 잡혀있는지라 알고 지내던 경찰공무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그 문제가 곧 해결되는 겁니다. 참 간단하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얼마 후에 학생체육관측과 협의할 일이 생겼습니다. 당시 우리는 학생체육관에서 철야예배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이 일이 순조롭지가 않았습니다. 저는 이시대 목사에게 “내가 높은 사람을 알고 있는데그 사람 전화 한 방이면 다 해결될 거야. 내가 전화해놨으니 가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이시대 목사에게 전화가 왔는데 “목사님, 그 분이 직접 체육관에 전화를 걸어 부탁을 했는데요. 체육관장은 허락을 했는데, 거기서 일하는 실무자들이 들고 일어났데요. 그래서 체육관장도 어쩔 수 없다고 하네요.” 라고 하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때 해머로 한 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있었구나.’ 저는 그 즉시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절대 사람을 의지하지 않기로 작심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 재판 때도, 기도원 공사 때문에 송태찬 장로가 구속되었을 때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다 해결해주셨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 의뢰했습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느1:3~4).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움직여 모든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에스더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만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전멸될 위기 상황이 되자 그녀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 금식하며 아뢰었습니다(에4:16).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주장하사 하만이 장대에 달리는 역전극이 펼쳐졌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부림절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욥의 고난에 대해 친구인 엘리바스가 한 충고입니다.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고 내 일을 하나님께 의탁하리라.” 원문에는 “나 같으면 하나님께 구하리라. 반드시 그리하리라.”고 쓰여 있습니다. 왜 반드시 그래야하느냐면, 그 하나님은 욥기서 5장 9절 말씀처럼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시며 기이한 일을 셀 수 없이 행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9절 이하의 말씀을 읽어보세요. 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뢰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 인천교회 수요예배 때 그 교회 담임인 장영국 목사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그가 차가 없던 시절에 아들과 외출을 하는데, 아들이 그러더래요. “아빠, 우리도 차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장 목사가 “아빠가 돈이 어디 있니? 그리고 우리에게 차가 왜 필요해?” 그랬더니 아들이 대뜸 “아빠가 그랬잖아요.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준다고.” 하더래요.
그래서 장 목사가 “너는 아빠가 기도하면 이루어진다고 믿니?” 하고 물었더니 아주 자신 있게 “네. 저는 아빠가 기도하는 거 믿어요.” 그러더래요. 그래서 장 목사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대요. “하나님, 제가 아직 차를 가질 시점은 아니지만 제 아들에게 믿음을 심어줘야겠습니다. 그러니 차 주세요.” 이렇게 한 달반 정도를 기도했는데, 정말 하나님이 차를 주셨대요.
어떻게 해서 차가 생겼느냐면, 장로임직을 받은 인천교회의 어느 장로가 감사헌금으로 차를 내놓았는데, 제 마음이 자꾸 장 목사에게로 끌리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줬습니다. 장 목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제 마음을 주장하신 거지요.
제가 여러분께 장 목사처럼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당신은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믿습니까?” 즉시 대답을 못하시면 곤란합니다. 그러면 장 목사의 어린 아들보다 못한 믿음인 겁니다. 그런 사람은 필경 일이 생기면 도와달라고 사람 찾아다니기 바쁠 겁니다. 그러나 과연 사람이 도와줄 수 있을까요? 내일 도와준다는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거두어가시면 어떡할 겁니까?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고전 3:21).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책임질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믿지 못해 다른 사람을 찾아가 부탁한다면 그 아버지가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래서 하나님의 바람이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해주는 것,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자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했으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의 능력을 무시했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바람이요, 하나님의 뜻이 되었겠습니까. “뭐 기도해도 안 들어주시더구먼.” 이러지 마세요. 응답받지 못함은 오래 기다리지 못해서이고, 정욕대로 얼토당토한 걸 구해서 그런 겁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세요. 고난에 처해 있습니까? 다니엘처럼,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처럼 하나님만 의지하세요. 병들었습니까? 히스기야처럼 면벽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세요. 국가가 어렵습니까? 에스더처럼 기도하여 하나님을 움직이십시오. 자식이 없습니까? 한나처럼 하나님께 애통하며 강청하세요. 교회에 문제가 있습니까? 사람 찾아다니지 말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분명히 응답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태양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주만 바라보는 주바라기가 되자
사람만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