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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호 목차 › 붕우칼럼

무엇이 두려우랴!

502호 · 2009-10-09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Sevastopol) 집회가 취소되었다. 집회를 위한 정식 광고가 나가자 러시아 정교회에서 들고 일어나 집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나선 모양이다. 더구나 집회를 주관한 목사가 그들의 위협에 결국 굴복하여 집회에서 손을 떼고 말았다고 한다. 전쟁에 나간 장수가 두려워 백기를 들었으니 우리가 어쩌랴.

나는 이 일을 겪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일 우리 교회의 목사나 장로, 권사들은 이런 협박 앞에 어떻게 할까?’ 사도 바울처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주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했다.

나는 분명히 그럴 수 있다. 그 정신과 사명감으로 나는 오늘까지 이 길을 왔다. 목회 25년의 세월이 어찌 만만했겠는가. 집회 장소로 결정된 학교 운동장 문을 열어주지 않아 교문 옆 담장 위에 올라가서 육성으로 설교했던 포항 집회, 역시 다른 교회들의 방해로 운동장에서 자동차 헤드라이트를 밝히며 집회를 하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예식장을 빌려 집회를 했던 구미 집회, 집회 도중 최루탄 세례를 받았던 전주 집회…. 어디 국내뿐이랴?

2007년 키르키스스탄 비쉬켁 4차 집회 때, KGB의 집회장소 사용불허로 집회장소를 메인스타디움으로 옮겨야 했고, KGB에 끌려가기도 했었다. 또한 2006년 시베리아의 집회 때는 한밤중에 호텔로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조사를 받고, 심지어는 호텔에 폭발물을 설치했다는 공갈협박까지 들어와 호텔의 모든 투숙객들이 대피하는 소동까지 일어났었다.

돌아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죽을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으랴. 사명(使命)이란 부리는 자에게 목숨까지 내놓는 것일진대 이런 위협쯤 내게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래서 나는 다시 필리핀으로 간다. 복음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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