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어야지!
“밥 먹자.”
“엄마, 나 밥 생각 없어요.”
아이는 읽던 책을 계속 쳐다보며 답한다.
“왜 밥 생각이 없어?”
“과자를 먹어서 그런가? 밥 생각이 없어요.”
“그러니까 왜 과자를 먹어? 밥을 먹어야지. 와서 조금이라도 밥 먹자.”
엄마의 말에 아이는 방에서 나와 식탁에 앉는다.
“엄마, 안 먹을래. 속도 더부룩하고 입맛도 없어요.”
“넌 그래서 늘 속이 안 좋은 거야. 밥은 안 먹고 주전부리만 하고 있으니 속이 좋을 리가 없지. 이렇게 김치 같은 거하고 밥 먹는 게 좋은 거야.”
엄마는 밥을 한 술 뜨면서 아이를 쳐다본다.
“너 요새 얼굴이 엉망이야. 피부도 엉망이고. 기운도 없어 보이고.”
“환절기라 그런가. 요즘은 통 밥 생각이 없어요. 그냥 시원한 음료수나 과자가 좋다니까.”
“그럴 때일수록 더 잘 먹어야 튼튼해지는 거야 그러니까 일단 과자를 먹지 마. 그러면 밥 생각이 날 거야.”
“그럴 게요. 엄마 나 들어가서 읽던 책 마저 읽을래요. 그거 읽고 독후감 써서 내야 하거든요.”
아이가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식사를 마친 후에 설거지를 하고 아이 방에 들어가니 아이가 책을 읽으며 한 손으로 과자를 먹고 있다.
“과자 먹지 말라니깐.”
그제야 아이가 과자를 밀친다.
“아, 그런다고 해놓고. 습관적으로 먹고 있었네. 난 내가 과자를 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었어요. 과자는 아예 사지를 말아야겠어요.”
“그래, 이 과자 압수다. 버릴 거야.”
엄마는 아이가 밀쳐놓은 과자봉지를 들었다.
“그래요. 버려버리세요. 없어야 안 먹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5:3).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심령이 갈급하다는 것이고, 배고팠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잘 받아들여 천국의 주인이 된다.
그런데 많은 자들이 잔뜩 배불러있다. 그것도 과자로 배를 채워 헛배만 잔뜩 불러 있다. 그래서 정작 밥을 먹으려면 입맛이 없다는 자들이 많다. 그들의 영양 상태는 부실하기 이를 데 없고, 몰골 역시 말이 아니다.
세상의 이론과 학식으로 헛배가 부른 자들은 과자를 먹어 헛배 부른 자들과 같다. 그들은 정작 영양가 있는 말씀을 먹으라하면 배가 부르다, 입맛이 없다고 한다. 그러다 결국 영양실조로 쓰러지고, 또 몸의 밸런스가 깨져 여러 가지 병에 걸리고 만다.
밥을 먹어야 산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밥이다. 왜 밥을 안 먹고 주전부리로 때우려하는가? 과자만 먹으니 밥이 맛없는 것이다. 세상의 지식이나 주어먹고 있으니 하나님 말씀이 맛이 없는 것이다.
세상 지식에 비해 하나님의 말씀은 그리 달지 않고, 알싸한 맛이 없다. 바로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바로 손에 잡히는 것도 없으니 그렇다. 그러나 밥은 과자보다 달지 않지만 몸에 유익하듯,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고, 살리는 것이다.
과자만 먹고 살 수 있는가? 없다. 밥을 먹어야 산다. 밥이 주식이다. 세상의 지식은 과자 같은 것이다. 밥 먹은 후에 조금씩 먹는 주전부리다. 안 먹을 수는 없지만 간간히 먹어야 한다. 과자가 주식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도 썩고, 위장도 버리게 되듯, 세상의 지식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주(主)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영혼이 썩고, 영혼이 병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먹어야 영혼이 튼튼해진다. 풍성해진다. 영혼이 성장하고 흔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넉넉히 천국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천국 길은 단거리가 아니다. 아스팔트만 깔린 길도 아니다. 그런데 과자만 먹고 그 길을 어떻게 간단 말인가? 영양실조 걸린 자가 어떻게 마라톤에 도전하고 완주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주전부리 말고 주식인 하나님 말씀을 먹어라.
영혼이 살아야 육체가 산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고 적혀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다.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먹는 것이다. 그러니 늘 하나님 말씀을 상고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마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