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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라 (막11:20~25)

498호 · 2009-09-11

“아버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거예요?”, “아버지, 저 좀 도와주세요.”, “아버지, 도저히 제 힘으로 안 되는데 이걸 좀 해결해주세요.” 이렇게 아들 들이 전화하거나, 찾아와 말할 때 저는 사실 흐뭇하답니다. 왜냐하면 그 녀석들이 아비를 아비로 인정하고, 아비의 능력을 믿어주는 것 같아서입니다.

사실 저는 아들들의 부탁을 들어줄 만한 능력이 있을뿐더러 아들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언제든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아비인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더 나아가 아비를 제치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한다면, 저는 아마 상당히 불쾌할 것입니다. ‘이 놈들이 아비를 무시하는 거 아니야? 아비가 그 정도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하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으로, 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으로 인정하기를 바라신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 여쭙고, 하나님께 해결해 주십사 부탁하고,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 분은 넉넉히 그럴 수 있는 능력자이시며, 아울러 우리의 소원이나 요구를 들어줄 만큼 우리를 아주 많이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두고 아프고, 가난하고, 어려움에 쌓여있다면 과연 그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하나님의 책임일까요? 아닙니다. 말하지 않는 우리 책임이고, 다른 것을 의지한 우리의 책임입니다. 왜 능력을 못 받느냐?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을 안 믿기 때문입니다. 왜 축복을 못 받느냐?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못 믿기 때문이고, 왜 건강하지 못하느냐? 치료하시는 여호와 라파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고달프냐? 그것은 예비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안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는 이제 여든을 넘기셨습니다. 사실 힘도 없으시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으십니다. 그런데도 우리 7남매는 일만 생기면 어머니에게 달려갑니다. 7남매 거의 다 50줄에 들어섰는데도 무슨 일만 생기면 ‘엄마’ 하고 달려가는 것은 어머니를 어머니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는 아직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정말 우리 어머니가 어떻게든 해결해주십니다.

제 바로 아래 동생이 부도 날 위기가 되자 어머니를 찾아가 하소연한 모양입니다. 어머니는 장남인 제게 동생을 도와주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하자 어머니가 눈물이 그렁그렁하셔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 자식이라면 그러겠냐?” 그 말씀이 제 가슴을 찔렀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고,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아프면 하나님께 ‘아프다’고 하는 겁니다. 그 분의 능력을 믿는다면요. 돈이 없으면 ‘돈 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 분이 당신의 아버지가 맞다면요. 힘들면 힘들다고 하세요. 그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면요.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본체가 사랑이신 하나님이 당신을 고치시고, 부하게 하시고, 위경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제일 가슴이 아플 때가 언제인 줄 압니까? 우리 교단의 목사들이 저를 오해할 때입니다. 왜 오해를 할까요? 저에 대한 믿음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섭섭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고, 결국 오해를 낳는 것입니다. 이 교단 내에서 목사들이 제일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겠습니까? 목사들의 가족이요? 당연히 가족들도 그런 마음이겠지만, 저는 자신 있게 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을 해산의 수고로 낳았고, 주님을 대신하여 기름을 부은 자로서 그들을 위해 하루도 기도하지 않는 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이 저를 오해할 때, 오해하는 말 때문에 아픈 것이 아니라 저를 믿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더욱 가슴이 아프고 힘이 빠지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할 때 가슴이 제일 아프십니다. ‘이것까지 될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이럴 수 있어?’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할 때 하나님은 맥 빠지는 겁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11:6)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사자굴에, 풀무불에 들어갈 위기에 처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고백을 들어볼까요?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7).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온전히 인정했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대로 그들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은 그들을 더욱 높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났을 때, 낮에 뜨겁고 밤에 추웠을 때, 그리고 마실 물이 없었을 때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불평했습니다. 왜요? 하나님을 믿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고기가 먹고 싶다고 불평도 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하나님이라도 해도 설마 광야에서 고기를 주실 수 있겠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믿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셨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 반석에서 물을 내셨고, 메추라기 떼를 보내 배가 부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을 청종하던 군중을 먹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때 빌립은 예수님의 명령이 아주 부적절한 것임을 설명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립니다. 아무리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다 먹여요? 돈이 있어도 어디 가서 뭘 사다 먹여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기사와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못 믿은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심을 믿으라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그들로 하여금 목도케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하나님의 꿈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다 이루십니다. 회장당의 딸이 죽었을 때 주님이 뭐라고 했습니까?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눅8:50). ‘나를 하나님으로 인정하면 살린다’는 뜻입니다. 오라비인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애곡하는 마르다와 마리아에게도 동일하게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11:40).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면 당신의 삶에도 동일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죽은 것들이 살아나고, 병든 자가 나음을 입고, 가난이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당신도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능력 있는 부모를 두고 가난하게 사는 건 궁상을 떠는 겁니다. 어느 부모에게 결혼한 두 딸이 있는데 둘 다 남편들이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오갈 데도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큰딸은 부모에게 아무 소리하지 않고 월세방에서 지지리 궁상을 떨며 고생하고 있는데, 작은딸은 남편, 애를 끌고 친정집에 와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부모라면 누가 잘 한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큰딸이 효녀입니까? 아닙니다. 부모에게 달려든 작은딸이 옳은 겁니다. 왜요? 부모에게 가장 불효는 아픈 것이고, 가난한 것이고, 힘들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능력 있는 부모를 두고도 그렇게 사는 것은 더욱 불효지요.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잘 살고, 건강하고, 세상의 머리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궁상맞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니 아버지에게 고쳐달라고, 채워달라고 기도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기쁘게 받으시고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해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18:8). 할렐루야!

옥토에도 거름은 필요하다 삶의 거름은 바로 기도다

부모에게 가장 큰 효도는 자식이 잘 되고 건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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