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볼 일이야!
원숭이가 호리병 속에 든 망고를 쥐고는 놓지 못해 결국 사람들에게 잡히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누구나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손에 잡은 망고만 놓으면 살 것을 그것에 연연하다 결국 덜미가 잡히고 만 원숭이. 이것을 비단 어리석은 원숭이 이야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나는 마치 망고를 쥔 채로 살아보겠다고 기를 쓰는 원숭이 같은 자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은 망고를 놓으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이것마저 놓아버리면 남들 보기에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보인다는 이유로 망고를 꼭 쥐고 아등바등 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살고 볼 일 아니냐? 자존심 지키려다 죽으면 뭐 할래? 죽으면 자존심이고 뭐고 없는 거야.”
위기탈출 방법은 위기에 빨리 대처하는 것이다. 자존심 건지면서 살 방법이 있다면 그게 어디 위기겠는가. 일단 자존심을 버리고 버릴 것은 버려야 산다. 자존심은 위기를 넘기고 회생하고 나서 챙겨도 된다.
어느 사업가가 내게 왔다. 구조 조정하는 차원에서 몇 개의 기업을 처분하려고 하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네 기업 중 가장 잘 나가는 것을 처분하게나.” 그는 내 말에 난감해하며 “목사님, 그건 제 마지막 자존심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가? 일단 살고 봐야 할 것 아닌가?”라고 말해줬다. 그는 내 말대로 잘 나가는 기업 몇 개를 처분하여 다시 회생의 길로 들어섰다.
자존심, 살아가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절대 필요충분조건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