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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을 뛰어넘는 신앙인이 되자 (사26:1~4)

497호 · 2009-09-04

어느 날 북대서양을 항해하던 큰 기선이 심한 폭풍우가 휘몰아치자 거센 바람에 떠밀려갔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모든 승객들이 이 상황을 근심하며 바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한 승객이 소리를 쳤습니다. “와! 저기 빙산을 봐요.” 모두들 그 승객이 가리키는 쪽을 바라다보았습니다. 거기에는 빙산 하나가 떠가고 있었는데, 이 세찬 폭풍에 아랑곳하지 않고 폭풍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큰 기선도 가랑잎처럼 폭풍에 휘말려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 놀라는 승객들을 향해 선장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빙산이 폭풍에 떠내려가지 않는 것은 거기 보이는 빙산보다 큰 덩어리가 물 밑에 있기 때문입니다. 빙산이 드러난 부분은 약 1/10 정도이고, 9/10는 물에 잠겨있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8%가 드러나 있고, 92%는 잠겨있다고 합니다. 바다 밑에는 거대한 해류가 흐르고 있는데, 이 빙산은 오직 바다 밑의 해류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입니다. 수면 위에 그 어떤 태풍이 불어와도 빙산의 흐름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빙하가 폭풍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은 빙하의 대부분이 바닷물 아래에 잠겨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가 깊어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사26:3). ‘심지’는 마음 심(心)과 뜻 지(志)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심지가 견고한 자’는 마음의 의지가 견고하다는 것이고, 이는 다시 믿음이 견고하다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닷물에 잠긴 부분이 많은 빙하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잠겨 믿음이 견고한 자는 어떠한 풍랑, 곧 어떤 환경이나 환난,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직 해류의 방향대로 움직이는 빙하처럼 심지가 견고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에게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살다보면 좋은 날만 있는 게 아닙니다. 비도 오고, 바람도 불고, 태양이 작열할 때가 있듯 생각지 못한 어려운 일들, 감당하기 힘든 일들, 고통스런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일을 누구나 다 만나고 겪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었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전도서를 기록한 전도자도 3장에 이런저런 때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럴 때 심지가 견고한 자는 다르다는 겁니다.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라도 이런저런 날들을 동일하게 겪으나 이를 겪어내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치 빙하처럼 하나님께 온전히 잠긴 자들은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겁내지 않는다는 겁니다.

욥은 그랬습니다. 그에게 몰아닥친 풍랑은 너무 거셌습니다. ‘한순간에 저렇게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욥은 다 잃었습니다. 가족도, 재물도, 건강도. 그러나 욥은 심지가 견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2:10).

욥은 눈에 보이는 환경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불안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내는 달랐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2:9). 그의 아내는 좋을 때만 믿음을 지키는, 한 마디로 믿음의 줏대가 없는 자였던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욥 같은 환난이 닥쳐도 신실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까? 저는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부와 명예와 가족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언론에서도 저를 사정없이 쳤습니다. 마치 바다에서 폭풍을 만난 그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인간인지라 울었고, 아파는 했지만 오히려 믿음을 더욱 굳건히 했습니다. 연약한 무릎을 세워 더욱 주님께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이 넘치는 평강으로 저를 안위하셨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폭풍이 일 때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안전하고 평안하다는 것을요. 폭풍의 눈 속은 고요하다는 것을요.

다리오 왕 때에 다니엘을 시기하던 바벨론 신하들이 다니엘을 제거하기 위해 음모를 꾸몄습니다. 그것은 ‘지금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기도하는 자를 사자굴에 던져 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단6:7). 그러나 다니엘은 이러한 법이 시행된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 예루살렘을 향해 항상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단6:10).

결국 그는 고소되었고, 사자 굴에 던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평안했습니다. 왜요? 그는 심지가 견고한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환경에 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이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친히 찾아가서 사자 입을 봉하고 그를 구하셨습니다.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환경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질 최악의 환경 앞에서도 믿음이 굳건했습니다.

역시 하나님이 그들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천사를 보내서 그들을 건지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11:23~27).

그에게 둘러싼 환경은 고통이었고, 환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바울이 눈에 보이는 환경에 흔들려 고통스러워했습니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의 소리를 낸 적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어 마땅히 그래야 합니다.

‘심지’는 촛불의 심지도 의미합니다. 촛불에 심지가 없으면 절대 불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 심지는 초의 가운데 버티고 있지 않습니까? 곧 마음이요, 뜻이요, 믿음을 말합니다. 심지가 곧아야 인생에 불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지요.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가 견고한 자는 곧 주를 의뢰한 사람이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날 때 왜 믿음이 왔다 갔다 했습니까? 환경을 바라다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했더라면 뒤에서 애굽 군대가 쳐들어오더라도, 덥고 춥더라도, 먹을 물이 없더라도, 먹을 고기가 없더라도 불평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을 바라다보고 불안, 불평했습니다. 온전히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대가를 그들은 40년 광야에서 톡톡히 치렀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저 너머로 보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어둡고 힘들고, 아픈 것들은 다 허상이라 여기고 먹구름 뒤에 빛날 태양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적당히 의지하면 어려울 때 불평이 나오고, 힘들면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면 눈에 보이는 환경과 관계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배에 풍랑이 일자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왜요? 주님을 온전히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온전히 주님을 의지했더라면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노래했을 것입니다.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고, 아플 때도 있고,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고,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할 때,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평강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먹구름을 싫어하고야 어찌 단비를 바라랴

소나기 후에 무지개가 나오고 터널을 지나면 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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