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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7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하고자 하는 자에게 능력 주시는 하나님

497호 · 2009-09-04

악한 마귀들이 방해하고 난리쳤어도 주님은 언제나 제 편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제가 18살 때 아산시 신창면 가내리 감리교회로 불러 주셨습니다. 저는 그 교회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다가 직장문제로 서울로 올라와 고향의 한 믿음의 형제님이 다니던 감리교회를 다녔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전도도 하게 되고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또한 침례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다니던 아산시에 있는 감리교회로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속장으로 열심히 일하던 중 한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옛날 친정집 마루에 서 있는데, 해가 찬란히 떠오르는 겁니다. 그 꿈을 꾸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권사의 직분을 주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 생각과 달리 그 꿈을 꾼 이후에 저에게 시험이 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도 싫고 성도님들도 싫어졌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오성환 집사님과 몇몇 분이 철야예배를 드리러 학생 체육관에 간다더니 저에게도 철야예배에 가자고 권하였습니다. 고부간의 갈등도 있었고, 집안 형편도 어렵고 왠지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난생처음 학생체육관으로 철야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처음에는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가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배 분위기도 생소하였습니다. 새벽 4시경에 끝나는 예배 시간 때문에, 예배가 끝난 다음에 회사로 바로 출근해야 했습니다. 남편에게 양해를 구하고, 3주 동안 철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그 후 철야예배 장소가 인천교회로 옮겨지게 되자, 함께 가시던 집사님들은 더 이상 철야예배에 참석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회사가 끝나면 온양역에서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서 전철을 갈아타서 인천까지 갔습니다.

인천에 도착해서 예배 장소를 잘 모르기 때문에 택시를 타고 당시 인천 예루살렘교회로 찾아갔습니다. 예배가 끝나면 집이 아니라 바로 회사로 출근을 해야 했습니다. 철야예배에 참석하면서 저는 원하던 방언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너무 어려운 문제 때문에 울면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방언 통변으로 위로해주셨습니다. 기쁠 때는 방언으로 찬양하게 하셨습니다. 또 총회장 목사님께서 꿈에 나타나서 저를 위로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인천으로 철야예배 가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제는 가끔씩 주일예배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 삼남매를 데리고 1989년 한 해 동안 가끔씩 주일 예배를 역도 경기장으로 다니다가 1990년에 예루살렘교회로 옮기려고 기도하였습니다. 1년 동안 기도하는데, 악한 귀신이 우리 집에 역사하였습니다.

우리 막내아들이 아이들한테 맞아서 깊은 상처가 나기도 하고, 돈을 훔쳐서 뽑기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돈을 깊숙이 감추어두어도 귀신같이 찾아내서 뽑기를 하는데 돈을 썼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막내아들을 야단쳤더니, 집을 나가서 오히려 제가 막내아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일이 생겨났습니다.

둘째 딸은 기독교 계통의 여고를 다녔는데, 이단 교회에 다닌다고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해서 화가 난 나머지 같은 반 학생을 때려서 이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생의 병원비를 보상해주어야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친정집에서도, 시집에서도 저를 말렸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저를 강하고 담대하게 하셨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저는 1991년 첫 주부터 남편을 제외하고 저와 아이들은 예수중심교회로 옮겼습니다. 당시 예배 장소는 올림픽공원이었습니다. 예배 장소를 찾아가기 위해서 온양온천역에서 삼남매와 함께 통일호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어느 날, 영등포역에서 신도림 가는 전철을 타는데 교회 앞자리에 앉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서둘러 전철을 탔다가 큰 딸이 전철을 타지 않았다는 사실을 차가 출발한 다음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급히 신도림역으로 되돌아왔습니다만 그 자리에 큰딸이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막내아들은 전철 안에서 얼굴빛이 하얗게 되면서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저는 방언으로 기도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습니다. 그래서 아들은 괜찮아졌는데, 딸이 걱정이었습니다. 성내역에서 내려 양쪽 출입구에서 아이들하고 나누어서 기다렸지만 큰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배를 성공해야 한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설교가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내역에서 택시를 타고 역도 경기장으로 갔습니다. 도착하니 이시대 목사님이 청년들과 찬양과 율동을 하고 있는데, 큰딸이 손짓을 하며 ‘엄마!’ 하고 부르는 겁니다. 할렐루야! 아무리 귀신들이 난리를 쳤어도 주님은 제 편이셨습니다.

저는 지금 아산 예수중심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아산 예수중심교회는 1997년 1월 5일 창립예배를 드렸고, 박인덕 목사님이 부임해 오면서 3층으로 된 좋은 성전을 짓게 되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기도하여 하나님이 저와 늘 함께 하심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루살렘 교단과 함께 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 하나님은 우리 교단과 교회, 그리고 이리저리로 상처 입은 우리 성도들을 무척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당한 핍박과 환난으로 인하여 주님이 오시는 날에는 면류관과 큰 상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우리 더욱 하나님과 합한 성도들이 됩시다. 그래서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전파합시다. 할렐루야.

아산 예수중심교회 이순금 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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