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91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491호 · 2009-07-24

돈도, 명예도, 권력도 다 헛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간절한 것이 있었다면 영혼의 충만함이었습니다

1995년 9월 10일 저녁, 구정 다음날인 주일 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 성남 기도처 앞에서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여 동승했던 친구는 하루 만에 죽고, 저는 뇌사상태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때 중환자실에서 제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와 주위의 병자들과 병문안 오는 가족 및 친구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것을 보고 체험했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 영이 제 몸을 들락거리던 어느 순간, 한쪽 벽에 있는 철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일명 저승사자가 나와 두리번거리다 저와 눈이 마주쳤는데, 2미터가 넘는 키에 기골이 장대하며 얼굴은 두 눈만 빨갛고 검은 어둠으로 덮여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찌나 무서운지 도망을 가려했지만 몸은 사슬에 묶인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그 순간 사자가 천장 벽을 그림자처럼 타고 오더니 제 앞에 뚝 떨어지면서 품에서 4m 정도 되는 죽창을 꺼내어 저를 찌르려는 찰라 종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때 다른 한쪽 벽에서 흰 옷을 입은, 지금의 저에겐 아버지와 같으신 이시대 목사님을 선두로 수많은 성도들이 대리석으로 된 십자가 관을 들고 오는 모습을 본 저승사자가 기겁을 하며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관을 제 앞에 두더니 어느 흰 옷을 입으신 분이 앞으로 나와 저에게 ‘살고 싶으면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다음날 바로 눈을 뜨며 기나긴 뇌사 상태에서 깨어났습니다. 깨자마자 한 말이 ‘거울을 달라’였고 저는 생존 여부를 확인하며 두 눈이 퉁퉁 부은 어머니를 바라보았지요. 그 후 당시 성남에 전도사님으로 계시던 최경건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고, 약 한달 열흘 만에 퇴원하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군대를 다녀오고 가구 인테리어 일에 종사하면서 나름 촉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서울 청년부 담임이신 신현명 목사님께 많은 것을 배우며, 조장으로, 차량 봉사로 쓰임 받던 중, 한쪽 눈에 이상이 오더니 구토를 할 정도로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분당 차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명쾌한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급속도로 오른쪽 눈의 시력이 떨어지면서 눈의 안압이 올라 직장도 직분도 내려놓고 대학 병원이란 병원은 다 다녀 보았지만 원인을 규명할 수도, 고칠 수도 없었습니다. 1년여 시간동안 돈도 마음도 지칠 때로 지쳤고, 결국 2006년에 오른쪽 눈이 실명되며 장애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일로 하나님께 너무 서운하여 세상으로 나갔습니다. 오직 돈이 제 삶의 이유가 된 것처럼 죽어라고 가구 인테리어 일만 하였고, 기회를 잡아 ‘레인보우’라는 상호를 걸고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후엔 작고하신 할머님께서 땅을 상속하여 주셔서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세상 말로 잘 나갔지요. 허나 홀로 있다 보면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그래서 술 한 잔에 지쳐 쓰러지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한 꿈을 꾸었는데, 제가 외제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리다 코너에서 브레이크와 사이드브레이크까지 들지 않아 ‘이젠 죽었구나’ 하며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았는데, 그때 경찰차가 호위를 하더니 갓길로 인도하여 내어 정차한 꿈을 두 번이나 연속으로 꾸었습니다.

예삿일은 아닌 것을 알면서도 다 잊고 성공이라는 두 글자만을 보며 나갔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5일 정도 뒤에 고속도로를 타고 천안에서 서울로 오던 저녁 8시 30분경이었습니다. 1차선에서 140km로 달리던 중 끼어드는 앞 차를 피하려다 중앙 분리대를 들이받고 3바퀴를 돌아 고속도로 정중앙에 극적으로 멈췄습니다.

안전벨트도 안한 저는 순간 약 10초 정도 의식을 잃었었지만, 살아야 한다는 일념 하나로 갓길에 차를 댔습니다. 그러나 저는 타박상 정도의 경상만 입고 있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차를 렉카에 실어 보낸 저는 그 지경에도 몸을 이끌고 거래처 결제를 위해 찾아갔습니다. 그 정도로 반드시 성공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얼마 후, 또 다른 일로 다치고 심신은 지칠 대로 지쳐 한 달 정도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해보니 모든 사업은 새벽안개처럼 사라지고 공중분해가 되어있었습니다. 이 일로 1년여 동안 재판을 해야 했고 2달여 동안 구치소에 있으며, 모든 재산과 보금자리마저 잃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뼈 속까지 후회를 하였고 돈도 명예도 권력도 헛되고 헛된 것을 깨달았지만, 하나님께 나아가려니 참 염치가 없어 솔직히 삶을 놓으려 하였습니다. 그래도 이런 자식을 위해 밤낮으로 기도하시는 어머니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성남 기도처 근처 2층에 아담한 거처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권은희 전도사님, 강반석 목사님, 이시대 목사님께서 집까지 찾아와 기도해주시며 제 어그러진 다리에 새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그 힘으로 2009년 겨울, 산상집회를 통해 영성과 첫사랑을 회복하였고, 그 곳에서 소명을 받아 신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신학교에 와서 박진수 학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저를 사랑하신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죽어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던 저를 살려주신 그 은혜에, 아니 받은 만 가지 은혜를 갚고자 주님의 길을 묵묵히 가려 합니다. 모든 영광과 존귀를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께 돌립니다.

예수중심 신학생 박성길 생도

491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옹달샘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성경에서 배운다
나눔의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