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정이다 (시128:1~6)
“목사님, 유명한 것도 좋지만, 가족이 다 함께 모여 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느 권사님이 제게 던진 말씀입니다. 그 분의 말씀은 제 폐부를 찔렀습니다. 사실 저는 주님이 제게 맡기신 사명을 감당하느라 가정을 잊고 산지가 오래됩니다. 정말이지 아비로서도 0점짜리고, 아들로서도 0점짜리입니다. 제게는 항상 주의 일이 먼저였고, 성도들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살지 못했지만, 우리 성도들은 정말 행복한 가정을 꾸미길 간절히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만큼은 알콩달콩 행복한 웃음이 꽃피는 가정을 이루길 누구보다 원합니다. 그래서 혹 이혼을 결심하고 상담을 청하는 성도들에게 저는 제 수치스런 과거까지 들춰가며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곤 합니다.
어느 석학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가정의 성공 없이 진정한 성공을 논하지 말라고. 그렇습니다. 백 번 옳은 말입니다. 야구에서 아무리 잘 때리고, 아무리 잘 달리고, 만루 베이스가 된다고 해도 홈에 들어오지 않으면 승리와 무관하지 않습니까? 동일합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아무리 출세와 명성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홈(가정)이 행복하지 않다면, 들어갈 가정이 없다면 진정으로 성공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 가정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이 가정을 깨뜨렸습니다. 질서를 파괴함으로 말입니다.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꼬드겨 인간을 하나님과 원수 되게 했습니다. 하극상, 곧 질서를 깨뜨린 것입니다.
이 마귀란 놈, 곧 사단은 본래도 질서를 깨뜨려 음부로 쫓겨난 자이기에 그렇습니다. 이 마귀는 지금도 가정을 깨뜨리려고 여전히 그 수법을 씁니다.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게 하고, 자녀가 부모를 없이 여겨 가정의 분란을 일으킴으로 결국 가정을 쪼개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분명히 가정에서의 질서를 성경을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녀에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6:1).
그리고 부모에 대해서도 이렇게 권면하십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6:4).
물론 부부에게도 말씀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5:22),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엡5:25).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모는 자녀를 주의 말씀 안에서 양육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가정의 질서입니다. 그런데 요즘 어디 그렇습니까? 아내 목소리가 담장을 넘습니다. 옛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여자의 권리나 사회적 진출을 제한하는 말이 아니라 도리를 망각하는 여자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즉 대처 같은 여자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남편을 무시하고 박박 대드는 여자 말입니다. 솔직히 여자 목소리가 월장(越牆)하면 그 집안이 제대로 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아내가 집 안에서 잘해야 합니다.
아내는 ‘안의 해’라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집 안의 해라는 말입니다. 그만큼 아내의 위치가 집 안에서 중요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가 남편을 발뒤꿈치의 때만큼도 대접을 안 하면 그 남편이 세상에 나가서 어찌 기를 펴겠습니까? 또 그것을 보고 자란 자녀가 제대로 된 인성을 갖추겠습니까? 절대 아닐 겁니다.
그리고 남편들은 아내를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주례를 설 때면 신랑에게 꼭 주먹으로 자신의 갈비를 쳐보라고 합니다. 좀 우스꽝스러운 일이라 하객들이 다들 웃지만, 성경의 말씀을 가르치려고 그리 하는 것입니다. 아내는 분명히 남자의 갈비뼈를 취해서 만들었다고 성경은 밝히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북어하고 여자는 사흘에 한 번 패야 맛이 난다니요? 천하에 못난 놈들이 만든 말입니다. 갈비뼈를 쳐보세요. 아픈 것은 물론이고, 사고로 갈비뼈가 나가면 숨도 잘못 쉬고, 갈비뼈가 심장, 간 등을 찔러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갈비뼈인 아내를 때려 보세요. 마구 폭언해 보세요.
그럼 그 아내가 ‘자식 다 필요 없다. 부모도 필요 없다.’ 이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집안이 쑥대밭 나지요. 아내를 사랑해주세요.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요? 꼭 호텔 뷔페 가야 하나요? 그냥 저녁에 불러내서 자장면 한 그릇 사주면서 ‘고맙다’ 하면, 아내는 바로 왕비가 된 줄로 착각하게 될 겁니다. 아내의 행복은 남편의 가슴넓이 만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명예도 좋고, 출세도 좋고, 돈도 좋지만 가족에게 관심을 가지고 사세요. 인생을 자동차에 비교해볼까요? 그저 목적지를 향해 고속질주하면 목적지에 빨리 도달할는지는 몰라도 타이어도 펑크 나고, 백미러도 떨어져 나가고 엉망인데 목적지에 도착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출세는 했는데 가정이 깨졌다면, 돈은 많이 벌었는데 가족이 제각각이라면 그 돈이 무슨 유익이겠습니까?
당신은 돈을 버는 것도, 출세를 하는 것도 다 가족을 위해서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당신의 아내는 돈보다 당신의 사랑을 원하고 있고, 당신의 자녀는 당신의 관심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압니까? 당신더러 돈 벌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야구로 비유했지만 홈만 지키고 있다면 절대 안 되지요. 가정이 소중하다고 가정만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달리고 때리더라도 꼭 홈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아들 녀석하고 포장마차에 간 적이 있습니다. 가서 우동을 먹었는데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 때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구나.’ 하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가족과 오순도순 둘러앉아 상추쌈에 삼겹살과 마늘 한 쪽 올리고 된장 쓱 발라서 서로의 입에 넣어주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고, 그보다 맛난 음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것이 어느 일류 레스토랑 음식에 비하겠습니까? 누가 그럽디까? 참새가 독수리보다 덜 행복하다고? 사실 독야청청 독수리는 외로운 겁니다. 가족끼리 모여 사는, 세세한 일까지 서로 재재거리는 참새가 더욱 행복한 겁니다.
얼마 전에 바로 밑에 동생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동생 하는 말이 ‘웬수같아도 마누라가 제일이라’고 합디다. 아프니까 화장실 갈 때 도와주고, 씻겨주고 챙겨주는 게 마누라 밖에 없다고요. 그럼요, 효자 열보다 악처 하나가 낫다하지 않습니까? 부부가 화목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가정의 시금석입니다. 둘이 매일 싸워 봐요, 부모님과 자식들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일 겁니다.
제 나이 60줄에 들어서면서 느낀 것은, 가장 소중한 것은 가정이며, 가족의 행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장로님들이 손자손녀 자랑을 하는 것을 들을 때면, 며느리, 사위자랑으로 입에 침이 마를 지경이 되면 은근히 부럽습니다. 지금 돈 벌려고 고속질주하고 있습니까? 브레이크를 좀 밟으세요. 명예를 위해 정신없이 달리고 있습니까?
조금 천천히 갑시다. 가면서 부모님 심기도 살피고, 가면서 아내의 투정도 들어주고, 가면서 아이들 관심거리가 무엇인지 보자고요. 행복은 결과가 아닙니다. 지금 진행형이 되어야 합니다. 고속 질주하여 목적지에 도달한 후에 행복을 누리려고 하면 너무 잃은 게 많고, 너무 늦을 수 있습니다. 조금 천천히 가면서 행복을 느끼세요.
집은 돈만 있으면 지을 수 있지만, 가정은 사랑으로 짓는 겁니다. 사랑이 뭡니까? 관심 아닙니까?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격려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에게 오래 참을 때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고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은 인생의 기초라는 것입니다. 기초가 튼튼할 때 높이 오를 수 있듯, 가정이 바로 서고, 행복할 때 높이 멀리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해보는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모여 된장찌개라도 끓여놓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것에 용서를 빌며 쌓인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장담컨대 금방 우울했던 가정에 웃음이 만발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달팽이도 집이 있고 여우도 굴이 있다
동가숙서가식(東家宿西家食) 하지 마라
집은 돈으로 지을 수 있지만
가정은 사랑으로만 지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