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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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희는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라 (신6:6~25)

466호 · 2009-02-01

인종시장이라 일컫는 뉴욕의 뒷골목에 고무풍선을 파는 아저씨가 나타나자 어린아이들이 몰려들어 풍선을 사서 하늘로 날리는데, 그 광경을 멀리서 숨어 부러운 듯 바라보는 한 흑인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백인 아이들이 다 돌아간 것을 확인하고는 살며시 고무풍선을 파는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저씨, 검은 풍선도 있나요?” “물론 있다마다.” “그럼 검은 풍선도 다른 풍선처럼 하늘로 날 수 있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냐? 자, 여기 검은 풍선이다. 네가 한번 날려봐라.” 그 흑인 아이는 아저씨가 쥐어준 검은 풍선을 조심스레 공중으로 치켜들고 슬며시 놓아보았습니다. 그러자 검은 풍선은 둥둥 떠올라 공중으로 날아갔습니다. 그 흑인 아이는 너무나 신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그러자 흑인 아이에게 풍선장수는 말했습니다.

“풍선에 수소만 들어있으면 빨강 풍선이든, 노란 풍선이든 검은 풍선이든 다 날 수 있는 거란다. 흑인이라고 좌절할 거 없단다. 네 안에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중요한 거야. 나는 네 안에 하나님이 계셨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너는 분명히 저 풍선처럼 하늘을 날 수 있을 거야.”

그 흑인 소년이 바로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틴 루터 킹 목사였습니다. 풍선 장수의 말대로 마음에 하나님을 모셨더니 그의 검은 풍선이 하늘을 난 것입니다. 또한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 미국 최초 흑인 국무장관을 역임했던 콜린 파월과 뒤를 이어 최연소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 이번 흑인으로써 당당히 미국의 대통령이 된 버락 오바마, 이들 모두는 날 수 없을 것 같던 까만 풍선을 날린 위대한 자들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하늘을 날 수 있었을까요? 그들은 풍선에 수소를 넣은 것입니다. 그들 가슴에 하나님을 모셨던 거지요.

하나님은 신명기 28장에 우리를 위해 예비된 엄청난 복, 우리에게 펼쳐진 복에 대해 밝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복을 받아 누리는 법이 있다는 겁니다. 풍선이 하늘을 나는 방법이 있듯 말입니다.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신28:14).

바로 이것입니다. 풍선에 다른 기체를 넣고 하늘로 올려보십시오. 절대 날지 않습니다. 수소를 넣어야 풍선이 날지요. 동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앞에 펼쳐 놓으신 복은 절대 다른 것으로는 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으로 인하여서만이 된다는 것입니다. 새벽녘 정화수 떠놓고 빈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제사상 높이 차려놓고 조상에게 빈다고 된다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행할 때 우리가 그 복의 임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수소 대신 다른 것으로 채우고는 풍선이 날지 않는다고 불평을 합니다. 풍선이 잘못되었다고, 검은 풍선이라서, 모양이 이상해서 안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풍선 장수에게 투정을 하고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하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풍선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당신이 흑인이라서, 황인이라서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배우지 못해서, 육체적인 장애인이라서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풍선이 날지 않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독생자를 죽이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는데, 뭘 아끼고 숨기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고 찬양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사43:7). 그런데 그 피조물이 창조주를 무시하고 다른 것을 향하여 신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숭배하고 그것에 절한다면 우리를 지으신 이가 얼마나 기가 막히시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당신의 자녀가 다른 사람에게 ‘아버지’ 하며, 자신은 무시하고 그 사람 말만 듣고 그 사람만을 섬긴다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아마도 그 자식을 호적에서 빼버릴 겁니다. 동일합니다. 우리 하나님도 감성이 있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첫째 계명이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입니다. 그 분은 질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신이라고 하는 자에게, 다른 것에 절하는 자에게 질투하신다는 것입니다.

질투(嫉妬)란 시기할 질(嫉)과 강샘할 투(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남자가 자기 아내가 다른 남자를 연모하면 돌로 쳐서 죽일 만큼 시기한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이런 자를 사(赦)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여호와의 분노와 질투의 불로 그의 위에 붓게 하시며 또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로 그에게 더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필경은 그의 이름을 천하에서 도말하시되”(신29:20).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우상숭배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있던 우르는 신전(神殿)이 많은 곳이었고, 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 숭배자였을 뿐 아니라 돌이나 나무로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기 위해 먼저 하신 일이 우상으로부터의 분리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분열이 어디로부터 났습니까? 바로 솔로몬의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불순종에서입니다.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와 재물과 장수를 허락받은 솔로몬이 정치적으로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면서 그들이 섬기던 이방신을 용납하였고 이방 신전을 세우고 섬기게 되자 하나님이 그의 아들 때에 이스라엘을 분열시키신 것입니다(왕상11:1~13).

그러나 다니엘과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우상 숭배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보시고 그들을 사자 굴에서, 풀무 불에서 건지셨고, 그들을 더욱 높이셨습니다. 또 히스기야가 곧 죽으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 라며 방성대곡하자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사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행위가 무엇이었기에 하나님이 한번 뱉으신 말씀을 거두셨을까요? 바로 놋뱀을 부수고, 우상을 타파하고, 산당을 제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우상타파를 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우리를 만드셨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숭배한다면 하나님의 분노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상의 원뜻은 ‘없는 것, 헛된 것, 무가치한 것’일진대 그 우상을 하나님 자리에 올려놓는다면 하나님을 얼마나 무시한 꼴입니까?

신명기 28장은 축복의 장과 저주의 장으로 구분됩니다.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 안하느냐 입니다. 순종하면 축복의 주인공이 될 것이고, 불순종하면 저주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나는 왜 하늘로 못 나느냐?’고 불평하지 마십시오. 풍선이 작아서도, 모양이 이상해서도 아닙니다. 수소를 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소만 넣으면 풍선은 하늘로 높이 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까만 풍선이든, 노란 풍선이든 관계없습니다. 당신의 심령에 하나님만 모신다면 요셉처럼 타국의 노예로 팔려가도 머리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 안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당신을 높이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이 날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당신의 심령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고로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당신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복을 못 빌어 몸살이 나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 복이 당신의 것이 될 것입니다.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요일5:21). 할렐루야.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마지막 단추 낄 곳이 있다

세상만사 타협이 있지만 신앙만은 타협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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