될 성 싶은 나무 떡잎부터 안다 (고전 3:10~16)
콩을 심으면서 ‘뭐가 날까?’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팥을 밭에 심으면서 ‘뭐가 열릴까?’ 하고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콩을 심으면 콩 나고, 팥을 심으면 팥 나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입니다. 너무 뻔한 결과거든요.
세계 곳곳에서 대홍수와 가뭄 등 기상이변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때문입니다. 이 또한 예측했던, 예측된 결과입니다.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 산업화에 따른 폐기 오염물, 산림 훼손과 마구잡이로 쓰는 프레온 가스 등으로 지구의 온도가 상승하고 있으니 지금의 기상이변은 예측되었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일에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있었지요. 다들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고 하지만, 사실 그 결과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것 아니었습니까? 고3들의 용어 중에 ‘4당5락(四當五落)’이란 말이 있습니다. 4시간 자면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말인데요, 이 말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느냐에 따라 수능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말입니다. 곧 공부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말일진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내가 얼마큼 공부했는지 알고 있으니 적어도 나는 내 수능결과를 예측한다는 겁니다.
“자다가 날벼락 맞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하는 말입니다. 정말 예측불허의 일들이 일어날 때도 있습니다. 실제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인 일을 당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냉정하게 살펴보면 태반이 예측 가능한 일들이라는 겁니다. 94년에 있었던 성수대교 붕괴사건을 생각해봅시다. 아무도 도심의 대교가 무너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정말 전혀 예측 불허의 사고였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히 예측된 사고였습니다. 처음부터 부실공사였거든요. 10mm가 되어야 하는 용접 두께가 8mm 정도에 불과했고, 거기에 안전점검까지 허술했으니 붕괴는 단지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였던 겁니다.
미래란 오늘이 기초가 됩니다. 그래서 미래는 충분히 예측이 가능합니다. 오늘 준비하고, 오늘 노력하고, 오늘 점검하면 내일은 창대하고, 아름답고, 안전하다고 예측되는 겁니다. 그래서 될 성 싶은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한 것입니다. 떡잎이 충실하면 거목이 될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오늘이 충실하면 내일이라는 나무가 무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에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16:2~3)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징조를 보고 날씨를 예측할 수 있듯, 시대의 상황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측컨대 재림의 때는 아주 가깝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날에 들림을 받을 것인가, 어떤 상을 받을 것인가 하는 것도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24:40~41). 두 사람 모두 교회에 다닌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주님이 오시는 그 날에 들림을 받았고, 하나는 들림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러면 들림 받지 못한 사람은 ‘자다가 날벼락’ 맞은 걸까요? 아닙니다. 본인은 압니다. 본인이 들림 받지 못하게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을요. 그냥 교회 뜰이나 밟고, 예수님 언저리나 돈 무늬만 신앙인이었음을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측된 결과지요. 동일합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않은 다섯 처녀의 등불이 꺼지는 건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결과를 예측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설마’ 한 것이고, ‘뭐 다른 수가 있겠지.’ 한 겁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사실을 모른 것뿐입니다.
결과는 심은 대로 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을 위해 무엇을 심었는가, 오늘 주님을 위해 얼마나 심었는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결정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은 지금 죽으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하면 “글쎄요, 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러는 사람 말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예측하건데 100% 구원 못 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당연히 구원을 받습니다. 불을 보듯 확실한 결과입니다. 그렇다면 죽어야 그 날에 우리가 받을 상을 압니까? 죽어야 그 날 서게 될 자리를 압니까? 아닙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압니다. 자신은 그날 주님이 주실 상과 면류관을 압니다. 왜냐하면 얼마나 심었는지, 무엇을 심었는지 자신은 알기 때문입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계22:12).
제가 “저는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함께 심판할 겁니다.” 라고 말하면 저더러 교만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예측이 됩니다. 제가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버렸고, 주님 때문에 핍박과 모함을 받았고, 주님을 위해 최선을 다 했기에 제 미래를 그렇게 예측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은 절대 거짓말을 안 하시기에 그 날에 받을 상과 면류관을 명확히 예측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공부 안한다고 애들만 득달하고 있습니까? “공부 안하면 대학에 못가고, 그럼 네 장래는 뻔해?” 이러십니까? 예, 공부 안하면 장래가 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부 아니더라도 성공으로 가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짜 시급한 일은 당신이 지금처럼 주의 일에 안일한 것이고, 지금처럼 주의 일에 무신경한 것이며, 지금처럼 대강 신앙생활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날 당신이 받을 점수가 뻔합니다. 낙제합니다. 거기는 재시험이 없으니 당신의 예측된 결과는 곧바로 영원히 타는 유황불에 들어가는 겁니다. 다행히 커트라인에 걸려 천국에 들어갔다고 합시다. 그 곳은 철저한 계급사회인지라 당신은 십자가에서 구원받은 강도와 나란히 문지기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도 ‘어떻게 되겠지.’ 하십니까?
지금 주를 위해 사십시오. 지금 주를 위해 드리십시오. 지금 주를 위해 일하십시오. 분명히 그 날에 면류관과 상을 받을 것이고, 이 땅에서도 백배로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를 위해 살았습니다. 사나 죽으나 그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받을 영광이 어떠한지 예측했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주님 때문에 매 맞고, 주님 때문에 헐벗고, 주님 위하여 모든 것을 버렸으니 큰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 것입니다.
우리도 주를 위하여 삽시다. 내가 가진 것을 주 위해 씁시다. 내 물질을, 내 시간을, 내 건강을, 내 달란트를, 내 명예와 권력을 주를 위해 아낌없이 씁시다. 기꺼이, 아낌없이 감사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그러면 죽음 다음의 세상에서 내가 받을 상과 면류관 그리고 주님의 칭찬이 무엇인지 예측 될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으니 예측컨대 주님이 우리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며, 예측컨대 이 땅과 내세에서 백배나 좋은 것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바보라 하루가 멀다하고 해외로 복음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60인 나이에 지구 반 바퀴씩을 도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에도 이렇게 가는 것은 그 날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 날이 없다면 저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날이 있기에, 그 날의 상을 바라보기에 이 길을 가는 겁니다. 심은 만큼 거두고, 심은 대로 거두거든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친히 내리실 상과 주님이 친히 씌우실 면류관을 생각하고 주를 위해 삽시다. 좁은 길을 갑시다. 우리가 가는 길이 세상 사람들 눈에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여도 우리는 그 날을 알지 않습니까? 그러니 믿음을 버리지 말고 오직 푯대만을 향하여 진군하는 자들이 됩시다. 그래서 그 날 ‘잘했다’ 칭찬 받는 자들이 됩시다. 할렐루야.
심은 만큼 거두고
심은 대로 거둔다
당신은 주를 위해 무엇을 심었는가?
당신은 주를 위해 얼마나 심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