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人生)
여름 한 나절, 하루살이와 모기가 사이좋게 놀았다.
“정말 오래간만에 재밌게 논 것 같아.”
하루살이는 일생동안 살면서 가장 재밌는 시간이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러자 모기도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도 참 좋은 친구를 만나 좋았노라 말하고는
“그럼 내일 우리 또 같이 놀자.”
라고 했다. 그러자 하루살이가 모기를 쳐다보며 물었다.
“내일? 내일이 뭔데?”
“내일을 몰라? 오늘밤이 지나고 해가 다시 뜨면 내일이잖아.”
아무리 모기가 설명을 해도 하루살이는 내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해가 진 다음에 또 뜬다고? 우리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나는 네 설명을 이해할 수 없어.”
아무리 설명해도 하루살이가 자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자 모기는 조금 화가 났다.
“어쩔 수 없지. 암튼 내일 만나.”
하고는 하루살이와 헤어졌다. 다음 날 모기는 하루살이를 기다렸지만, 하루살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한 모기가 날다가 우연히 곰 위에 앉았다.
“왜 그렇게 상심해있냐?”
곰이 모기를 보고 물었다.
“글쎄, 오늘 친구를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그 친구가 나타나지 않았어요. 실망해서 그래요.”
“어떤 친군데?”
“하루살이요.”
그러자 곰이 웃었다.
“아마도 너는 그 친구를 다시는 못 볼 거야.”
“왜요?”
“그 친구는 어제가 일생이었거든. 하루밖에 못살아. 그러니 지금은 죽었을 거다.”
모기는 그제야 하루살이가 ‘내일’을 이해하지 못한 이유를 알았다. 모기는 곰 을 위안 삼아 살았다. 그렇게 날짜가 가고 날씨가 쌀쌀해지자 곰이 말했다.
“이제 그만 헤어지고 내년에 다시 만나자.”
그러자 모기가 말했다.
“내년이라고요? 내년이 뭐예요?”
“겨울 지나고 나면 내년이 오잖니.”
“우리 선조들은 내년이 있다고 가르쳐주지 않았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곰이 아무리 설명을 해도 모기는 내년을 이해하지 못했다. 곰은 모르겠다 싶어 굴로 들어가 버렸다.
그 다음해, 곰은 그 모기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 다음의 세상을 믿지 않는다.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하루살이가 내일을 몰라도 내일이 있고, 모기가 내년을 몰라도 내년이 분명히 있듯,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고 몰라도 죽은 다음의 세상은 반드시 있다. 그리고 심판이 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죽은 다음의 세상은 극과 극인 두 길로 갈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느냐, 안 믿었느냐를 기준으로 한 길은 영원한 복되고 행복한 길이고, 한 길은 영원한 고통과 저주가 들끓는 길로 나뉜다. 영원히 사는 것은 동일하나 상반된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영존체(永存體)다. 다만 이 땅에서 육신이라는 옷을 입고 있을 뿐, 마치 지구를 떠난 우주인이 우주복을 입은 것처럼. 육신을 벗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을 벗은 다음에 영원히 사는 영혼의 세계가 있다. 하루살이는 그 하루가 끝이고, 모기는 일 년이 끝이지만 사람은 영원히 산다.
인생은 강건하면 7, 80이다. 그 인생동안 무엇을 했느냐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를 믿었느냐 하는 것이다. 영생과 영멸의 기준대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느냐, 안 했느냐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위나 노력, 수고로 영생의 문을 열 수 없다.
선(善)으로도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열리는 문이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서 ‘열려라 참깨’ 해야만 문이 열리듯, 세상 무엇으로도 천국의 문, 영생의 문을 열 수 없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열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입으로 시인하고, 그 분의 뜻과 명령대로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때는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내일 믿지.’ 하다가 오늘 밤에 죽으면 당신에게 열릴 문은 영멸의 문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원해도 영생의 문은 당신에게 열리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그러면 영생의 문의 열쇠를 손에 쥐게 될 것이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