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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인류 최대의 적은 두려움이다 ( 수 1:1~9 )

454호 · 2008-11-09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습니다. 매스컴마다 경제침체며,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들을 마구잡이로 쏟아내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기업체 도산 및 실업 증가, 주가하락, 은행권 대출금리 인상, 수출부진, 극심한 내수위축 등 암울한 상황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위기 앞에 다가올 경제 한파가 얼마나 극심할지 모두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예, 세계 경제가 심상치 않은 것도, 우리나라의 경기침체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곤두박질하는 경제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연설에서 찾아봅시다.

1929년, 세계 경제 대공황이라는 미증유(未曾有)의 위기를 맞아 미국에 1,500만 여명이 실업상태에 빠졌고,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으로 광범위한 공포 분위기가 국민들 사이에 팽배했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경제공황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경제공황으로 두려워하는 여러분 마음속의 그 두려움이 더 무섭습니다. 지금은 다른 어떤 프로그램보다 자신감 회복이 가장 급선무입니다. 두려움이 가져오는 불안과 패배주의가 바로 위기의 진짜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연설에 깨달은 국민들이 루즈벨트의 자신감과 정부통제가 강화된 뉴딜정책을 신뢰해 경제 공황을 이겨냈던 것입니다.

인류 최대의 적은 바로 두려움입니다. 아무리 사나운 개라도 개장수 앞에서는 꼬리를 팍 내립니다. 왜 그런지 압니까? 개는 청각과 후각이 발달해서 사람들이 개 앞에서 떠는 진동을 느낀다고 합니다. 사람이 떨면 그 진동을 느끼고는 이길 수 있겠다 싶어 짖고 덤벼드는 거랍니다. 개장수는 그걸 아는 겁니다. 떨면 개가 덤빈다는 사실을요. 그래서 담대하게 개에게 다가가니 오히려 개가 떠는 겁니다. 사나운 개를 만나면 개의 눈을 직시하라고 한 말은 다 타당성이 있는 겁니다.

두려워하면 악한 마귀가 틈탑니다. 개도 사람이 두려워하는 진동을 느끼는데, 영물(靈物)인 마귀가 우리의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그래서 ‘얼씨구나’ 하고 다가와 속삭입니다. “이것 봐, 지금 인터넷에 실린 악플 좀 봐. 넌 세상에서 매장되고 말거야.”, “지금 경제를 봐, 넌 도산되고 말 거야.”, “너는 간음했잖아. 절대 용서받지 못해.” 하고 말입니다. 잔뜩 두려움을 안겨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두려움이 우리에게 사실로 미쳐 삶을 포기하게 되고, 도산하게 되고, 움츠러들게 되는 겁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어쩌다 정전이 되면 조그마한 소리에도 놀라고 괜히 두렵지요? 어둡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오는 것은 마귀가 영적 정전사태를 만드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삶을 깜깜하게 만들어서 별 것 아닌 것에 놀라고 두렵게 하며, 마침내는 우리를 공포에 질려 죽게 하려 합니다. 그러나 불만 켜면 됩니다. 불만 켜면 좀 전에 깜짝 놀랐던 소리가 ‘식탁에 있던 수저가 떨어진 소리였구나’ 하고 알게 되고, 아까 발에 걸려 소스라쳤던 것이 ‘장난감이었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우리 영의 불만 밝히면 됩니다. 그러면 어두움은 물러납니다. 성령의 불만 밝히면 어두움의 주관자 마귀는 일곱 길로 도망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여론이 두려워 떨고 있습니까? 담대해야 합니다. 여론을 무서워하면 빌라도 짝 납니다. 그는 적어도 예수님이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내도 예수님께 손대지 말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내어놓으라고 아우성치는 군중이 두려워, 민란 나는 것이 두려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는요? 그는 씻지 못할 죄인이 되어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영원히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근간에 여론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남의 말 사흘 안 가는 법, 담대하면 어두움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여론에 많이 맞은 사람을 꼽자면 저 아닙니까? 사기꾼이니, 장풍을 쓰느니, 가짜니….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러나 제가 두려워 떨었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저는 늘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시는데 사람이 내게 어찌 한단 말입니까?(롬8:31). 내가 빛 가운데 있는데 어두움이 나를 어찌 한단 말입니까? 원래 개는 개소리하는 겁니다. 개가 사람처럼 말하면 더 이상한 겁니다. 왜 개소리에 내 인생을 팽개칩니까?

실패한 인생 때문에 부끄러워서 세상으로 나가기가 두렵습니까? 본래 부끄러움과 두려움은 친구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움을 내몰아야 담대해집니다. 언젠가 우리 성도가 부도난 것이 신문에 났다며 창피해서 더는 사람들을 못 보겠다고 제게 말했습니다. 그 때 제가 뭐라고 했는지 압니까? “무슨 말이요? 나도 그 기사 못 봤소.” 그랬더니 그의 얼굴이 순간 환해지더라고요.

한 낮에 우물을 찾은 여인도 그랬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갈아치운 여자였으니 분명 인생에 실패한 여자였죠. 그녀는 부끄럽기도 하고 손가락질이 두려워 사람을 피해 아무도 없는 한낮에 물을 길러 다녔습니다. 어두움 속에서 산겁니다. 그러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녀의 삶에 빛이 들어간 거죠. 그랬더니 그녀가 어찌 변했습니까? 동네방네 뛰어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협박이 두렵습니까?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고 있는 느헤미야를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두려워 도중하차 했습니까? 느헤미야의 말입니다.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고 했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이길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그 결과 52일 만에 거사를 이루어냈습니다.

만사가 다 겁이 납니까? 어린 계집 앞에서 동고동락 했던 스승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그것도 모자라 저주까지 한 겁쟁이 베드로, 그에게 빛, 곧 성령이 임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복음을 전하는 용감한 사도가 되었지 않습니까? 성령을 사모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들은 사실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어겨가며 그 자리에 함께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죄 중에도 중죄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알고도 다락방에 모여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받은 성령으로 모든 두려움을 떨치고 세상에 나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칠흑 같은 어두움도 빛 앞에 맥을 못 추거든요.

아직도 두렵습니까?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사자의 입을 봉하신 하나님, 불 속에서도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신 하나님, 애굽 군대가 쫓아오자 홍해를 갈라 피하게 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성령으로 함께 하시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입니까? 절대 어두움이 빛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모든 두려움은 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은 혼자일 때 두려움을 더 탑니다. 그러나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늘 그리고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14:18). 갈릴리 바다에 풍랑이 일 때 거기에 함께 계셨던 주님은 오늘날 풍랑이 인 당신의 삶에, 기업에, 나라에 함께 하고 계십니다. 단,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소리 높여 예수님을 깨운 것처럼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늘 상고하고 그 말씀에 준행하면 우리 주님이 우리를 위경에서 건지시고, 넘어진 우리를 일으키시며, 사망의 우겨쌈에서 우리를 살려내실 것입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오늘 모세를 잃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와 두려워말라고 하신 하나님은 동일하게 당신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1:9). 할렐루야!

뱀보고 놀란 가슴

새끼줄보고 놀란다

배짱없는 사람에게는

일을 시키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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