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결코 2등이란 없다
열대기후의 특성인 스콜(squall) 현상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늘은 검은 먹구름이 수시로 일어났고 강한 바람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곤 했다. 대지를 뜨겁게 달구는 뜨거운 태양이 그토록 그리운 적도 없었다. 야외집회의 아킬레스건이 날씨임을 모르진 않지만 이번처럼 날씨 때문에 노심초사한 적도 없었다. 늘 야외집회의 첫날은 비를 만나곤 했다. 악한 마귀는 절대로 쉬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심하고 나아갈 때, 악한 마귀 또한 결심을 하고 나온다. 이 영적 전쟁에 어찌 2등이 있을 수 있으랴. 2등은 곧 패전이요 멸망인 것을. 오직 승리만이 살 길이요 생존이다. 목사님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고도 간절히 타올랐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염원이 절실했던 것이다.
미국 LA를 거쳐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Mexico City)에서 약 2시간을 기다렸다가 베라크루스(Veracruz) 행 국내선으로 갈아타고 약 1시간 반을 날았다. 그러나 아직도 집회 도시까진 다시 차로 약 3시간을 가야한다. 한국에서 떠난 지 수십 시간이 지났건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갈수록 비행기를 타고 환승을 위해 기다리고 하는 일들이 몸에 버겁도록 지치곤 한다. 목사님은 이럴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씀하신다.
“돈 버는 일이라면 절대로 안 간다.”
내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일이라면 결코 갈 생각이 없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기에 가라하는 곳으로 갈 뿐이라는 말씀이다. 1년에 한두 번 가는 것도 아니요 매달 하루가 멀다 하고 동으로 서로 남으로 북으로 지구촌이 좁다하며 날아다닌 것이 벌써 8년이 되어간다. 비행기에 오르면 정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곤 한다. 하나님과 함께 했던 영광의 순간들, 위기 속에서 목이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기도했던 순간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과 함께 감격했던 순간들, 그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놓자면 몇 날 며칠도 부족하다.
밤 10시, 베라크루스 공항에 도착하여 트랩을 내리니 시원한 공기가 피로를 적셔준다. 짐을 찾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있자니 유리문 너머로 이현숙 선교사와 라구나(Laguna)가 보인다. 그리고 곧이어 집회를 배설한 라파엘(Ra-fael) 목사, 호세(Jose) 목사 등이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메리다(Me-rida) 집회의 영웅 모세(Mose) 목사도 목사님을 영접하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왔다. 그를 볼 때마다, 그의 눈을 볼 때마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그에겐 꿈이 서려 보인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꿈 말이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그 촌티 나는 얼굴에 아주 진하게 묻어난다. 보기 드문 사람이다. 뚝스테펙(Tux-tepec)에서 만난 호세 안토니오(Jose Antonio) 집사에게 들은 이야기다. 목사님의 그 많은 멕시코 집회 가운데 모든 집회 비용에 대한 상세내역이 정리되어 교단에 보고된 것은 오직 모세 목사의 메리다 집회가 유일하다는 것이다. 모세 목사는 집회를 통해 들어온 헌금이나 목사님으로부터 제공 받은 지원금 일체를 교단에 투명하게 내놓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보상도 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흔들어 넘치도록 물질이 들어오자 교단 총회장이 직접 모세 목사에게 감사를 표했다는 것이다. 목사님은 그 이야기를 듣고 무릎을 치시며 “그게 바로 하나님이다.” 라고 기뻐하셨다.
“하나님을 위해 충성한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풍성하게 갚아주시는 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가치를 모르고 돈, 돈 하며 눈앞의 이익만 좇다가 수치와 부끄러움을 당하고 멸망한다. 다 지식이 없어 망하는 것이다.”
모세 목사는 현재 2차 메리다 집회를 준비하는데 여념이 없다고 했다. 메리다의 영광이 다시 한 번 나타나길 간절히 바란다.
당초 집회 도시는 이슬라 베라크루스(Isla Veracruz)였는데, 이 선교사 말이 사정이 있어 갑자기 뚝스테펙으로 변경되었다고 한다. 이슬라 바로 옆 도시란다. 집회 장소가 갑자기 바뀌면 광고 등에 차질이 생겼을 것이 뻔했다. 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
지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베라크루스에서 1박하기로 했다.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합류하는 김성자 전도사는 이미 호텔에 도착하여 있었고 이튿날 아침에야 만날 수 있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우리는 차에 올랐다. 뚝스테펙에서 인터뷰 약속이 잡혀있어 서둘러 가야한다는 것이다. 베라크루스의 거친 파도와 정박해있는 군함들을 보며 이미 전쟁이 시작되었음을 새삼 느꼈다. 전의를 다져야할 시간인 것이다.
뚝스테펙은 멕시코 중부 와하카(Oaxa-ca) 주에 속한 인구 30만의 도시로 특별한 관광지는 없지만, 농업이 성하여 맥주, 설탕, 파인애플, 옥수수 등을 생산하는데, 이 가운데 특히 설탕은 멕시코 전체에 공급할 만큼 경쟁력 있는 도시로 와하카 주에서 가장 경제력이 높다고 한다. 뚝스테펙 숙소에 도착하니 에두아르도(Eduardo) 부시장과 와하카 주지사 공관에서 나온 관리들, 그리고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뚝스테펙 시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환영해주었다. 에두아르도 부시장은 와하카 주 각 부족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는 여인들을 하나하나 소개하며 전통적으로 귀빈을 영접할 때면 이렇게 각 부족 대표들이 전통의상을 차려입고 나와 인사한다고 설명해주었다. 그들로서는 최고의 환영을 표하고 있는 것이었다. 라파엘 목사가 한국의 영성세미나에 다녀가더니 역시 대접하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았다.
환영행사가 끝나고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목사님은 기자의 방문 목적을 묻는 질문에 “살아계신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이 땅에 왔다.”고 선포하셨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뚝스테펙의 첫날밤부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비는 아침이 되어도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을 보았다. 온 하늘이 짙은 먹구름으로 내려앉아있었다. 야외집회 첫날이면 늘 겪는 일이기에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러나 운동장에 물이 고이고 웅덩이가 생기면 곤란했다. 나이지리아 집회 때, 목사님이 직접 현장에 나가셔서 물을 퍼내고 했던 일이 생각났다. 목사님은 라파엘 목사에게 비가 오더라도 준비를 늦추면 안 된다고 독려하시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집회장에 고인 물들을 제거하라고 지시하셨다. 그런데 집회가 시작될 때까지도 비는 멈추지 않았다. 카메라가 젖으면 안 되기에 비닐을 준비했다. 라구나는 ‘비닐을 씌우고 있다가는 목사님께 혼나지 않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미 목사님의 눈빛만 봐도 뭐가 필요한지, 집회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훤히 꿰뚫는 우리 집회의 전문가가 되어버린 라구나였다. 그래서 “너는 절대 우산을 쓰면 안 되지만, 장비는 보호해야 해”라며 비닐을 건네주었다.
비는 점점 잦아들었지만, 사람들은 비를 피해 천막 속으로 들어가 있었다. 땅은 이미 물로 질퍽거렸다. 여기 저기 웅덩이가 생기고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찬양인도 중에 전기마저 나가버렸다. 목사님은 곧 도착하실 시간이 되었는데,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쏟아지는 비로 인해 스크린은 준비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전기마저 나가다니… 최악의 상황이 닥친 것이다. 그 상황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기도뿐이었다. 한국 성도들의 합심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다. 그러나 당장 연락할 방도도 없고, 수리하고 있는 발전기 옆을 서성이며 계속 방언으로 기도했다. 목사님은 이미 도착하실 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차량은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발전기가 수리되어 불이 다시 들어오고 앰프 및 스피커가 정상을 찾자 목사님과 일행을 태운 차량이 진입하는 불빛이 보였다. 입에서 ‘할렐루야’ 소리가 절로 나왔다.
단상에 오르신 목사님은 일성으로 오직 전쟁의 승리를 외치셨다.
“전쟁에 2등은 없습니다. 전쟁에서 2등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직 승리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이미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비록 상황은 악조건이지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우리 다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뚝스테펙의 밤하늘이 간절한 기도로 가득 차는 장면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