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45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깊은 곳에 그물을 던져라 ( 눅 5:1~11 )

450호 · 2008-10-12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도 믿음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버스가 사고 나지 않을 거다’라는 믿음이 있어 버스를 타고, ‘이 음식에 독이 들어있지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어 음식점에서 독극물 테스트를 하지 않고 바로 음식을 먹습니다. 이 믿음을 ‘자원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자원적인 믿음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믿음이지요. 그 다음으로 ‘구원적인 믿음’이 있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가 갖는 초보적 믿음을 말합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고, 그로 인하여 구원의 확신을 갖는 믿음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롬10:9). 많은 성도들이 이 믿음의 단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많은 자들이 이 믿음만 있으면 되는 줄 알고 있고,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예, 물론 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큰 믿음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은사적인 믿음’입니다. 이는 믿는 자가 병든 자에게 손을 얹으면 낫는다는 믿음, 저 산을 예수 이름으로 명하면 옮길 것이라는 큰 믿음을 말합니다. 이는 누구나 소유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장성한 자의 것입니다.

올챙이가 자라 개구리가 되듯,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듯 살아있는 모든 것은 다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장이 멈춘 것은 다 죽은 것이거나 병든 것입니다. 만일 20살이나 되는 아들이 매일 엄마 젖만 빨고 있다면 심각한 일일 겁니다. 동일하게 신앙생활이 20년인데 여전히 젖이나 먹는 정도의 신앙이라면 즉, 구원적인 믿음의 수준에 머물러 있다면 이를 예사로운 일이라고 간과해도 괜찮겠습니까? 아닙니다. 분명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든 부모의 소원은 아이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잘 성장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평생을 부모 품 안에서 재롱이나 떨고 있는 것을 바랄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학교도 가고, 군대도 가고, 사회로 나가 사회에 이바지도 하며, 결혼도 하고, 경제적인 능력도 가져 부모에게 용돈도 주는 아들이길 바랍니다.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도 동일하십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다시 태어나 젖을 먹고 있는 것을 보시면 하나님은 무척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계속 젖만 먹고 있다면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쭉쭉 자라 나가 활동하고, 남도 가르치고, 적이 들어오면 총칼 들고 나가 싸워줘야 아버지로서 더욱 기쁘고 든든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5:13~14).

잘 자라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옷도 맞는 것으로 입히고, 그때그때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해주듯 하나님도 믿음에 장성한 자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십니다.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주시는 다양한 은총으로, 9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12:8~11).

베드로는 본시 배운 것이 없는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성령의 은사를 받고백성들을 가르치니 말씀을 듣는 수가 남자의 수만 오천 명이었고, 또 그가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은 물론이고 대제사장과 그의 문중 앞에서도 기탄없이 말을 했습니다. 그런 그를 보고 다들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행4:13). 어디 그 뿐입니까? 베드로가 예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고(행3:1~10), 그의 그림자만 밟아도 병이 나았습니다(행5:15). 어떻게요? 성령의 은사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은사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은사는 베드로의 전매특허가 아닙니다. 저 역시 성령의 은사를 받아 전 세계를 다니며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이 구원자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은사가 목사에게만 주어졌을까요? 역시 아닙니다. 우리 교회 노(老)장로님이 중풍이 와서 쓰러졌을 때 그의 아내 되신 권사님이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중풍을 일으키는 귀신아 가라.’ 하고 귀신을 내쫓아 장로님을 일으켰습니다. 이는 곧 은사란 누구의 전매특허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믿음이 장성한 자면 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라.” 매일 얕은 물가에서 그물을 던져봐야 고기를 못 잡는다는 겁니다. 깊은 곳으로 가기는 힘들지만 가서 그물만 던지면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깊은 곳으로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론의 파도도 뛰어넘어야 하고, 상식의 파도도 뛰어넘어야 하며, 지식의 파도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곳에 이르기만 하면, 깊은 신앙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내 인생의 배가 가득할 뿐 아니라 남의 배도 채울 수 있는 권세와 능력을 받게 됩니다. 하늘과 땅과 땅 아래 있는 것들이 다 복종한다는 것입니다. 저 산더러 명하여 옮기라 하면 옮기게 되고, 악한 영들을 명하면 쫓겨 가고, 태양을 명하면 멈추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깊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베드로의 말처럼 ‘말씀에 의지하여’야 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5:5). ‘우리가 밤이 맞도록 수고하였으되 얻는 것이 없지마는’ 즉, ‘어떻게 내가 귀신을 쫓을 수 있을까?’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있지만은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명하면 귀신이 나가고, ‘저 산을 명한다고 이리로 올까?’ 하는 지식이 앞서지만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명하면 저 산이 이리로 오는 것입니다. 제가 벙어리 된 자들을 고칠 때, 예수님이 입에 손을 넣으시고 ‘에바다’ 하신 대로 합니다. ‘그런다고 될까?’ 생각하면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지만 오직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막16:17) 라는 말씀에 의지하여 예수님이 하신대로 하면 되더란 말입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기 전에는 그 곳에 물고기가 많다는 것을 모릅니다. 가봐야 압니다. 신앙의 깊은 곳에 들어가기 전에는 거기에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모릅니다. 그러나 들어와 보십시오. 들어와서 확인하십시오. 분명히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실 것입니다. 어떤 갈매기는 어부가 던져놓은 죽은 생선이나 생선 내장으로 배를 채우지만, 어떤 갈매기는 바닷물 속에 다이빙하여 신선한 물고기를 잡아먹습니다. 그 갈매기는 더는 어부의 뱃전을 날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물속에 고기가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맛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깊은 신앙의 맛을 본 자는 남의 간증이나 듣고 은혜 받지 않습니다. 간증을 전하는 자가 되며, 기적과 이적을 나타내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깊은 곳은 풍랑이 셉니다. 신앙이 깊은 곳은 악한 마귀의 공격과 핍박과 모함이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에 물고기가 많듯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며, 사람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손길과 행하심이 있습니다.

자식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부모는 기쁘고 대견합니다. 뭔가 더 해주고 싶어집니다. 우리 하나님도 같은 마음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장성한 자가 되어 주님이 하신 일을 하고, 주님보다 더 큰 일도 할 때 주님은 기뻐하시고, 더욱 은혜가 넘치게 하시며, 더 많은 은사를 주시고, 더욱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믿음이 장성한 자가 됩시다. 신앙의 깊은 곳으로 들어갑시다. 할렐루야!

신앙의 기대치를 높여야

우리 삶의 기대치가 높아진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

믿음과 행함은 기적을 동반한다

450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붕우칼럼
교단소식
나눔의 지혜
잠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