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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근심에 쌓여 있는 사람은 복 받을 생각 말라 ( 마 6:25~34 )

438호 · 2008-07-20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할 때의 일입니다.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은 없고, 비판의 목소리만 높자 루터는 염려가 가득했습니다. ‘과연, 내가 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어느 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집에 들어간 루터를 그의 아내가 검은 상복을 입고 맞았습니다. 루터는 놀라서 “아니, 누가 죽었소?” 하고 묻자 아내가 말했습니다. “예, 하나님이 돌아가셨어요.” “하나님이 돌아가셨다니?” 루터는 아내가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당신이 그렇게 염려할 리가 없지요.” 루터는 아내의 말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렇지, 하나님이 계신데 왜 내가 걱정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일어나 종교개혁에 성공했습니다.

혹 당신이 믿는 하나님도 돌아가신 것은 아닙니까? 아니라면 왜 그렇게 염려가 많습니까? 살아계시기는 한데 그 분이 당신을 도울 만큼 능력이 없습니까? 아니라고요? 그런데 왜 염려하십니까?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인데도 당신이 왜 염려하는 줄 압니까? 당신이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 유명한 외줄타기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캐나다 국경에 놓인 웅대한 나이아가라 폭포에 외줄 하나를 매어놓고 건넌다고 했습니다. 세계의 이목이 그곳으로 집중됐고, 많은 군중이 이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운집한 군중에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제가 이 장대 하나만 들고 저 거대한 폭포를 건널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다들 “네, 믿습니다.” 하고 화답했습니다. 그는 정말 막대 하나만으로 균형을 잡아가면서 나이아가라 폭포를 건넜습니다. 다들 환호했습니다. 이번에는 캐나다 쪽에서 미국 쪽으로 올 차례입니다.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제가 이번에도 성공하리라 믿습니까?” 군중들은 더욱 흥분하여 “당연히 믿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장대 하나 들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다시 횡단했습니다. 폭죽이 터지고 환호성이 하늘을 찌를 즈음에 그는 “이번에는 제가 사람을 엎고 이 폭포를 건너보겠습니다. 제가 성공할 수 있을까요?” 했더니 군중들은 “믿습니다.” 라고 응답했습니다.

그는 인파 속으로 들어가 한 청년의 손목을 잡으며 “자, 내 등에 업히시오.” 했더니 그 청년은 사색이 되어 “나요? 나는 못합니다.” 하며 인파 속으로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여서 혹 그가 자기에게 다가올까 봐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습니다. 이 때 한 어린 아이가 “내가 업힐 게요.” 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를 업고 폭포 앞에 섰습니다. 군중들은 숨을 죽였습니다. 그는 아이를 업고 나이아가라 폭포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또다시 함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안착을 하고나자 용감한 아이에게 이목이 집중되었습니다. 기자들이 다가가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너는 정말 용감하구나. 무섭지 않았니?” 그러자 아이는 “하나도 무섭지 않았어요. 저 분은 우리 아빠거든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그가 아버지였기에 염려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더욱이 아버지가 능히 자신을 업고 건너리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아무 걱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제 당신이 왜 염려 가운데 있는지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당신이 염려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 그 분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당신을 맡길 만큼 온전히 믿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반장이 되었는데, 아이들이 집에 초대하라고 했나 봅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엄마, 아빠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초대하겠노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넌 뭐 믿고 그런 일을 했어?” 했더니 녀석이 “아빠 부자잖아.” 그러는 겁니다. 저를 믿었다는 겁니다. 그 녀석은 ‘1인분에 얼마니까 우리 반 아이 40명 먹이려면 얼마 들겠네. 너무 많이 든다. 어쩌지?’ 이러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다 알아서 다 해주겠지.’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럼 제가 해줬겠습니까? 안 해줬겠습니까? 당연히 해줬지요. 그런 능력이 제게 있는데 왜 안 해줬겠습니까? 만일 제게 그런 능력이 없다 칩시다. 그렇다고 해도 땡빚을 내서라도 해주지 않았겠습니까? 자식이 염려하게 두겠느냐 이 말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7~11).

악한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염려하게 합니다. 왜요? 우리로 하여금 집중력을 파괴해서 목적에 이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잘 되는 것을 못 봅니다. 더욱이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꼴은 더 못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근심 걱정하게 해서 주눅 들고, 포기하게 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이 없다’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염려 가운데 있다는 것은 마귀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하면 염려한 대로 됩니다. 욥기서에 보면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라고 쓰여 있습니다. 걱정하면 걱정하는 대로 되는 것이 이치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걱정의 씨를 심었는데 걱정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근심의 씨를 뿌렸는데 희망의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부도 날 거다’라고 염려하면 부도납니다. ‘이번 시험에서 떨어질 거 같다.’ 걱정하면 떨어집니다. ‘잘 안되면 어쩌지?’ 걱정했으니 잘 안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염려하십니까? 그 분이 찔림을 당하고, 그 분이 상하고, 그 분이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으신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그 분이 부유하신 자로 말 밥그릇에 누우신 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살고 평화롭게 살고 건강하게 살라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십자가에까지 달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무엇을 안 주실까봐, 무엇을 안 해주실까봐 걱정하십니까?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하신 그 분이 무엇을 아끼겠습니까? 공중의 새를 먹이시는 이가,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이가 피로 산 당신의 자녀를 외면하시겠느냐 이 말입니다. 당신이 염려한다고 키를 한 자 더하게 할 수 있습니까? 주름살만 늘어납니다.

경부고속도로 진입 부근에 가면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염려하십니까?’라는 글귀가 보입니다. 맞습니다. 기도하면 우리의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하실 텐데 왜 걱정하십니까? 왜 근심하십니까? 당신의 염려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일진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 것일진대 그것이 죄라 아니할 수 있습니까? 당신의 염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믿음이 적은 연고입니다.

목회 23년, 그리 평탄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예배드릴 곳이 없을 때도 있었고, 모함도 받았으며, 교단으로부터 제명된 일도 있었습니다. ‘아버지’라고 부르던 제자들, 성도들이 떠난 일도 있습니다. 죽이겠다는 협박도 받았습니다. 제가 그 일들을 다 염려했다면 저는 아마 속병으로 벌써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겁니다.

그러나 저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며, 거짓말을 못하시는 아버지기에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뢰었습니다.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그랬더니 아버지가 다 알아서 해결하시고, 답을 주셨습니다.

염려를 떨쳐버리세요. 마음을 바꾸세요.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납니다. 염려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면 부딪쳐보는 겁니다. 당신이 문제와 부딪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고, 힘을 주실 것이며 길을 내실 것입니다. 그래도 걱정하고 있습니까? 그래도 근심하고 있습니까?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두려움의 자녀는

근심과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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