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계시를 무시하지 말라 ( 욥 33:14~18 )
예정대로라면 저는 이번 주에 벨로루시아 집회를 위해 출국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벨로루시아 집회를 취소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게 꿈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입니다.
꿈에 제가 벨로루시아가 갔는데 복음도 미처 전하기 전에 구속되고, 우리 선교 일행들이 각자 흩어져 어디론가 가버린 꿈이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우리 성도들이 이번 벨로루시아 집회를 두고 기도하다가 많은 이상을 보고, 꿈을 꾼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하나같이 ‘가지 말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래서 가지 않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벨로루시아에는 저 대신 제 설교 비디오테이프 보냈고, 저는 지금 벨로루시아에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이 경우라면 어떡하겠습니까? “믿음이야.” 하고 가겠습니까? “사람들과 약속인데….” 하며 가겠습니까? 그것은 “이 곳에 지뢰가 있으니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을 보고도 무시하고 들어간 자와 같습니다. 결과는 어떨지 각자 생각해보십시오.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당신을 무시할 것이고, 특히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방치하실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제가 목회초기에 꾼 꿈입니다. 제가 당시 교계의 거목이신 어느 목사님과 함께 잠을 자는데 북풍한설이 몰려와 너무 추운 겁니다. 그래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이어 꾼 꿈에서는 다른 어느 목사님과 함께 제가 잠을 자는데, 얼마나 포근하고 따뜻한지 단잠을 잤습니다.
잠을 깬 저는 전자(前者)의 목사님을 따라가면 목회가 힘들고 어려울 것이지만, 후자(後者) 목사님을 따라가면 목회가 편안하리라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의 노선을 좇았습니다. 그 분처럼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하는 길로 갔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꿈처럼 편안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을 좇아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한 덕에 저는 교단에서 제명을 당했습니다.
그 후 또 다른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이 제게 ‘명성(名聲)’이라는 두 글자를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곧 모든 불명예를 벗고 제 이름이 반듯하게 높아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높아지기는 하는데, 방향이 영 엉뚱한 쪽이었습니다. 이단이니, 살인자니, 가짜니 하는 쪽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개꿈이었구나!” 하지 않았습니다. 때가 되면 반드시 저의 명성이 높아지리라 믿었습니다. 물론 목회노선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목회 20년이 되자 점차 이름이 세계에 높아졌고, 지금은 하나님께서 제가 생각한 이상으로 제 이름을 높여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꾼 꿈을 개꿈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꿈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밭에 씨를 심었다고 바로 열매를 맺습니까? 배추나 무씨는 하루 이틀이면 나지만, 대추나 밤은 열매를 맺기까지 몇 년이 걸리고, 대나무는 5년이 다돼도 싹도 나지 않습니다. 꿈도 여무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개꿈’ 취급하니까 개꿈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볏단이 자기를 향하여 절하는 꿈과 해와 달이 자기에서 절하는 꿈을 꾼 요셉이 바로 유명인사가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되레 인신매매단에 팔려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꿈을 가슴에 새기고 꿈을 향하여 달려가 약관 30의 나이에 애굽의 국무총리대신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꿈을 통하여, 이상을 통하여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행2:17). 하나님은 꿈과 이상을 통해서 죄악을 방지하게 하시고, 또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기도 하시며, 미래를 예시해주시기도 합니다.
그랄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보고 현혹되어 취하려고 했을 때 하나님은 아비멜렉에게 꿈으로 경고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죄에서 건지셨습니다(창20). 요셉이 바로 앞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감옥에서 만난 바로의 술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몽한 연고였습니다.
그들의 꿈은 이랬습니다. 술관장 꿈은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나고 꽃이 피고 포도가 익어 그 포도를 짜 바로에게 드린 것이었고, 떡관장의 꿈은 흰 떡 세 광주리가 자신의 머리에 있는데 새들이 그 광주리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었습니다. 요셉이 이 꿈을 해몽하기를 술관장은 사흘 후 다시 복직되어 바로 곁에 있을 것이나 떡관장은 사흘 후 처형된다고 했습니다(창40).
사흘 후 요셉의 말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었습니다. 2년 후, 바로가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해몽하지 못하자 술관장이 요셉을 그제야 생각해내고는 바로 앞에 요셉을 세운 겁니다. 바로의 꿈은 7년 풍년 뒤에 7년 흉년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는 자기 꿈을 해몽한 요셉을 국무총리 대신으로 세워 난국을 풀어간 것입니다(창41).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자 그의 약혼자였던 요셉은 의로운 자라 조용히 관계를 끊고자 할 때 요셉의 꿈에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마리아 데려오기를 두려워 말라 이는 성령으로 잉태한 것이며 그는 구원자임이라”고 말했습니다(마1). 하나님이 꿈을 통해 대의(大義)를 밝히신 것입니다.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만나고 꿈을 통해 헤롯에게 가지 않은 사건도 있습니다(마2;12).
요즘 저는 틈나는 대로 운동을 하고,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닙니다. 사실 영어 통역하는 임 박사에게까지 육체 관리를 못한다는 말을 듣고도 몸을 돌볼 겨를이 없던 제가 이렇게 몸을 돌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닌 꿈 때문입니다. 꿈에 백인, 흑인 할 것 없이 많은 군중앞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만 그 앞에서 쓰러지고 마는 겁니다.
진흙 바닥에 말입니다. 그러자 매스컴이 떠들었습니다. “능력 있는 이초석 목사가 쓰러졌다.”, “귀신을 쫓는 목사가 쓰러졌다.” 등등…. 꿈을 깬 저는 ‘아차!’ 했습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육체인데’ 그 후로 건강에 신경을 썼더니 80에 40의 건강을 찾은 모세처럼 저도 날로 젊어지고 있습니다.
제 둘째 아들의 이야기도 하겠습니다. 그 녀석이 아비인 저에게 불만이 많았습니다. 하긴 목회하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했으니 그럴만합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우리 집에 사나운 불도그가 들어와서 온 집안 식구들을 물어뜯고 집안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나가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불도그가 우리 둘째 녀석이지 뭡니까?
그런데 꿈을 꾼 지 얼마 되지 않아 외국에 있던 아들이 정말 집에 온 것입니다. 제가 집에 들어가 보니 이 녀석, 일을 벌이려고 술을 잔뜩 마시고 있는 겁니다. 만일 제가 꿈으로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이놈, 어디서 술을 마시느냐?”고 호통을 쳤을 텐데, 이미 상황을 아는 지라 제가 아들에게 다가가 그를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내 새끼 왔구나.” 그랬더니 이 녀석이 꼬리를 팍 내리는 겁니다.
술이 깬 후에 그 녀석 하는 말이 “집안을 확 뒤집어엎으려고 했습니다. 다 죽이고 저도 죽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꿈의 계시가 없었더라면 제 성질대로 했을 것이고, 그러면 엄청난 일을 초래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꿈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본디오 빌라도를 보십시오. 그가 예수의 일에서 손을 떼라는 아내의 꿈을 무시하다가 세세토록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하고 저주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당신에게 보이신 하나님의 계시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성도 중에 자동차 사고 나는 것을 꿈으로 보이셨건만 이것을 무시하다 먼저 천국 간 사람이 있고, 동업하지 말라는 경고를 무시한 자가 폭삭 망한 뒤 뒤늦게 깨달은 자도 있으며, 배경과 학벌이 좋다고 꿈을 무시하고 결혼하여 몇 년 만에 친정행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답을 보고도 오답을 내는 자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보여주는데도 이를 피하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무시하는 자가 없기를 기도합니다. 어제 무슨 꿈을 꾸셨습니까? 할렐루야!
경고를 무시하면
경고도 너를 무시한다
보스(Boss)의 지시에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