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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내 영혼이 잘 됨 같이 ( 요삼 1:1~4 )

430호 · 2008-08-25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다만 행복에 이르는 길을 모를 뿐이고, 성공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성공에 이르는 길을 모를 뿐이다” 라고.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 잘 되고, 행복하게 사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그 길을, 그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것이고, 누추하게, 비참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는 길’을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범사에 잘 되는 것’은 모든 일에 잘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잘 되고 자식이 잘 되는 것이며, 손대는 것마다 잘 되는 것이고, 내가 속한 단체나 교회, 국가가 잘 되는 것입니다. 거기에 강건해지는 복, 즉 내 육체가 강건해지고, 내 부모, 내 자식이 건강한 것이니 한 마디로 세상 전부를 얻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수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人子)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한 모든 것을 다 이루셨습니다(요19:30). 우리 허물 때문에 그 분은 찔리셨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 분은 갈가리 찢기셨으며,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려고 그 분이 징계를 받으셨고,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 분이 친히 채찍에 맞으셨습니다(사53:5). 또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그 분은 부요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고후8:9).

그 분은 정말 다 이루셨습니다. 부요와 평화와 건강을 우리에게 다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룬 그것을 우리가 왜 누리지 못하고 살까요? 왜 그것이 그림의 떡이냐 이 말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것에 이르는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 길은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분명히 ‘네 영혼이 잘 됨 같이’라고 먼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말씀만 봅니다. ‘네 영혼이 잘됨 같이’라는 말씀은 흘려버립니다. 정작 비밀이 거기에 있는데 말입니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섰을 때는 모든 일에, 곧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부족함이나 불행이 전혀 없었고, 모두 강건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영혼이 악한 마귀의 꾐에 빠진 후, 즉 그의 영혼이 피폐해지자 그의 가정은 시끄러웠으며, 그의 삶에 엉겅퀴가 났고, 죽음이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엄습하게 된 것입니다.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사도 그렇지만 국가적인 문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언제 평안했습니까? 언제 강성했습니까? 능력 있는 지도자를 만났을 때였습니까? 그들이 단합했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바로 섰을 때였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갔을 때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을 때 그들은 전쟁으로 아픔과 고통을 겪었고, 먹을 것이 없었으며, 그들이 하나님을 반역했을 때 남의 나라 지배를 받는 노예의 신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마다 꼬이는 것은, 가정이 범사에 힘들고 고통과 고난 중에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요즈음 AI(조류인플루엔자)로 시끄럽고, 경제가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은 지도자의 잘못이 아니라, 세계 경제가 나빠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믿는 자들의 영혼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무늬만 신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영혼이 잘되는 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내 영혼 깊은 곳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생수가 넘쳐나게 됩니다. 그 생수로 영혼이 풍족해지는 것입니다. 에스겔서 47장에는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창일한 강물이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생물이 살고 고기가 심히 많아지며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모든 것이 살아나며, 그 강가에 어부가 살게 될 것이고,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치는 곳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물 치는 곳이 된다 함은 많은 고기가 산다는 것입니다.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은 사해(死海)입니다. 아무 것도 살지 못하는 사해도 이 강물이 닿으면 다 소생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강물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입니까? 바로 성전에서 나온 물입니다.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겔47:12). 주님은 자신을 성전이라(요2:19~21) 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야,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만 사해 같은 우리 삶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 뿐입니까?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어지지 않고, 그 잎사귀는 약재료가 된다고 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이 잘 되면 부유함이 넘치고 치료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곧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지면 감사해서 하나님을 더 잘 섬기고 그 분만 바라볼 텐데요.” 아니요, 제 목회 24년 동안의 일을 비추어 볼 때 절대 그렇지 않습디다. 사람 마음이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다릅디다. 병으로 죽어갈 때야 오직 하나님뿐이지요. 그런데 나음을 입은 후에는 제 힘으로 나은 것처럼 합디다.

축복도 그렇습니다. 끼니 걱정하던 사람이 하나님께 축복을 받아 밥숟갈이나 뜨면 저 잘나서 그런 줄 알고 기고만장하고, 세상으로 나갑디다. 병들었는데 하나님이 아직 고쳐주지 않습니까? 기도하는데 아직 응답이 없습니까? 그게 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셔서 그런 겁니다. 영혼이 바로 서지 못한 상태인데 덜컥 치료해줬다가는, 영혼이 아직 하나님의 생수로 적셔지지 않았는데 무작정 응답을 줬다가는 그것이 오히려 독이 될 줄을 아시니까 기다리시는 겁니다.

하나님이 귀가 둔하여 응답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짧아 당신을 고난에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이 잘될 때까지 하나님이 참고 계시는 겁니다. 무한하고 영원한 복을 주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고난 중에서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던 요셉처럼, 아들이 없다고 좌절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께로 나아갔던 한나처럼, 죄를 지었음에도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의 품에 달려들었던 다윗처럼 지금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 돌아오십시오. 쥐엄 열매나 먹던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자 혼자 애쓰고 힘쓰던 그동안의 모든 일들이 일순간 해결되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아가면, 즉 영혼이 잘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

주님은 영적 기근 상태인 자에게, 영이 피폐한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들도 오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1~3). 이는 영원한 만족을 주지 못하는 세상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의 풍성함을 맛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리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물은 마시면 더욱 갈증이 나는 바닷물과 같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법입니다. 그 생수가 영혼을 적셔 소생할 때 육의 것도 따라 소생할 것입니다. 방주를 나간 비둘기가 지면에 접족(接足)할 곳을 찾지 못해 다시 방주로 돌아온 것처럼, 세상은 우리가 접족할 만한 곳이 못됩니다. 어서 방주로 돌아오십시오. 비둘기가 돌아오자 노아가 손을 내밀어 받아들였듯이 우리 주님이 손을 내밀어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그 방주 안에 풍요와 건강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범사에 잘 되고 간겅하기를 원하십니까? 먼저 당신의 영을 하나님으로 채우십시오. 할렐루야.

사랑을 잃으면

결혼에 골인할 수 없다

우선순위를 무시하면 일이 꼬이고

순서가 바뀌면 일이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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