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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 갈 6:1~7)

427호 · 2008-05-03

코카콜라 사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를 자르면 붉은 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검은 코카콜라가 나올 겁니다.”

그의 마음과 생각에는 오로지 자사제품인 코카콜라만 있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는 매일 눈만 뜨면 “코카콜라를 어떻게 하면 더 잘 만들까?”, “어떻게 하면 코카콜라의 판로를 넓힐까?” 하는 생각만 심었기 때문입니다. 누차 말하는 것이지만, 만고의 진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말과 행동이 표출됩니다.

저는 코카콜라 사장에 버금가는 자를 필리핀에서 만났습니다. 그는 바로 필리핀 에 파송된 신민호 선교사였습니다. 그는 저와 처음으로 호흡을 맞춰 이번 집회에서 통역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상 외로 너무나 완벽한 통역을 해냈습니다. 재미교포인 임윤석 사장은 그의 통역에 A+ 점수를 줬습니다. 그가 통역을 완벽하게 해낸 이유를 저는 그의 집에 가보고 알았습니다. 그의 집에 가보니 그의 거실 사면에는 제 설교 테이프가 가득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신민호 선교사는 매일 하루에 몇 시간씩 제 설교 테이프를 들었답니다. 그러니 제 설교의 맥락을 다 파악했음을 물론이고, 제가 척하면 턱하니 받아낼 정도로 호흡이 척척 맞을 수밖에요. 그는 제 2의 이초석이 다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매일 제 설교를 머리에 심었으니 줄줄 나올 것 아니겠습니까?

밭에 무를 심으면 무가 나지 배추가 나는 법은 없습니다. 코카콜라 사장처럼 코카콜라를 심으면 코카콜라가 나오게 되어 있고, 신민호 선교사처럼 이초석의 설교를 심으면 이초석 목사의 설교가 마치 자기 것인 양 나오는 것입니다. 당신은 당신의 마음에, 당신의 생각에 무엇을 심었습니까?

계속 필리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실 6,70년대만 하더라도 필리핀은 우리보다 훨씬 잘 살았습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필리핀 방문을 하고 나서 우리도 새마을운동을 해서 필리핀처럼 잘 살아보자고 할 정도로 필리핀은 잘 살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번에 가본 필리핀은 정말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빈곤한 나라였습니다. 몇몇 관광지 이외에는 형편무인지경이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그들은 생각이라는 밭에 “널린 게 먹을 건데, 뭣 하러 고생하며 일하냐?” 라는 씨앗을 줄곧 심었던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게으름과 나태의 씨앗을 생각 없이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가난이라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어땠습니까?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 라는 씨를 열심히 뿌렸지 않습니까? 그랬더니 전후(戰後) 60년이 채 안 되어 세계 경제대국이 된 것입니다. 필리핀에 널린 야자수도 누군가 심었기에 그렇게 주렁주렁 열린 것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지만 심은 대로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는 법입니다.

재밌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번 필리핀 집회를 마치고 짬을 내어 우리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는 아더 목사와 미국에서 온 또 다른 목사와 골프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골프장은 골프를 치는 사람 이외에는 필드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참 난감했습니다. 제가 영어가 능숙치 않기 때문에 그들과 대화를 하려면 통역관이 필요한데 신민호 선교사가 골프를 칠 줄 모르니 필드에 들어올 수 있어야지요. 그런데요, 제가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골프를 쳤다는 것 아닙니까? 영어로 말입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고, 식당 개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더니, 해외집회 8년에 암암리에 영어가 제 머리에 심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감자나 고구마처럼 땅 속에 맺혀 있어서 안 보였는데 배고파서 줄기를 당기니 감자, 고구마가 줄줄이 나온 격으로, 급하니까 영어가 나오더란 말입니다. 제가 새삼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씨는 억지로 심어도, 우연히 심어도, 실수로 심어도 난다는 것을요. 제 어머니가 정원 한 구석에 밭을 만들어 이것저것 심으셨는데, 잔디 쪽에 무가 하나 자라더라고요. 아마 바람에 무씨 하나가 날아가 잔디 쪽에 심겨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가 나더라니까요.

신명기 6장 4절부터 말씀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 곧 쉐마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손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여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이 말씀은 곧 마음 밭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심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명기 28장의 축복의 열매, 즉 나가도 복, 들어가도 복이요, 세계의 제일가는 자가 되는 열매가 맺힌다는 것입니다. 바람에 무씨가 심겨도 나는데, 구레네 사람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도 구원을 얻었는데, 작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과 자손에게 심는다면 얼마나 큰 축복의 열매가 맺히겠습니까.

마음의 밭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잘 생각해야 합니다. 어릴 적 변소에 가면 쥐가 참 많았습니다. 온 몸에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사는 그들은 늘 “쥐 팔자에 변소면 족한 줄 알아라.” 라고 새끼 쥐에게 씨를 심었습니다.

그러니 평생 똥이나 먹는 신세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곳간에도 쥐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은 “쥐도 상팔자가 될 수 있다.”고 씨를 뿌리고 새로운 환경으로 침노하여 곳간을 뚫은 것입니다. 그래서 곳간에서 양껏 곡식을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당신의 인생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 어떤 씨를 뿌려야 할지 이제는 아셨을 것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사울과 압살롬에게 쫓겨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내게 부족함이 없다’고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때가 되매 부족함이 없는 왕으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되지 않았습니까? 씨를 뿌리고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요셉이 곡식 단들이 자기를 둘러싸고 절하던 꿈의 씨를 심은 지 13년 만에 열매를 땄고,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의 씨를 25년 만에 열매로 거뒀습니다. 저도 ‘명성(名聲)’이라는 씨를 마음의 밭에 심고 20년이 흘러서야 열매를 땄습니다. 여러분 자녀의 마음의 밭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희망적인 씨를 심어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주세요.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나 훗날 그것들이 꼭 맺힐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씨앗으로 심기기를 원하십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주님이라는 씨앗이 우리 안에서 심겨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면,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하겠으며, 가능치 않은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이 우리 안에서 열매가 되신다면, 주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넉넉히 해낼 것이고, 절대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이길 것이며, 부정적인 자가 되지 않을 것이고,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지는 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스스로 선 자라고 교만하지 않을 것입니다.

목회 초년기에 만난 토레이 신부가 제게 일러준 말대로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곧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흙만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의 밭도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심은 대로, 뿌린 대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말씀으로, 옳고 바른 것으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것으로 마음의 밭에 심고 노력으로 가꾸세요. 반드시 그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세상만사 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어 있는 겁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했습니다. 원인 제공자가 결과를 책임져야 하듯, 당신이 뿌린 씨대로 당신이 거두게 될 것입니다. 지구의 온난화나 광우병이 인간이 뿌린 대가 아니겠습니까?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나는 법입니다. 나쁜 것을 뿌리면 나쁜 것이 나고 좋은 것을 심으면 좋은 것이 납니다. 그러니 인생의 밭을 좋은 것으로 심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사과 속의 사과씨는 헤아릴 수 있지만

사과씨 속의 사과는 헤아릴 수 없다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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